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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 - 사카이 준코

by 푸휴푸퓨 2019.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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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

 

 

  읽으면서 묘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 2014년에 이런 책이 발간됐다면 어떤 반응이었을지 궁금하다. 2019년에 발간되었다면 분명 시대를 못 따라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법 한데, 2014년에는 수용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2014년의 일본도 이 책을 출간하고 우리나라에서 2016년에 번역도 된 건가.

 

  애매하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중년의 마음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얼마 전 윤용인 작가의 ‘내일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을 읽었고 중년 남성의 마음을 아주 살짝 알게 되었다. 이번엔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싶어 골랐는데 흠, 흠.

 

  중년이 건강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부분은 참 좋았다. 서로 좋지 않은 부분을 이야기하고 호들갑을 떨면서 서로 위안이 된다. 하지만 정작 더 나이가 많은 노인들은 나쁜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중년은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도 죽음이 아직 먼 이야기지만 노인들은 눈앞에 닥친 현실이니 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단다. 중년 여성들의 여행 이야기도 좋았다. 중화요리를 먹으로 교토로 간다. 우리 엄마도 친구들과 가는 여행이 가장 좋다고 했다. 가족들과는 양보해야하는 취향을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다. 중년 여성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떠들더라도 눈총을 주지 말자. 우리 엄마를 생각하며.

 

  다만 ‘여성성’에 대한 그녀의 시각일지, 일본 사회의 시각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본에서 미투 운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작가가 스스로 여자는 소녀 혹은 엄마여야 한다는 이분법적 여성 대상화를 뼈저리게 내재화하고 설명한다는 점이 상당히 불편하다. 이에 대해 문제 제기가 아닌 이건 그냥 중년 사회 현상일 뿐이라며 설명하는 태도가 내 마음을 정말 미묘하게 만든다.

 

  왜 우리는 항상 소녀인 채로 있고 싶은 걸까. 그 이유는 미숙함을 사랑하는 일본의 문화가 우리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작고 깨끗할수록 존중받고, 성숙한 어른이란 존재는 불결하게 여기는 나라다. 말하자면 귀여운 것이 사랑받으니까 그러고 싶은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예전의 무구했던 그대로의 모습이고 싶다는 욕구가 큰 것이다. (중략) 남성은 어른이 된 여성에게 소녀성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이 여성에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소년다운 면모를 포함해 모든 것을 받아들여 줄 수 있는 모성애다. 소녀성은 진짜 소녀가 가지고 있어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 동년배 남성의 감각이다. 결코 소녀다운 중년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어쩐지 이해가 된다며 지레 포기하는 말을 하는 마음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카이 준코 작가는 본인이 순결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나요? 순결이란 잣대가 대체 왜 필요한지 알 수 없다. 그럼 일본 남성은 순결함의 여부에 따라 판단을 받는지? 왜 여성상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여자는 야한 동영상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해야 해... 야한 동영상에 나오는 여성상이 제대로 된 기준이기나 하냔 말이다. 비뚤어진 기준을 스스로 납득하곤 지레 여성을 폄하하는 모습이 정말 속상하다.

 

일본 사람들은 새로운 것, 젊은 것을 선호한다. 남자 어른이 10대 아이돌에게 빠지는 것도 그들이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 중년의 성숙한 매력을 몰라주느냐, 당신들은 수준이 낮다고 화내봤자 어쩔 수 없다. 우리 중년이 보더라도 같은 또래보다 젊은 쪽이 훨씬 예쁘다고 생각하기에 뭐 그들이 그러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야라며 어느 시점에서 포기하게 된다. (중략) 그렇기에 몸이 흐트러지고 있는데 섹시함이라는 경기장에서 내려오지 않는 중년 여성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이때 감도는 불결함이란, 말하자면 청결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순결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저 화만 나지 않고 애매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그런 기준을 내재화하고 납득하기까지 일본의 여성들이 겪었을 고통이 이해가 가서다. 그 내재화에는 반드시 체념이 있을 수밖에 없어서, 그리고 그 체념을 나도 때로는 그냥 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다. 그저 평온한 에세이를 읽고 싶었을 뿐인데 평온하지 못한 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나도 이제 뭐 하나 그냥 넘길 수 없는 극성맞은 사람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싶어 마음이 찔끔찔끔하다. 하, 이 책이 정말 주류 일본을 설명하고 있을까? 한 권으로 모든 걸 속단할 순 없겠지? 혹시나 만약에 그렇다면, 일본에 살지 않아서 진심으로 다행이다.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
국내도서
저자 : 사카이 준코 / 조찬희역
출판 : 바다출판사 201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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