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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19.8.14. 잘 살고 싶은 나는 행복론을 고민한다

by 푸휴푸퓨 2019.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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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x Duzij  on  Unsplash

 

  난 항상 행복한 사람이고 싶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철저히 결과를 중시했다. 성적이 곧 그 사람의 점수라 생각했다. 노력하면 외워지지 않는 것은 없으니 학교 성적은 그 사람이 노력을 그대로 반영하는 숫자로 보였다. 나는 꼭 높은 점수를 받아야 했다. 100점이 아니면 내가 얼마만큼 노력했건 간에 그냥 나태한 사람이니까. 나를 채찍질하는 말을 온갖 곳에 다 써뒀고 항상 긴장했다. 잘 나온 성적을 확인할 때나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짧게 추켜 세워줄 때면 짜릿함이 치솟았다. 내가 이런 대단한 사람이야. 알아? 좋은 결과만이 내 행복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해 온갖 똑똑한 사람을 만나며 내가 얼마나 평범한지 알게 되었다. 알고보니 난 공부에 소질도 비범한 창의성도 없어서 대체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없었다. 이제 아무리 노력해도 100점을 쉽게 달성하지 못하리라.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땐 나의 존재 가치가 없어진 기분이었다. 좀 더 학교 밖 세상을 겪으면서 성적이라는 한 가지 척도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단 당연한 사실도 (뒤늦게) 알아챘다. 모든 사람이 같은 출발점에서 삶을 시작하지도 않네. 그럼 대체 100점이 뭐지? 무엇에서 100점을 맞아야 하는지, 대체 100점은 왜 맞아야 하는지, 100점이란 숫자의 기준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세상은 넓고 내 세계는 좁았다. 난 그냥 행복한 사람이고 싶었을 뿐인데.

  서른을 두 해 남긴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 그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만점이라는 목표가 중요치 않다면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할까? 난 자주 행복하고 싶었고, 잠깐 잘나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매순간 나를 호되게 다그치는 일도 그만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행복이 목표가 되어야했다.

  매일의 과정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매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정신없이 하다가 문득 내가 최선을 다했음을 느끼면 스스로에게 큰 만족감을 느낀다. 다른 이들에게 대단하다 인정받지 않아도 좋다. 내가 재미있고 만족하는데 뭐가 더 필요해? 목표가 나의 바깥에 있을 때보다 나의 안에 있는 지금 나는 나를 훨씬 사랑하게 되었다.

  원대한 결과가 아니라 매일의 과정에 집중하다보면 결과의 성공 여부와 내 행복은 상관이 없다. 실패해도 재밌어서 계속 해야 할 이유가 생긴다. 실패자의 정신 승리라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난 정신 승리도 좋아한다. 정신 승리는 회복 탄력성이라고도 불린다. 실패에서 빨리 회복하고 일어나는 힘, 그래서 또 금방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바로 정신 승리다. 얼마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인지!

  그러나 모든 정신 승리가 회복 탄력성이라 불릴 수 있지는 않음을 명심한다. 정신 승리는 때로 변명과 자기기만일 수 있다. 정신 승리가 회복 탄력성인지 변명인지를 구분하는 나의 기준은 명확하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이 최선은 각자 다르기에 객관적으로 판단이 안 된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 누구도 정확히 짚어낼 수 없다. 정말 최선을 다했는지, 그 일에 쉼 없이 몰입했는지는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다. 나는 내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나는 행복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만족할 만큼 열심히 하면 행복해진다.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았고, 이제 만족을 위한 최선에 집중한다. 최선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은 재미없지만 잘나고 싶어 나를 다그치는 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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