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은 남자친구와의 1주년이었다. 끝을 생각하고 사귐을 시작하지는 않지만 얼마나 이어질 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으니, 귀여우니 한 번 손 잡아볼까 했던 마음이 1년을 훌쩍 넘어갈 줄은 미처 몰랐다. 벌써 1년이 되었나 싶기도 하고.
네가 1년 전 손을 내밀었던 합정역에서 그때처럼 내가 탈 지하철을 기다리니 웃음이 났다. 너는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럽구나. 네가 한 아름 안겨준 꽃을 바라보며 너를 바라보니 절로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이렇게 예쁜 걸 줘서 고마워. 앞으로 1년도 잘 부탁해, 하는 말에 너는 1년만? 하며 되묻는다. 자기는 20년을 부탁한다고, 내가 20년은 좀 짧다니까 금방 50년으로 바꾸는 너를 나는 많이 사랑한다. 내 옆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1주년이지만 평범한 데이트를 했다. 밥을 먹는데 젊은이들이 많은 동네 구경에 신이 나서 이리 저리 두리번거렸다. 단짠단짠을 위해 케이크도 먹으러 가는데 정말이지 더워서 여름이라고 푸념했다. 케이크로는 모자라서 백미당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뽈뽈뽈뽈 영화를 보러 걸어가니 생각보다 영화가 20분이나 늦게 시작하더라. 복슬한 털에 반해 피카츄를 보러갔는데 으음, 피카피카츄! 남은 건 마음 속 소중한 무언가가 깨져버린 허탈한 너와 나뿐이렷다. 귀여움만을 위해 이런 영화를 보자고 한 내 잘못이라고 몇 번이나 사과했다. 너는 그저 피카피카츄, 피카피카츄를 연발했다. 피카피카츄!
이리저리 떠돌면서 필요한 생필품을 사고, 헤어지기 싫지만 내일의 출근을 위해 미적미적 지하철역에 가는데 네가 꽃을 사주겠다고 했다. 밖에서 기다리며 풀 사이로 보이는 네 모습을 몰래 찍어도 보고 훔쳐도 보는데 행복했다. 그냥 지켜만 봐도 좋은 기분이 이건가? 금방 나올 줄 알았던 너는 한참 후에야 땀을 뻘뻘 흘리며 나왔다. 생각보다 훨씬 커다란 꽃다발이 안겨있었다. 큰 꽃에 큰 사랑이 느껴져서 입꼬리를 내릴 수 없었다. 사랑아, 네게 꽃을 다발로 받은 건 처음이야!
너와 무슨 생각을 하며 1년이 보냈는지 모르겠다. 난 항상 고민이 많았다. 1주일 내내 고민을 하다가도 한결같은 네 얼굴을 보면 모든 마음이 녹아내렸다. 네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 벌써 1년이지만 또 고작 1년이라서 나는 너와의 미래를 길게 기대해. 아주 길게, 아주 행복하게, 계속 배려하고 사랑하기를, 많이 주고 많이 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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