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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주 이야기

by 푸휴푸퓨 2020.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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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보니 올해 사주를 두 번이나 봤다. 수원과 전주의 절에서 각각 보았는데, 사주의 설명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결국 인생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운명의 수레바퀴.. 수레바퀴는 내가 굴려!

 

  회사 동기의 소개로 찾아간 수원의 남자 스님은 좋게 말하면 사이다처럼 말하는 분이었다. 꼼꼼하게 글자를 설명해주는 모습에 공부를 많이 하셨으리라 믿음이 갔지만 듣다 보면 마음이 아팠다. 제가 그렇게 어리석었나요. 지금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건가요! 꾸짖음에 힘들어도 시원하게 말씀해주시는 게 좋아 2년이나 찾아갔다. 친구 집안의 소개로 찾아간 전주의 여자 스님은 스님을 생각하면 떠오를 말을 해주는 온화한 분이었다. 인생은 원래 나쁜 일과 좋은 일이 조화를 이루는 법이니 정말 크게 나쁜 때만 아니라면 다 겪고 살아가면 된다. 너무 좋기만한 사주도 꼭 좋은 건 아니라나. 대신 크게 나쁜 때만은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전체적인 해석은 비슷했다. 수원 스님이 내게 얕은 언덕같은 삶을 산다 했다면(같이 간 친구는 큰 산이라 했다) 전주 스님은 애쓰는 삶인데 엄청 크게 되지는 않는다 했지. 내가 싫어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대성하지 못한다면 싫겠지만 좋아하는 일에 열심이고 적당히 만족하며 산다면 괜찮다. 돌이켜보면 이미 그렇게 살고 있기도 해. 그리고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애정운이다. 두 분은 같으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년 겨울에 내게 결혼이나 애정운이 크게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두 스님 모두 그 때를 분기점으로 이야기했는데, 현재 남자 친구가 있느냐고 해서 만나는 사람의 사주를 불러주었다. 글로 자주 표현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행복한데 화가 나거나 다투고 나서도 앞으로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끼는 사람이다.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요. 

  수원 스님은 얼른 헤어지라고 했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 사람을 만날 기회가 내년 겨울에 온댔다. 시기를 놓치면 안되니까 얼른 안녕하고 보내라며 작년부터 이야기했는데, 심지어 올 3월 즈음 다른 지인이 사주를 보러 갔을 때 그때 걔는 헤어졌느냐고 확인도 했다고 전해 들었다. 반면 전주 스님은 이만하면 되었으니 결혼해서 잘 살라고 했다. 궁합은 너무 좋기만 할 필요도 없고 이정도면 평균 이상인, 나를 오랫동안 꼭 붙잡아 줄 좋은 남편이라 했다. 내년 겨울이면 결혼 준비를 시작할 테니 이때에 잘 준비해서 결혼하면 된다고. 같은 내용을 보신 모양인데 이야기는 정반대였던 거다.

  전주에 가기 전까지 누군가 사주를 언급하면 내가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그건 내 결정이 될 일이지 사주 때문에 헤어지는 일은 없으리라 주장했지만 내심 불안했다. 전주 스님에게 이야기를 듣고 처음 데이트를 하는데 그렇게 마음이 상쾌하고 행복할 수가 없더라.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적으로 나쁜 상대라는 말을 듣고 초연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네겐 차마 말도 하지 못했었다.

  사주가 어떻게 쓰여있건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다. 같은 글자라도 이렇게든 저렇게든 해석할 수 있다. 남자와의 인연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부분이 내 결정으로 이루어져야 마땅한데 막상 불안한 생각이 들면 남의 말에 의지하려 한다. 내 삶은 글자 몇 개가 아닌 나에게 걸려있음을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이고 싶다. 이번에 제대로 느꼈으니 제발 더 단단해지기를 빈다. 비는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될 거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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