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환경운동가처럼 물자를 절약하고 재활용을 완벽하게 생활화했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그저 가만히 있기에는 마음이 불편한 고민 많은 개인이다. 세상에 쓰고 버린 플라스틱을 굳이 추가하고 싶지 않은 그런.
박막례 할머니의 빈티지 그릇 영상을 보았다. 빈티지 물건 구경을 좋아하는 내게 아주 신나는 내용이었다. 스물몇 살에 사셨다는 노란 플라스틱 용기는 얼마나 잘 보관해 두셨는지 새것처럼 깔끔했다.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주고 싶었던 마음이며 예쁜 그릇을 원했던 살림하는 여성의 마음이 느껴졌다. 할머니 덕분에 보는 내내 빵빵 터졌다.
정말 즐겁게 영상을 보고 껐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물건을 줄이다가 할머니의 플라스틱 그릇이 생각났다. 50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아서 예뻤던 노란 그릇은 어쩜 그럴까. 20대의 할머니가 70대가 된 세월을 아무 변화 없이 함께 해냈다. 그럼 50년 후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남길 수많은 플라스틱을 나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다. 내가 사라지고 나서 세상에 남아있을 물건이 적길 바랐다는 게 미니멀리즘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였는데, 나로 인한 쓰레기가 지구에 쌓이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엉망이 되었다. 그 와중에 지구는 오존층을 어느 때보다 훵하니 뚫어버리며 본격적으로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은 갈 데가 없어져 버렸고.
어떻게든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보기로 마음먹었다. 적을 알아야 나를 아는 법이니 플라스틱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망원동에서 알맹상점을 운영하고 듣똑라에도 출연하신 고금숙 활동가의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를 집어 들었다. 플라스틱은 정말 오만군데에 다 있더라? 플라스틱이 아예 없는 삶은 살 수 없겠다고 (빠르게) 수긍하고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선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스테인리스 빨대 쓰기 하나만으로는 부족해.
다음 행동으로 선택한 물건은 비누. 플라스틱 용기가 계속 생산되는 바디워시와 샴푸 사용을 끊었다. 종이로 포장된 도브의 뷰티바는 머리를 감을 때도 몸을 씻을 때도 불편함이 없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향, 샤워 시간 절약은 덤이다. 물도 자연스럽게 절약되니 아주 마음에 들었다.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일회용품도 줄였다. 큰 사이즈 종이컵은 항상 유용해서 하루에도 몇 개씩 썼는데, 이를 대신하기 위해 뚜껑이 없어 들고 다니기가 곤란했던 BTS 텀블러를 꺼냈다. 완벽해! 종이, 플라스틱 컵보다 보온/보냉이 잘 되어서 얼음이 오래간다. 또 늘 한 번만 쓰던 플라스틱 포크를 닦아서 여러 번 쓰기 시작했더니 문득 걱정도 됐다. 이거 원, 퇴직할 때까지 얘랑 함께하겠는데. 쓸 때까지 써보기로 했다. 이런 작은 변화만으로도 쓰레기의 부피가 확 줄었다.
물건을 새로 살 일도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사지 않을 수는 없으니 꼭 필요하다 판단한 물건을 어떻게 사들일까 고민이 많았다. 때마침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에서 내 고민의 단계를 그대로 반영한 내용을 찾았다.
1단계,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관계를 통해 구한다.
2단계, 1단계 실패 시 중고 가게나 중고 물품 직거래를 찾는다.
3단계, 1·2단계 실패 시 재활용 재료를 사용하거나 소수자 고용 등 사회적 가치를 내세운 기업의 제품을 찾는다.
이 3단계를 다 거쳐도 사실 원하는 물건을 찾지 못할 때가 많다. 정말이지 많은 제품의 용기가 플라스틱이다. 체감상 전부 플라스틱이다. 그 와중에 물건의 포장 비닐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도대체 살 수 있는 물건이 없다. 그래서 요즘은 고민의 고민을 거쳐 최소한 1주일은 생각하고 물건을 구입한다.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기는 한데, 그 과정이 아직까지는 재미있게 느껴진다.
앞으로 무엇을 사고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이 더 많아지겠지만, 이렇게 작은 변화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항상 잘하기도 어렵겠지만, 그래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믿음으로 이런 글을 쓴다. 마음이 단정해지고 싶어도 환경이 걱정돼도 돈을 아끼고 싶어도 결국 한 방향의 태도로 흐르는 요즘이다. 기승전 미니멀리즘이 너무 반복되나 싶기도 하지만 어쩌겠어. 요즘 세상은 모든 게 과도하니 나도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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