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사서라 밝히면 항상 따라오는 말이 있다. 업무시간에 정말 책 읽어요? 혹은 책 많이 읽어서 좋겠네요. 대답은 늘 같다. 제가 있는 부서는 책이랑 관련 없는 일을 하고, 관련 있는 부서라고 해도 책 겉표지나 좀 보지 내용을 읽는 건 아니에요. 속으로 외친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구요! 돈 받고 일하는데 맨날 책이나 어떻게 읽어요! 대체 누가 월급을 줍니까!
같은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그게 상식인가 싶기도 하다. 그들이 만나는 사서는 공공도서관 혹은 대학도서관의 대출대에 앉은 누군가겠지. 그분들이 책을 자주 읽고 있는 건 사실이니 지극히 당연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대출대에 앉은 젊은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계약직이거나 단기 아르바이트라는 (슬픈) 사실 쯤은 이용자가 굳이 알 필요는 없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간히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아르바이트생을 보고 카페에서 일하면 책 읽으면서 돈버니 좋겠네요 하는 사람은 없는데. 대출대 빼고는 사서들이 사무실 안에서 일하다보니까 보실 일이 잘 없어서 더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하고 덧붙이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위층에만 올라가면 책이 수십만 권 있는데, 자타공인 책덕후인 내가 유혹을 버텨내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래서 나는 가끔 종이에 읽고 싶은 책 몇 권의 청구기호를 끼적거리고 책 사냥을 나선다. 직장인의 활력소가 커피타임이라면 나의 활력소는 책 사냥이다. 두구두구두구두구 책 사냥 타임!
책 사냥은 어느 책을 찾아올지 섬세하게 선별하는 데서 시작한다. 읽고 싶었던 책을 모아두었던 핸드폰 폴더를 연다. 도서관이 소장 중이고 당장 대출이 가능한 책이 그날의 사냥감이다. 이때 청구기호가 유사한 아이들만 데려오면 동선은 짧겠지만 읽기에 질리니 유의한다. 적당히 분야를 배분하고 혹시나 자리에 없을 책을 대비해 원하는 책 수보다 몇 권 더 준비한다. 모든 책이 제 자리에 있다면 뫄뫄는 빌려오지 말자고 결심을 하는데 대체로 그 결심은 지켜지지 않는다(빌려서 사무실 책상에 뒀다가 천천히 가져가면 되잖아, 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가져가자는 결심조차 잘 지키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서면 화장실을 간 셈 치고 다녀와야 하기에 속도가 생명이다. 허겁지겁 경보를 하면서도 발소리는 죽이는 고난도 스킬이 필요한데, 그 와중에 찾는 책 옆에 있는 매력적인 다른 책에 눈이 들어오면 그 날의 여정은 더욱더 험난해진다. 한 권, 두 권 찾을 때마다 마음이 뿌듯하다.
이동 중 서가를 정리하는 단행본실 선생님을 피하는 일도 중요하다. 모퉁이를 돌기 전에 항상 경로를 확인하고 누구라도 마주칠라 치면 얼른 옆 서가로 도망간다. 그럼에도 모든 만남을 막을 순 없는 법. 태연한 척 멋쩍게 웃으면 왜 왔는지 안다는 표정으로 인사해 주시는데, 어쩌면 이런 책 사냥을 나만 하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면쩍은 기분도 원하는 책을 찾고 나면 금방 잊어버린다. 읽고 싶은 책을 한 아름 찾아내면 신이 난다.
책을 다 찾았다고 끝난 건 아니다. 우리 도서관은 단행본실이 워낙 넓어서 입사 1년 반이 넘은 지금도 길을 잘 모른다. 표지판과 방향표시에 의존해 서가를 돌고 돌다 보면 원하는 출구로 내려가지 못하기 일쑤다. 기껏 출구라고 나갔더니 막아둔 계단을 발견한 적도 수없이 많고, 열에 아홉은 원하지 않는 출구로 내려오곤 한다. 여러분, 사서도 도서관에서 길을 잃습니다. 어쩌겠어. 옆구리에 책을 숨기고(전혀 숨겨지지 않는다) 사무실로 돌아올 수밖에.
발끝으로 걸어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아, 5분이 지났다. 1분에 한 권, 5분이면 5권 정도를 찾아내야 성공한 사냥이다. 사냥은 아무리 길어도 10분을 넘지 않는다. 조용하고 졸리는 오후를 반짝 깨워주는 긴장감 넘치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저녁에 책을 읽을 생각에 또 신이 난다. 좋아하는 일 하면 좋겠어요, 하는 말도 참 많이 듣는데 그 말에는 언제나 수긍한다. 네. 일도 좋고 책도 많아서 진짜 좋아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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