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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도서관] #5 책을 아프게 하지 말아요

by 푸휴푸퓨 202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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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출대에 근무하다 보면 안타깝거나 화난 표정으로 책을 들고 오는 이용자가 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아, 책에 낙서가 많구나. 같이 안타까워하고 책은 할 수 있는 선에서 낙서를 지우지만 그렇다고 도서관 전체 자료의 낙서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낙서가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라 읽던 책에 낙서가 있으면 독서고 뭐고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낙서부터 지운다. 그나마 연필로 해주면 양반이지.  어떻게 남의 책에 볼펜이나 형광펜으로 줄을 그을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도대체 누가 낙서를 했는지 찾아낼 방법이 없다. 쉬운 해결책이 있었다면 이미 도서관이 실행하지 않았을 리 없다. 대출해서 하셨나요? 그럼 반납 때마다 모든 책의 상태를 살피고 받아야 하는데. 자료실에서 읽다가 하셨나요? 앉아 있는 이용자를 감시해야 한다. 그냥 심심해서 서가에 서서 그었을 수도 있겠지. 서가가 수십 개인데 대체 어떻게 따라다니겠나. 결국 개인의 양심 말고는 아무런 해결책이 없다. 진심으로 애통하다.  

 

   뜯어지거나 손상된 책에 대한 문의를 하는 이용자도 있다. 대학생 시절 일했던 어느 공공도서관은 막 개관한 도서관이라 모든 책이 새 책이었는데, 개관 전 책 분류를 위해 붙여둔 스티커 때문에 모든 책의 책 등 상단이 약간 찢어졌다(손상 방지를 위한 책 전용 스티커도 있는 판에,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붙인 사람은 반성하라!). 도대체 새 책을 누가 이렇게 다 뜯어놓았느냐고 아까워하는 이용자에게 차마 해줄 말이 없었다. 그러게요. 저도 마음이 아파요. 웅얼웅얼. 

 

  그런가 하면 도서관 책을 복사해서 제본으로 책을 만드는 이용자도 많다. 절판된 도서거나 구입하기에는 비싼 교재가 주로 그렇지만, 그만큼 도서관에서도 소중한 책이라는 사실을 왜 모를까. 반납된 책에 혹시 포스트잇이 붙어있으면 떼어주려 직접 받은 책은 한 번 다 넘겨보는 편인데 펼치자마자 제본 업체에서 붙여둔 분류 메모를 발견한 날에는 정말이지 속상했다. 제본용 복사를 위해 페이지를 과도하게 펼치다 보면 책이 필연적으로 망가진다. 도서관에서 새로 양장까지 해서 보관하는 책이라고요! 뭉터기씩 분리되어 너덜너덜한 책을 본 그 날, 정말 인류애가 메말랐다. 이름이 적힌 메모조차 떼지 않은 이용자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종이를 붙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테이프를 생각해볼 수 있지만 사실 찢어진 책을 스카치테이프로 붙이면 장기적으로는 책에게 좋지 않다. 집에서 책에 테이프를 붙여둔 뒤 10년 정도 지나 본 적이 있는지? 스카치테이프는 접착력을 잃고 떨어지는 데다 붙었던 자리가 노랗게 변색되게 만든다. 몇십 년을 보관할 도서관에게는 안 될 일이라 도서관에서는 책만을 위한 접착제나 수리 도구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책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도 있지. 하지만 요즘 도서관에서 책 수리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직원 중 수리 기술을 아는 사람은 한 두 명이나 될까. 아예 고문헌을 수리하는 기술자도 아니고 단행본 수리는 좋은 대접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꼭 필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도서 수리 기술을 배워 도서수리실의 직원이 되어 하루 종일 책 수리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전자 자료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기에 꿈같이 요원한 일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산더미 같은 책을 사고 또 사는 도서관에서 한 명쯤 그렇게 일해도 괜찮지 않을까. 어쨌거나 결론은 교과서처럼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책에 낙서를 하지 말아 주세요. 책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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