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서관 로비층 중앙에는 대출대와 몇 개의 소파, 컴퓨터실, 참고자료실이 있다. 언제부터 이 구성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10년은 거뜬히 넘었다. 문제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자료가 시대에 따라 바뀐다는 것. 컴퓨터를 사용하는 이용자도 많지는 않지만 참고자료를 이용하러 오는 사람은 정말이지 적다.
참고자료는 지도, 연감, 사전처럼 말 그대로 다른 연구를 하다 참고할 자료를 말한다. 하지만 네이버 사전을 두고 종이 사전을 찾거나 구글 지도 대신 낡은 종이 지도 선택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유용했을 자료지만 2020년과는 전혀 맞지 않아서 참고자료실은 어느새 조용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공간 활용 문제가 제기되기를 오래, 결국 해당 구역을 다른 모습으로 바꾼다는 계획안이 나왔다.
막상 공간을 변화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도 그곳에 무엇을 넣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로비는 도서관의 얼굴이라 로비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도서관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럼 우리 도서관이 추구하는 목적은 뭘까? 이런 질문까지 나아가면 아주 기분이 심오해지는데 무엇을 넣어도 충분치 않은 느낌이다. 우리 도서관은 자료도 많고 학구열을 향상하지만 또 새천년을 선도하는 첨단 기술과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이럴 땐 다른 도서관을 기웃거리는 게 좋은 방법이라 몇 년 전 참고할 만한 도서관 리모델링 사례를 조사한 적이 있다. 외국 대학 도서관 1층에는 무엇이 있는지 여러모로 살펴보았는데,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뉘었다.
역사가 오래된 대학에는 그 역사를 함께한 도서관이 있다. 그러니 얼마나 보여줄 게 많겠어. 이런 도서관의 1층에는 멋들어진 전시실이 있다. 주기적으로 전시 교체가 가능할 만큼 소장품이 많은 대학, 역사적 소장품과 연결되는 주제로 지역 주민 세미나를 여는 대학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가득이었다. 과연 전후 70년 중 세워진 한국 대학에 그렇게나 자랑스럽게 내어 보일 만한 자료를 소장한 도서관이 몇이나 있을까. 전시를 해 두면 자료 이용이 어려워지는 점도 문제라, 없는 자료를 굳이 골라가며 전시하기보다는 고문헌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제한적으로 이용하게 해주는 편이 낫다.
새 시대와 발맞추어 가는 도서관을 지향하는 곳, 새로 지은 건물 1층에는 간단한 요기 거리를 파는 카페테리아가 있다(새 시대에는 간식이 중요하다 암암). 우리 도서관만 해도 커피랑 샌드위치를 팔면 학생이 오기도 전에 직원들부터 문전성시를 이룰 텐데. 외국 도서관에서는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며 도서관 내 취식을 금지하는 규칙에 불만을 제기하는 학생도 많다. 하지만 한국의 도서관은 독서실과 분리할 수 없는 사이라 음식을 먹고자 하는 이용자와 고요한 분위기를 원하는 이용자가 늘 충돌한다. 그럼 어떡하겠어. 관리하는 사람은 공부에 집중하겠다는 이용자 편을 들어줘야 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러분, 저도 도서관에서 편하게 음식 먹고 싶어요!
참고자료실의 책이 보존서고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라면 무엇을 시도해보려나 생각해 보았다. 나는 도서관 로비의 작은 소파 공간을 좋아한다. 이곳에는 대출이 되지 않는 잡지와 책이 모여 있는데, 학술적 내용이 아닌 취미와 일상, 가벼운 에세이 류의 간행물이 모여 있다. 웹툰이나 만화책도 일부 마련되어 있어서 내가 이용자였다면 하루 날을 잡고 몇 시간이고 앉아있었을 거다. 대신 이곳에서도 음식물은 먹을 수 없고 도서관의 조용한 분위기 덕인지 모두가 소곤거리며 대화한다.
그러니 저 참고자료실을 휴게 공간으로 만드는 건 어떨까. 점점 더 도서관에 와서 굳이 자료를 찾는 사람은 줄어드니 새로운 자료실은 무의미하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매력을 느끼게 하려면 도서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것, 즉 고요한 평안함을 많이 제공해야 한다. 이제 도서관의 얼굴에 자료 말고 분위기를 내세우자는 말이다.
다만 직원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구역은 관리하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에 지금의 참고자료실 자리가 그대로 휴게 공간이 되는 건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벽만 뚫으면 대출대에서 훤히 보이는 위치의 사무실을 다 이전하고.. 인테리어를 바꾸고.. 그럼 예산이 많이 들고.. 차라리 도서관 리모델링을 기다리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쉽지 않은 일임은 알지만 길게 우리 도서관의 모습을 상상하면 결국은 큰 변화가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느릿느릿 변하는 이 도서관에서 나는 어디쯤을 표류하고 있을까.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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