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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나

by 푸휴푸퓨 2014.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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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 와서 무엇을 하고 돌아가야 하나, 에 대해서 생각했을 때 내가 꼽은건 영어 실력 향상이라거나 외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고 페이스북 친구를 늘리자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대신 이곳에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흐릿하게나마 윤곽이라도 잡아보고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만한 마음을 챙겨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 거 하러 그 멀리까지 가냐는 비판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지내던 곳과는 다른 곳에서 나를 객관적으로 한 번 돌아보고 싶었다고 대답할 뿐이다. 내가 한 선택에 대해 나는 당당하고 뿌듯하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아예 사람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지 않으면서는 절대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그렇게 원했으면서도 막상 끝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자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매일매일 집으로 메일을 쓰고 답장이 오면 기쁘게 열어보고 있다. 게다가 다만 최소한 사흘 중 하루라도 다른 사람과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어찌나 가라앉는지. 주말 내내 집에 있다가 밖으로 나가는 월요일이면 내 옆으로 사람이 지나가고 학원에 도착했을 때 눈을 맞추고 정말 가벼운 이야기를 할 사람들이 있다는 작은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사람이 혼자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명확한 답을 주는 시간들이었다. 그래,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 없구나. 나 혼자 잘났다고 외쳐서도 안되겠구나.

 

  어떻게 하면 나 스스로가 행복해 하는 지도 몰랐다. 단순히 밖에서 떠들썩하게 노는 것 보다는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고만 어렴풋이 생각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뭘까? 지금 고작 2개월이 좀 넘게 지났을 뿐이기에 앞으로도 더 열심히 찾아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벌써 몇 가지나 찾아냈다. 날씨에 의외로 민감해서 밝은 햇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비가 오면 가라앉지만 흐린 날이 가장 우울하다. 파란 하늘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다. 요리를 하면 신이 난다. 기차에서 차분한 음악을 들으며 창 밖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사람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다. 커피나 홍차에 우유를 타 마시는게 쌉쌀한 채로 마시는 것 보다 더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나는 쇼핑을 상당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것 보다는 집에서 맛있는 것 소소하게 해 먹고 재밌는 책 읽을 때가 훨씬 더 행복하다. 정형화 되고 기계 같은 마트 보다는 사람냄새 풀풀 나는 재래시장이 좋다. 눈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는 것은 귀찮은 게 아니라 짧은 시간에 남과 한 번 더 미소를 나눌 수 있는 기회이다.

 

  이타적인 사람이 사실은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말이 점점 더 마음에 와 닿는다. 한국에 가면 반드시 시간을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나 또한 감정적인 교류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법 귀찮아하던 많은 사람들과의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교류도 더 풍부하게 해 봐야겠다. 나 혼자 편안하게 사는건 재미 없을 것 같다, 는 다른 사람들은 훨씬 일찍 깨달았을 이 말을 나는 요즘들어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좋아하지 않는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 시끄럽게 놀아봐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경험할 수 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을만한 것들을 이제는 미루지 말고 꼭 하려고 노력해 보아야 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사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한국에 가면 꼭 생겼으면 습관이 있다. 지금 여기에서 처럼, 주말에 당일치기로 다른 지역에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여기서보다 말도 더 잘 통하고 어떤 교통수단이 있는지 뭐가 더 편한지 훨씬 잘 아는데 오직 집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만히 있게 된다. 유럽을 돌아보고 가장 먼저 느꼈던 게 우리나라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결국 그것도 안하고 지금 다시 영국으로 와 있으니 한국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부끄러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기차 여행도 사뭇 좋을 것 같아서. 기차는 지루하다고 불평을 늘어놨었더랬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더라. 화창한 날 즐거운 마음으로 마실 다녀오는 기분을 계속계속 느꼈으면 한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도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고 원한다고 다 되지 않고, 나를 원해주는 곳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난 희망을 갖고 노력해야 하니까 계속 생각해야지.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지만 그게 내 마음처럼 될까 싶고, 돈을  많이 주지는 않지만 몸과 마음은 편안한 직장 얻어서 안빈낙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너무 편안한 돼지가 아닌가 하는 고민도 했다. 그런 와중에 창비의 팟캐스트에 출연하신 유홍준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인 것 같아 마음에 새긴다. 학자는 학자로서의 사회적 역할이 있다. 혼자 공부하면 끝나는게 아니라 그걸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전도하는 마음으로 한국 미술에 대해 설명하신다는 그분의 말씀이 나에게 경종을 울린다. 공부라는 건 그렇게 너 하나 편하고 네 머리만 만족시켜서 끝나는게 아니야. 내가 배운 것들을 반드시 나눠야 하는게 학자의 사회적 소명이구나. 그것이 작은 도서관이나마 열어서 사람들에게 책을 가까이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일지,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누군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 될지, 어떤 식으로 나아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결론은 그렇다. 혼자서 편안할 수 있도록 가꾸어 나가는 미래는 결국 나에게 허무함, 허망함만을 돌려줄 것이라는 것이니 모두와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위한 것들을 하면서 살아가자.  

 

  처음에 영국에 와서는 많이 답답했다.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고 가고 싶었는데 와서 보니 생활은 하나하나 불안하기만 하고 학원은 재미가 없었다.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라는 친구의 말이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야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용히 앉아서 생각을 하고 여유를 느낄 수 있게 된 지금, 나는 영국에 온 것을 아주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 고요한 시간에 더 많고 깊은 것을 느끼고 돌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내가 감사하는 마음을 무한히 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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