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목표 중 하나로 방 안의 물건을 반으로 줄이기를 잡았다. 간결하고 단순한 삶, 너무 멋지잖아.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먼저 했던 선택은 기증이었다. 기부가 하고 싶은데 선뜻 현금을 더 내기는 부담스럽던 차였으니 일거양득이렷다! 집안에 휘저으며 쓰지 않는 새 물건을 모으고 보니 크게 두 박스나 되었다. 가까운 아름다운가게로 들고 가려니 무거워서 혼이 났지만 나름 신이 났다. 주면서 신나기 쉽지 않은데 좋은 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더라고.
괜찮은 물건을 모았더니 산정된 기부금 액수가 제법 커서 방을 정리한다며 마구 버렸던 물건이 아쉬워졌다. 기증 과정에 별 게 없다는 걸 알고 나니 두 번째는 더 쉬웠다. 커다란 이마트 가방을 옷장에 넣어두고 오며가며 기증물품을 수집했다. 가게에 서너 번을 다녀오고서야 겨우 기증할만한 물건을 찾기 어려워졌다. 쓰지 않고 놔둔 물건이 참 많았어.
기증하러 갈 때마다 매장에는 물건을 구경하는 사람이 많았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중고 물품을 싫어하지 않는구나. 구제옷도 좋아하고 빈티지도 좋아하는 나는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중고가게를 애용했었다. 작은 도시임에도 중고가게가 많아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되어 편리했지. 서울에도 중고 가게가 많다면 오며 가며 자주 들르련만. 아름다운가게 가까이에 사는 사람이 부러웠다. 물건을 줄이려 방문했으니 새로 사 오지는 말자고 다짐하며 술렁이는 마음을 겨우 눌렀다.
기증에 언제까지나 열을 올릴 것 같았던 내가 이제는 기증을 두고 중고 거래를 먼저 떠올리게 됐다. 기증에 마음이 식은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오히려 새상품이 아닌 물건은 줄 수가 없다는 점. 사용감이 있어도 멀쩡하고 좋은 제품인데 반려를 당하니 어쨌든 내 물건인데 속이 상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양말인데 사용했다는 누명(?)을 쓸 때의 기분이란. 사용감이 좀 있더라도 충분히 쓸만한 제품을 나눠줄 방법 또한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내 물건의 가치를 너무나 몰라주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기증 물품을 들고갔던 날, 그 자리에서 제대로 말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을까. 물건 개수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는데 터무니없이 적은 개수가 적혀있었다. 하나에 몇만 원씩 하는 브랜드 메이크업 붓을 몇 개나 넣어두었는데 딸랑 잡화가 하나라고 쓰여있지 뭐야. 메이크업 전문가 브랜드도 아니고 모든 백화점 1층에 있는 대중적인 브랜드였는데. 설마, 일단 넣어둔 봉투가 한 개이니 약식으로 셌을 거라 (안일하게)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예상이 되는 결말이겠지만 결국 통보된 기부금 액수는 터무니없이 적었다. 저기요. 일부러 새 운동화랑 새 옷, 새 브러쉬만 골라 넣었다고요. 이전의 기증 금액과 차이를 비교해본 후 나는 누구인지 모를 봉사자의 무심함에 화를 내뿜었다. 대단한 금액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그깟 기부금 연말정산에 넣어봐야 크게 차이도 안나!) 내 정성이 하찮게 느껴지길 바랐던 건 아니었다. 그날 이후 아름다운가게에 대한 애정이 많이 줄었다. 섭섭하다 섭섭해!
아름다운가게를 제외하면 달리 물건을 기증할 곳도 없고, 이성적으로는 아름다운 가게가 깐깐하게 물건을 따져 받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니 언젠가는 가게에 다시 방문할 거다. 기증 덕분에 물건을 버리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으니 서운함은 차차 잊어버리자고 이성적으로 다짐했다. 감성은 아직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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