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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0.9.25. 일기는 오래간만인데.

by 푸휴푸퓨 2020.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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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어떻게 살아야 부끄럽지 않을까 고민한다. 어디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까, 어떻게 해야 삶에 후회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주변과 환경에 피해 주지 않을까. 생각 끝에 간단한 질문을 만들어냈다. '지금 나의 모습을 3년 후의 내가 좋아할까?'. 나태해지고 싶을 때마다 이 질문을 던지면 마음이 쫄깃해진다. 상상 속 3년 후의 나는 좀 엄격하고 나는 나를 망치고 싶지 않다. 언니, 열심히 살겠습니다!

 

2.

  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을 시작했다. 前 서울시장의 충격적인 소식과 피해자의 입장을 담은 기자회견을 본 날 신청했다.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단체가 있어 진심으로 다행이었고, 앞으로도 이런 일에 앞서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힘든 일을 떠다 맡기는 기분이지만). 아름다운재단에 이은 두 번째 단체인데, 솔직히 통장 잔고가 부족할 때면 기부금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글쎄. 섣불리 기부를 멈췄다가는 내가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역시 나는 나의 눈치를 본다. 후후.

 

3.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는 유튜브로 여러 프로의 짧은 클립을 본다. 음악프로 영상도 좋아하는데 최근 효연의 'Dessert' 무대를 보고 감탄을 했다. 참나. 왜때문에 이렇게 멋지세요? 춤이야 어마어마한 줄 알고 있었는데 음색까지 독특해 매력적이다. 댓글을 보니 디제잉을 하며 만들었던 노래를 팬서비스용으로 잠깐 음악프로 몇 군데에서만 선보였다네. 소녀시대를 거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멤버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영상을 넘나들며 무대를 즐기는데 어느 영상의 베댓에 깊이 공감이 갔다.

 

 

둡두루둡두두 키싱유 베이베~

 

 

  데뷔하기 전엔 자신이 최고인 줄 알았다는 효연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열심히 하던 장르도 아닌 춤을 온갖 악플을 견뎌가며 춘 어린 연예인의 마음은 어떤 다짐으로 가득했을까. 그 시간을 견디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효연이 멋지다. 으휴, 세상에 멋진 사람이 너무 많아. 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4.

  허지웅 작가의 최근작을 읽다가 '굿와이프'의 도입부를 설명하며 인생의 7가지 장면을 골라보라는 이야기를 발견했다. 일곱 장면이라. 아직 산 날이 짧아서 고르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의외로 '혼자' 무언가를 깨달은 날보다 '같이' 했던 기억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알았다. 온통 가족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도. 혼자서도 잘 산다며 내적으로 침잠하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유대를 단단히 하는 게 내게는 훨씬 좋은 삶이 될 것 같다.

 

(1) 태어났다.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아빠는 알겠지. 피부가 유난히 하얗고 보드라웠던 나를 앞에 두고 할머니는 엄마에게 또 낳을 거냐는 잔소리를 했다. 너무하기도 하지.

 

(2) 어릴적 부산에 방문하고 집에 오는 길엔 늘 엄마나 아빠의 등에 업혔다. 주차장에서 집까지의 짧은 거리였지만 튼실했던 나를 업는 일은 두 분께 영 쉽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자느라 목을 잘 잡지 않아서 더 힘들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자주 깨어있었다. 할머니와 떨어지는 아쉬움과 부모님 등의 포근함이 섞인 따뜻한 짧은 기억.

 

(3) 중학교 1학년의 어느 날 동네 정육식당에서 네 식구가 삼겹살을 먹었다. 즐겁게 먹고 집에 오는 길에 지금은 없는 드럼통 군고구마도 사주셨는데, 언니와 나는 신이 나서 언덕을 뛰어갔다. 나는 문득 지금 기분이 행복이구나 하고 처음으로 행복을 자각했다. 그날 신난 우리를 보면서 아빠는 엄마에게 우리는 이렇게 소박하다고, 소시민이라며 웃었다. 엄마는 소시민으로 사는 것도 좋다고 했지.

 

(4) 대학교 합격 소식을 듣던 순간. 수능이 끝나고 등교 기간도 모두 끝난 나는 한 달간 아침 9시 강남역 영어학원의 회화 수업을 듣고 있었다(어쩔 수 없는 고3의 성실함이란). 공식 합격 발표일보다 하루이틀 일렀던 어느 날 아침 수업 시간에 아빠가 합격을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2G 폴더폰을 열고, 문자를 발견하고, 혼자서 웃고, 수업이고 뭐고 다 상관없어져 버렸다. 솔직히 이 기억이 소중한 이유는 합격의 기쁨보다는 아빠가 오랫동안 혼자 대학 합격 발표를 매일 확인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선 선발에서 떨어져 부루퉁하거나 울기만 하던 딸에게 묻지도 못하고 매일 로그인을 해봤을 아빠라니. 여전히 본인이 제일 먼저 합격 소식을 전해줬다고 생색을 내는 아빠의 마음이 좋다. 매일매일 사랑받았다.

 

(5) 원하던 직장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보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마음 속에서는 폭죽이 팡팡 터졌고 몸은 절로 방방 뛰고 있었다. 엄마는 웃으면서 축하하는데 좀 진정하라고 했지. 차장님한테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는 차분히 하라고 했다. 평범한 전화였지만 뭐랄까, 수선을 떨지는 않았지만 웃음기가 가득했던 엄마의 목소리를 떠올리면 엄마가 무슨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있었을지 상상이 간다. 나의 기쁨을 함께 해주는 엄마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

 

(6) 어느 기념일에, 지금의 남자친구가 꽃을 사주려고 꽃집에 들어가 있었는데 밖에서 혼자서 그 뒷모습을 구경했다. 과연 저 꽃 모르는 친구가 대체 뭘 어떻게 사 오려나! 꽤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싶더니 들고 나온 꽃은 기대보다 커다래서 꽃다발이 꽉꽉 차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넌 대체 뭘 얼마나 넣어달라고 한 거야. 만드신 분은 좀 수고하셨겠지만 이렇게나 많이 넣어주고 싶었던 서툰 네 마음이 참 사랑스러웠다. 처음으로 너와의 긴 시간을 생각하게 만든 날이지. 혹여나 우리의 인연이 끝나면(으악 안돼) 이 기억은 교체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내게는 가장 소중한 사랑의 기억이다. 그나저나 꽃을 못 받은 지가 오래되었군. 내놓으라고 해야겠구먼.

 

(7) 죽음을 예감하며 인생을 회상할 그 순간. 아마도 남을 누군가가 나의 그 순간을 기억해주겠지. 언제 어디서 죽건 후회 없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건 굿와이프 등장인물의 마지막 장면이 죽음이라 넣은 것이라..

  죽음을 넣지 않을거라면 첫 유럽여행 중 그라나다에서 묵던 날 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웃음이 터졌던 순간을 넣겠다. 소심했던 20, 21살의 우리는 호텔 로비의 바에서 콜라를 사는 것조차 큰 용기를 내야 했다(콜라가 없으면 어쩌지? 콜라를 들고 올라가는 건 안되면 어쩌지? 이런 데서 콜라를 사 본 적이 없는데 어쩌지?!). 우왕좌왕 힘겹게 산 콜라는 들어가자마자 해치워버렸는데, 컵라면이랑 같이 콜라가 또 마시고 싶은 거야. 그 험한(?) 일을 혼자 시킬 수 없어 둘이 일심동체로 바로 내려갔고, 보무도 당당하게 코크!를 외치는 우리를 보고 바 직원이 웃었다. 우리도 콜라에 신이 나서 웃었지. 여행 내내 어찌나 고생했는지 새까맣게 타 가지고는 콜라를 또 마신다고 신이 나서 앞서 걸어가는 언니의 야윈 뒷모습이 선명히 기억난다. 나의 박장대소에 같이 웃던 언니도 그땐 어렸다. 컵라면과 콜라가 최고의 만찬이었던 우리의 여행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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