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대충 훑었을 때 확 끌리지 않더라도 일단은 믿고 읽어보는 편이다. 배신감을 느끼게 한 책이 많았더라면 그런 습관은 없어졌을텐데, 썩 그런 적이 없던 모양인지 몇 년 전부터 이어온 습관은 여전히 그대로다. 한때 너무 요런 감성에서 핫이슈인 인물들 책이 자주 나오는 것 같아 불만스러웠는데 이젠 또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마음이 잔잔해지고 싶을 때 찾으면 딱 좋을 책이 달에선 자주 나온다.
이 책도 그래서 집어들었다. 쿡방에 지쳤다는 말이 딱 맞겠기도 하겠다. 고급진 요리는 먹어 본 경험도 만들어 본 경험도 그닥 없기에 쉐프들의 멋진 요리 향연은 좀 남의 나라 이야기다. 이 책도 그런 간드러진 요리들을 이야기하였더라면 난 좋았다고 쓰지는 않았을테다. 쿡방에 지친 나를 더 괴롭혔다, 뭐 이렇게 썼겠지.
지친 일상에 위로가 될 만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실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저자는 그런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외출에서 돌아와 대충 먹을 파스타를 슥슥 만들 때에도, 위로가 필요한 날 따뜻한 수프를 끓이는 때에도 그녀의 음식은 따뜻한 것 같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이 책이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잘 포착해 냈다는 거. 그리고 그 외로움을 '난 이 따뜻한 음식을 통해 온통 치유받았지!'라고 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로운 건 외로운 거고 음식이 따뜻한 건 따듯한 거다. 한 줄의 위로는 주었지만 그래도 외로운 건 외로운 것일 뿐이라고 솔직히 적혀있는 것 같아서 좋다.
내가 사는 동네에 작가의 까페가 있었더라면 아마 나는 죽치고 앉아 있는 단골이 되었을거다. 커피로 시작해서, 주전부리를 시켜먹나다, 결국 친구를 불러내 수다를 떨고 집으로 갈 내가 그려진다. 그런 손님을 새초롬한 눈초리로 나가기만을 기다릴 주인이 아니라 같이 여유롭게 책을 읽고 음식을 만들어 낼 주인이지 않을까 막연히 상상을 한다.
자기 전에 책을 읽는 습관이 있기도 하고 해서, 짧은 여행이라도 한 권 정도의 책은 챙기지 않으면 허전하다. 문제는 들고가서 읽지 않는 때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언제 읽어도 좋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 이유에서다. 이 책은 방콕 여행에 가져갔는데, 지친 여행의 하루를 끝맺음해주는데 참 좋은 책이었다. 여행의 흥분과 지침을 적당히 잔잔하게 만들어 주었던 책, 언제 식사 한 번 하자는 말이 지닌 온기 만큼의 온기가 배어나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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