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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19.8.19. 단단한 마음가짐과 꼰대의 경계를 찾아서

by 푸휴푸퓨 2019.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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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Karolina Grabowska from Pixabay

 

  나는 어릴 적부터 내가 외골수 기질이 있다는 걸 알았다. 관심 있을 땐 파고 또 파면서 관심 없는 분야는 철저히 외면했지. 놀이도 TV도 사람도 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은 '남이사'였다. 누구누구가 이런 일이 있대. 누가 이런 말 해서 싸웠대! 그래 봐야 뭐, 남이사. 이런 내가 약간은 걱정스러우셨던지 엄마는 내가 더 좋은 대학을 가기를 바라는 대신 좀 놀만한 환경의 대학을 가길 원했다. 

  대학에 가서는 사람 구경을 좋아하게 되었고(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사람 구경을 많이 할 수 있는 일이 제일 좋았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보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 내가 알았던 세상이 알고보니 너무 작더라고. 동시대 사람조차 다 이해하지 못하잖아!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걸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두리번거리고 싶었다.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고 사람도 보고 나름대로 열심히 뚤레뚤레 걸어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인지, 특히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보고 싶은 분야만 열심히 보면서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잘 만들고 싶었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게 가장 맞는 방향은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런데 어쩌면 그 과정이 편향으로 가기 위한 지름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싶다. 이제 나는 밥 먹여줄 일만 잘하면 아무도 아무것도 강제하지 않는다. 그냥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취향에 맞지 않으면 유튜브 채널 구독은 바로 끊는다. 마음과 맞지 않는 이야기 같으면 책도 쉽게 덮어버린다. 

  나를 완전히 믿을 수 없다. 어쩌면 70살이 되어도 내 생각에 의심을 가지고 있을 수 있겠지만(그게 바람직한 상태이긴 하겠지) 그래도 이야기를 완성하고 안심하고 싶은데 대체 불안은 끝이 없다. 좋은 생각을 많이 마음에 심었다고 생각하다가도 혹 그 생각이 협소한 세계에서만 통할까 걱정이 된다.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확신하는 것들이 있다. 확신 하고 있는 줄도 모르게 당연하다 믿어버리는 생각들.

  남자친구와 미래 이야기를 하다가 말했다. 네가 돈을 많이 벌거나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야. 심지어 직장을 꼭 옮기지 않아도 좋아. 다만 나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그걸 왜 하는지 알고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같은 일을 하더라도 주어져서 그냥 하는 사람과 왜 하는지 알고 선택해서 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삶을 사니까. 자신의 선호를 알면 더 만족스럽게 살 수 있기에 섬세한 취향은 중요하다. 그저 안정적이라서 좋다는 말은 하지도 말라고, 깊게 생각해보고 살자는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전했다.

  그런데 어느 부분이 문제였을까. 자신의 선호를 파악하는 일이 나에겐 살면서 꼭 해야 할 일로 느껴졌는데 남자 친구의 절친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당혹스러운 답을 보내주었다. 안정적으로 사는 게 어떠냐고, 폄하하지 말라며 '90년생이 간다'의 일부분을 찍어 보내주었다. 

이런 양가적인 평가는 우리가 논하는 90년대생에게도 해당된다. 하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다. 9급 공무원을 원하는 청년에게 기성세대가 보이는 가장 흔한 반응은 '열정이 사라지고 도전정신이 없어서, 그저 편한 복지부동의 일만 하려는 나약한 세대'라는 부정적인 평가이다. 또 다른 하나는 '기성세대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을 개척하는 세대'라는 긍정적인 시각이다. (중략) 20세기 말부터 유행하는 청년 세대의 명칭은 거의 예외 없이 수동적이고 부정적이다.
  (중략) 우리 사회처럼 짧은 시간에 급격한 변화를 겪은 곳에서는 세대 간의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수 있다. 각 세대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이룩해놓은 업적과 논리를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고 싶어 하고,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기성세대의 강요를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게만 된다.

  

  그래서 결국, 내가 기성세대이고 새로운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라는 말이었다. 이 친구의 대답을 보고 처음에는 화가 났고 황망했다. 내가 언제 안정적인게 나쁘다고 그랬어? 나도 안정적인 직장 다니고 있는데, 내 말은 같은 안정적인 직장이어도 그중에 내 선호와 맞는 직장이 있다는 이야기란 말이야. 아무 안정적인 직장 아니고 내 선호랑 맞는 그 직장에 가기 위해서 노력하자는 이야기가 뭐가 그리 나빠서 나를 꼰대 취급해? 어째 같은 나이인 얘는 이렇게 꽉 막혀서 방어적인 소리만 하는지 짜증이 났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 말이 전달 과정에서 좀 곡해된 것 같았다. "안정적이라서 좋다는 말은 하지도 말자"는 부분이 내 뉘앙스와 다르게 들렸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내 말의 뉘앙스를 못 듣고 그저 워딩만 보면 내 말은 상대를 무시하는 일갈로 보였을 수 있지. 뜻을 제대로 이해하면 내 의도와 마음을 공감해 줄거라고 진정해 보았다. 그래그래, 나도 말만 보면 짜증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남자 친구는 잘 좀 이해해서 전달해 주지 말을 뭐라고 전한 거야. 내 생각을 다시 구구절절 긴 말로 풀어내서 남자 친구에게 전했다. 남자 친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안다며 다독여주었다.

  긴 문장을 보내고 천천히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은 이해의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내 말을 제대로 이해했어도 화가 났을지 몰라. 내 마음과 선호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치인 환경의 사람이 세상에 많은데 내가 그걸 다 무시했을지 모른다. 나를 믿을 수 없었다. 내가 당장 굶게 생긴 상황에 닥쳐본 적이 없어 너무 순진한 생각을 하고 살았나. 사실은 남자친구도 듣자마자 고나리질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불안함이 피어올랐다. 그런데 어디에 뭘 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남자친구에게 너의 생각을 솔직히 말해달라 물었지만 계속 괜찮다고 했다. 친구가 원래 말을 세게 하는 성격이고 나랑 직접 대화하면 이해할 거라고. 나는 아직도 혼돈스럽다. 나는 섬세한 취향을 좋아한다. 그러니 자신의 선호를 파악하자는 이야기를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는지도 몰라. 너무 괜찮은 생각이었던 생각이 알고 보니 꽉 막힌 생각인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이 답답하다. 여전히 선호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는 채다.

  고민하던 차에 좋아하는 에세이스트의 칼럼이 맞춤하게 새로 올라왔다. 꼰대질을 사절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면 정작 꼰대는 (꼰대인 줄 몰라) 계속 꼰대질을 하고 좋은 충고를 해 주는 사람만 몸을 사리게 된다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주변의 좋은 사람도 그렇게 내게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은지 모른다. 나이가 들 수록 가치관을 단단히 세우는 것보다 포용력이 큰게 더 중요하겠다. 최선을 다해서 귀를 열어야지. 닫힌 길을 걸어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오싹하다. 품이 넓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김 혼비의 혼비 백서](4) 간판을 바꿔달기로 했다... '꼰대질 사절'에서 '꼰대질 환영'으로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170600005&code=960100

 

[김혼비의 혼비백서](4)간판을 바꿔달기로 했다…‘꼰대질 사절’에서 ‘꼰대질 환영’으로

분위기 모르는 진성 꼰대들만 남고 진짜 충고는 듣기 어려워진 세상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입맛에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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