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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버려 놓은 것 치고는 잘 굴러가고 있군

by 푸휴푸퓨 2015.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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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바이트와 학원을 병행할 때 조차 이렇게 버려두진 않았었는데, 블로그가 황무지가 되어간다. 그래도 생각보다 방문자 수는 꽤 있네? 블로그 생각을 안 한건 아니고, 뭔가 되게 쓰고 싶은데 쓸 말이 없어서 말이야. 다시 말하면 생각을 제대로 안하고 살았다. 솔직히 아르바이트가 재미있어서 일하는 동안은 딴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고 오면 (일 하는 시간도 짧은 주제에)어찌나 피곤한지 곯아 떨어져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다. 이런게 나에게 맞는 일이라고 느껴져서 이쪽으로 진로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지.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어서 언젠가 회사에 의해 팽 당하면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질 것 같기는 하지만 일단 잘 맞는 건 맞다.

 

  하지만 피곤해서, 라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변화를 요즘 느낀다. 나는 원래 허무맹랑한 상상을 많이 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꽂히는 드라마가 생기면 '그 드라마가 이렇게 전개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던가, 좋아하는 등장인물로 빙의해서 '이럴 땐 이렇게 말하겠지'같은 생각도 하고 혼자 시나리오도 (머리로)쓰고 그랬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하는 동화 속 공주놀이 비슷한 상상인거지. 스무살이 한참 넘도록 그런 상상을 하면서도 즐거웠고, 그 상상 바탕에는 막연하게라도 '난 극적으로 살거야'라던가 '난 언젠가 이루고 싶은 꿈을 꼭 이루게 될거야'같은 희망이 있었던 것 같다. 꼭 드라마가 아니어도 그냥 많은 것들을 상상했더랬다. 가끔 상상이 혼잣말로 입밖으로 나올만큼. 길에서 혼잣말을 하지 않기 위해 애쓰다가도 상상이 시작되곤 했다.

 

  깨닫지 못했었는데, 정말 요 최근에 상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멍 하니 걷다가 속으로 지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상상이 멈춘 걸 알았다. 상상을 시작해 보려고 했는데, 그냥 뭘 상상해야 할 지 떠오르지도 않는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재밌었을까. 요즘은 폭소를 터뜨리는 일도 별로 없다. 나 왜 이렇게 됐지?

 

  나는 취직을 못한 백수다. 시급이 꽤 세긴 하지만 계약직만 못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4대보험도 없다. 언제 제대로 취직을 하게 될 지도 잘 모르겠다. 어제는 월급이 나왔는데 예전처럼 마냥 기쁘지는 않더라. 당장 쓸 곳이 있는 건 아니지만 왠지 저금해야 할 것 같고, 이정도 받아서 앞으로 먹고는 살겠나 싶고. 그 와중에 피곤하다고 잠은 엄청나게 자고 있고, 책도 잘 안보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앞으로의 삶이 즐거워 질 거란 희망이 없다. 좋은 직장을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앞으로의 삶이 그래. 엄청 재미있을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어느 회사인지 아무튼 나는 나사가 되고 소모되겠지. 그냥저냥 살지 않겠어.

 

  그래서 생각을 안하고 사는 걸 내버려 뒀다. 두니까 시간은 간다. 모든 것이 좋지는 않지만 여전히 일은 적성에 맞고, 정규직 되기는 요원하고 삶은 아무 일 없이 흘러간다. 생각 같은 거 안해도 시간은 잘만 간다. 마음이 허하면 나는 쇼핑을 하거나 먹거나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한다. 둘을 번갈아가며 하다보면 마음이 허해지는데, 지금 나는 한창 감정이고 돈이고 몸이고 소모하다가 굉장히 마음이 허한 참이다. 마지막으로 도서관에 갔을 때 딱히 빌리고 싶은 책이 없었어서 아무거나 빌려왔더니 그때부터 책 읽기도 멈췄다. 다행히 요번 달 부터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하게 되어서 강제로 읽을 것 같기는 한데, 그거 아니여도 이제 책도 좀 제대로 읽고 리뷰도 써야하는데. 이렇게 살면 안되는 것 같은데.

 

  내 삶도 블로그처럼 이렇게 대충 버려두어도 버려 놓은 것 치고는 잘 굴러갈까. 삶을 버려 놓은 것 치고는 잘 굴러가는 정도로 살아도 되는걸까. 구르기는 할까. 겁은 나고, 희망은 없고, 징징대고 싶지만 이제 그럴 나이도 아닌 그런 날이다. 벙- 하고 시간이 흐르는 날들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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