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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쓰기의 말들 - 은유

by 푸휴푸퓨 2019.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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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은유

 

  좋은 문장 몇 개를 골라내고, 하나마나한 말을 대충 적어 리뷰를 쓸 바에는 쓰지 않는 편이 낫다고 외치는 글 앞에서 무엇을 더 첨언할 수 있으랴. 은유 작가의 책은 얄팍한 기술을 담은 적당한 글쓰기 조언 서적과는 전혀 다르다. 작가가 직접 깊이 있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통찰한 내용이 너무 잘 보인다. 덕분에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내 길을 계속 걷긴 해야지. 올해 처음으로 사고싶다 생각한 책이다. 토요일에 들을 그녀의 강연이 정말 많이 기대가 된다. 봄에 새로이 설레는 일이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정말이지 별이 다섯개!

 

문장의 힘이 무엇일까. 나는 문장 단위로 사고한 덕에 직관이 길러졌다. 내가 그랬듯이 다른 이들도 한 줄 문장에 즉각 반응했다. 참 신기했다. 수업 시간에 내가 하는 잔소리가 땅볼처럼 굴러가는 지리멸렬한 공이라면, 훌륭한 작가의 한 줄 문장은 깨끗하게 담장을 넘는 힘찬 홈런 볼이었다. 그 말들은 저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마음의 울타리 안으로 쏙 들어갔다. (17쪽)

 

나를 본다. 비교적 생활이 안정된 시기의 글쓰기 욕망은 순했다. 영화나 책 읽기 같은 문화생활 향유의 후기였다. 쓰면 좋지만 안 써도 무방한 글. 향유의 글쓰기. 내가 글을 부렸다. 생활의 기반이 흔들리고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면서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릴케의 표현을 빌리자면, “글을 쓰지 않으면 내가 소멸될게 분명했다.” 생존의 글쓰기. 글이 나를 쥐었다. (27쪽)

 

진실되지 못한 글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현란한 수사로 치장을 하게 되면, 그것은 고운 헝겊을 누덕누덕 기워 만든 보자기로 오물을 싸 놓은 것처럼 흉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한승원) (56쪽)

 

공부는 독서의 양 늘리기가 아니라 자기 삶의 맥락 만들기다. 책상과 부딪치면서 마주한 자기 한계들, 남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얻은 생각들, 세상은 어떤 것이고 사람은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고 수정해가며 다진 인식들. 그러한 자기 삶의 맥락이 있을 때 글쓰기로서의 공부가 는다. (109쪽)

 

글에서 보여주어야 할 것은 주제와 관련된 상황의 구체성이다. ‘어제 카페에서 하루 종일 만화책을 읽었다가 아니라 창이 넓은 2층 카페에서 만화 레드 로자를 읽었다가 좋다. 별거 아닌데 싶은 자잘한 요소 하나하나가 인물의 욕망을 밝히고 주제의 전달을 돕는다(중략때로 십 년 세월을 한 줄 문장으로 압축하고 때로 일 분 동안 감정의 요동을 한 페이지에 담을 수도 있다. 굵기가 다른 여러 개의 붓을 쓰는 화가처럼, 과감하고 섬세하게 표현하기. 다 말하지 않고 잘 말하기가 관건이다. (113쪽)

 

나쁜 글이란 무엇을 썼는지 알 수 없는 글, 알 수는 있어도 재미가 없는 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만 쓴 글, 자기 생각은 없고 남의 생각이나 행동을 흉내 낸 글, 마음에도 없는 것을 슨 글,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쓴 글, 읽어서 얻을 만한 내용이 없는 글, 곧 가치가 없는 글, 재주 있게 멋지게 썼구나 싶은데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없는 글이다.(이오덕) (126쪽)

 

이십 대 청년들에게도 말했던 내용이다. 글쓰기를 연습하고 스펙도 쌓을 겸 서평단이나 기자단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을 본다. 그런데 쏟아지는 인터넷 서평이나 기사에서 한 존재가 드러난 글, 목소리가 생생한 글은 드물다. 책의 서문을 요약하거나 좋은 구절을 정리한 고만고만한 글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안쓰는 것보단 낫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글쓰기는 감각의 문제다. 남의 정신에 익숙해질수록 자기 정신은 낯설어 보인다. 들쑥날쑥한 자기 생각을 붙들고 다듬기보다 이미 검증된 남의 생각을 적당히 흉내 내는 글쓰기라면 나는 말리고 싶은 것이다. (139쪽)

 

인생에서 스친 무수한 인연과 겪은 수많은 사건에 자기 행동의 기원이 있다. 다른 사건과 관계가 투입되는 운동 속에서 한 존재는 변한다. 자기 경험을 기반한 글쓰기는 관계 속에서 나를 관찰하고 변화를 기록하는 일이다. 가족, 친구, 애인, 행인, 스승, 동료 등이 빠지지 않았나 살펴야 한다. 그들이 없으면 나를 설명할 수 없다. (145쪽)

 

크게는 두 가지 질문을 오가면서 읽는.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가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잘 전달되었는가’. 그 단어가 정확한지, 문장이 엉키지는 않는지, 단락 연결이 매끄러운지, 근거는 탄탄한지, 글의 서두와 결말의 톤이 일관된지, 주제를 잘 담아내는지. 살피고 고친다. 10매 내외의 칼럼 원고 한 편이라도 퇴고는 버겁다. 그러니 책 한 권 분량은 가혹하기까지 한 것이다. (193쪽)

 

글쓰기 수업 마지막 시간에 학인들에게 말한다. “작가로서 자의식을 가지세요. 나는 왜 무엇을 쓰고 싶은가,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무엇을 나누고 싶은가,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 물음을 어루만지는 동안 아마 계속 쓰게 될 거예요.” (215쪽)

 

쓰기의 말들
국내도서
저자 : 은유
출판 : 도서출판유유 20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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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8 - [REVIEW/BOOK] - [Book Review] 글쓰기의 최전선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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