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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ING

위기를 넘어가자

by 푸휴푸퓨 2019.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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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TuAnh from Pixabay

 

  남자 친구와 함께하는 삶의 시간이 길어진다. 나와 함께하자 말해주어 고마웠고, 혹시나 나를 떠날까 불안했던 시기를 지나, 함께 있음이 너무 편안해서 평생 이렇게 살리라 결심하는 시기도 지났다. 이제 나는 고민한다. 너는 왜 더 달리기에 몰입하지 않을까. 그렇게 부탁하고 또 부탁하는 계획을 대체 왜 세우지 않을까. 답답함이 커졌다. 너와 나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대신 간간히 내가 감정을 터뜨리면 네가 내 말에 동의하며 나를 달래는 대화를 한다. 미안해. 미안해.

 

  처음에는 내 말을 다 수용해 주는 너에게 대단함을 느꼈다. 어떻게 화를 내지 않지? 내가 분명 너의 심기를 거스를지도 모르는 말을 했는데도 이렇게나 차분하게 날 달래주다니. 하지만 내가 점점 지쳐간 건, 미안하다는 말로 정리된 네 입장은 내게 너의 진짜 생각을 제대로 전달해 주지 않는데다가 너의 행동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5개월에 한 번씩 나는 너에게 같은 이야기를 하며 답답함을 토로한다. 이번에는 미안하다는 말에서 끝내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했다.

 

  네게 말을 꺼내기 전 나는 스스로 물어보았다. 내가 너를 참을 수 없게 된 것은 어쩌면 네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변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보니 맞다. 내가 변했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삶에 지쳐있었다. 먼지처럼 사라지기를 바라던 시기를 지나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나를 너는 강하게 이끌어 관계를 맺고 또 안정감을 퍼부어주었다. 네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처럼 단단하고 건강하지 못했을 테다. 그러게, 아팠던 내가 건강해졌구나. 그래서 열정이 넘치는구나.

 

  나를 행복하게 치료해준 너와 너의 성격을 숙고했다. 네게는 정말 따뜻한 여유와 안정이 있다. 너는 흔들리는 나를 잡아주고, 다독여주고, 무얼 해도 좋다 예쁘다 말해주었다. 네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이렇게 치유되지 못했을 거다.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몸무게를 맞이하고도 절망하지 않은 건 그럼에도 네가 변하지 않을 걸 믿어서였고, 그렇게 열심이던 화장을 지울 용기도 너로 인해 처음 낼 수 있었단 말이다. 그러니 내가 가장 좋아하던 너의 성격을 가장 답답하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 점으로 인해 얼마나 많이 행복했는지 생각한다면 더더욱.

 

  너와 이야기를 했다. 너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님을, 문제가 있으니 새로이 계획을 짜보자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점에 지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또다시 미안하다는 너에게 나는 미안하다는 말 말고 너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했다. 혹 미안하다는 말로 나와의 다툼을 회피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렇지는 않아 보여 안심했다. 네게 나름대로의 대답도 들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다르겠지. 이번에는 내 말을 이해했겠지. 이번에는 네 방식대로라도 조금은 행동해주겠지.

 

  네게 많은 것을 받아서 건강해 졌으니, 이번에는 내가 너를 도와 너를 앞으로 나가게 해주고 싶다. 내가 받은 만큼의 큰 도움을 네게 줄 수 있을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지. 기대하면 실망하니까.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다시 온다면 생각은 또 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또 너를 믿으며 이 상황을 넘어간다. 너를 사랑하니까. 바라만 봐도 따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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