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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19.7.30. 이제 거기 없는 당신에게

by 푸휴푸퓨 2019.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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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몸이 너무 좋지 않았다. 목감기가 세게 들었는데 하필 이용자 교육과 사회를 보는 행사가 겹친 주간이었다. 어떻게든 목소리는 나오게 하고 싶어서 이 삼복더위에 약이며 뜨거운 물, 목도리, 마스크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썼다. 그 덕인지 어쩐지 여차저차 일들은 잘 마무리했는데, 여전히 몸은 엉망이었다. 아침마다 눈뜨면 물설사를 했다(갑작스런 밍아웃). 배가 아파서 새벽에 깨는 기분은 정말이지 별로더라.

 

  그래도 해야 할 것들은 해야 하니까. 주말도 스케줄이 빡빡했다. 토요일은 데이트, 일요일은 할머니 49재 날이었다. 데이트는 남자친구에게 취했는지 어쨌는지 아픈지도 모르고 잘 지나갔다. 사랑은 좋은 것이야. 영화도 잘 보고 집에 오니 그제서야 피곤이 몰려왔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너무 아픈데.

 

  몸에 좋은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은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아픈지 1주일이 넘어가니 아픈 것 자체가 귀찮아서 상태를 적당히 무시하기도 했지. 고작 햄버거를 먹고 잤더니 새벽같이 부산으로 출발하는 기차 안에서도 탈이 났다. 아침부터 쉽지 않았고, 또 탈이 날까 싶어 집에 갈 때까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그래도 49재는 중요했다.

 

  불교 의식을 아는 게 없으니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그 공간에서 눈을 굴리고 있는 건 우리 가족뿐이었지만 뭐 어때. 할머니가 계셨더라면 안 해도 된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고 말씀하실 게 너무 당연했다. 개앤 찬타. 고마 하고시푼대로 하믄 댄다! 우리 은녀이 하지마라! 그 와중에 떠나간 누군가를 위해 절의 보살님들이 와서 같이 재를 치러주는 장면은 참 생소했다. 같이 해주는 것도 해주는 거고, 그게 본인들의 복을 짓는 일이라나. 종교인은 그런 생각으로 사는구나 싶었다. 그분들은 경을 집중해서 읽고 있는데 나는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약간 멋쩍기도 했지. 그래도 어쩐지 이 공간 안에 할머니가 흐뭇하게 앉아계실 것 같아서 계속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 이제 멀리 잘 가면 되겠다. 할머니 고마웠어. 할머니 사랑해. 근데 할머니도 이 독경 다 알아듣고 있어? 나는 대체 뭔지 모르겠어! 마지막까지 할머니에게 어린양을 부렸다. 할머니는 다 이해해줄 것 같아서.

 

  재의 절차로 할머니 사진 앞에서 가족들이 차례로 절을 했다. 설날에 할머니께 세배하던 일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지금 저 상 앞에 앉아계실까. 세배 받으실 때 항상 참 흐뭇해 하셨는데, 지금도 흐뭇하게 보고 계실까. 할무이 가족들이 으째 이래 많아졌노. 그제. 우리 할머이는 느무 조켓네. 아들도 다 큿다아이가. 그나저나 난 이제 할머니한테 세뱃돈 받을 일이 없을 텐데, 처음 떠올린 사실에 좀 슬퍼졌다. 할머니가 항상 돈을 넣어두던 서랍장도 곧 그 집에서 떠나가겠지. 할머니는 은행에 가서 신권으로 돈을 바꿔 와 흰 봉투에 넣어주셨다. 세배를 할 타이밍이 되면 할머니는 얼른 세뱃돈을 준비하고, 항상 입는 한복을 입고, 봉투를 숨기고 소파 앞에 앉았다. 가족 순서대로 세배를 하면 늘 하던 덕담을 해주셨다. 근가이 제일이다, 알제? 나도 알지 할머니. 나도 모르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요즘 하고 있는 말.

 

  일어나서 한줄로 절 내를 걸어다니며 무언가 경을 외우고, 밖으로 나가 할머니 영정사진을 태웠다. 연기를 보니 실감이 났다. 저 연기랑 같이 할머니는 지금 갔네. 가버렸네. 정말로 이제 없겠네. 할머니가 엉덩이를 토닥토닥해주면 좋을 텐데, 내 키가 이만큼 컸느냐고 할머니보다도 훨씬 크다고 감탄해주면 어깨를 더 쭉 펼텐데, 이제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구나. 할머니가 영영 떠나셨단 생각에 잠깐 슬펐지만 어쩐지 홀가분했다. 할머니가 훨훨 가볍게 떠나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모든 게 다 괜찮은 기분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남자친구에게 가을에 원한다면 부산으로 여행을 가자고 말했다. 부산에 가는데 할머니 집에 들르지 않는 건 이상해서 거절한 여행이었는데, 이제 그것도 괜찮겠더라고. 가수 임형주가 부른 노래 중에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말라고, 나는 그곳에 없다는 가사가 계속 떠올랐다. 할머니는 사진에도 기장에도 이제 없어. 그치? 살면서 단 한 번도 부산에 놀겠다고 여행간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부산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행복한 시간으로 가득 채워야지.

 

  월요일, 그러니까 어제는 컨디션이 어찌나 안 좋던지 제발 출근을 안 할 수 있었으면 했다. 출근해서도 졸린 건지 무기력한지 배가 콕콕 쑤시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유야무야 시간을 보내고 퇴근하니 하루 종일 뭘 했나 싶지만 그냥 그랬다. 그래도 기침이 좀 나아진 것도 같았다. 엄마가 해준 저녁을 먹으니 어찌나 맛있고 든든한지 기분이 확 바뀌었다.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또 책을 봤다. 할머니 집에서 엄마가 가지고 온 사진도 봤지. 할머니 결혼사진과 젊은 시절 사진은 처음 봤는데 깜짝 놀랐다. 할머니도 이런 젊은 여자였구나. 예뻤구나. 할아버지도 젊었네. 큰아빠는 사촌오빠 애기 때랑 똑같이 생겼네. 작은 아빠는 정말 형들이랑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구나. 우리 아빠는 중학생 때 이미 얼굴이 어른 완성형이었네. 할머니 팔순 잔치는 영국에 가있느라 못갔는데 다들 재밌게 놀았네. 할머니 노래도 불렀네! 할머니가 갖고 있던 엄마아빠 결혼사진은 정말 너무 좋았다.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말이야. 젊은 나의 부모님도 좋고 중요한 날이라고 좋은 한복 갖춰 입고 어색하게 사진 찍은 나의 젊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할머니도 다 너무 좋았다. 결혼식하고 사진 찍고 그런 거 정말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꽤 좋은 일이라고 마음을 바꿨다. 다 보고 평화롭게 잠이 들었다. 잘 잤다.

 

  가끔 떠올리고 그리울 거다. 사진 속 젊은 여자가 온갖 풍파를 겪고 할머니가 되어 나를 만났듯이, 나도 시간이 지나면 할머니가 되고 또 언젠가 할머니가 있는 거기로 간다. 그때 또 만나 할머니. 떠올릴 때 슬퍼하지 않을게. 웃으면서 좋게 떠올릴게.

 

  오늘 아침에는 정말이지 며칠 만에 물설사를 하지 않았다. 산뜻한 기분으로 출근을 하는데 기침도 거의 멎었다. 몸이 좋다. 괜찮다. 몸이 말해준다. 긴 만남과 작별이 끝났다. 우리 할머니 안녕,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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