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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0.10.22. 발을 잡아끄는 뻘밭같은 이 무의욕의 세계

by 푸휴푸퓨 2020.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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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일기를 적어본다. 이걸 적는 것조차 며칠이 걸렸다. 참나.

1.

  힘들 때 징징거렸으니 좋을 때도 무언가 적어야 마땅하다. 신이 나서 뭐든 써내릴 만도 한데 딱히 그렇지가 않다. 그렇지가 않은 상태가 3주는 지났다. 이상하다. 쓰고 싶거나 읽고 싶은 게 없다.

  승진을 했다. 차례로 시켜주는 일, 일렬로 서 있는 줄 안에서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잘 알게 되었다. 특별히 놀라운 일은 아니었으나 전혀 동요하지 않을 일도 아니었다. 많은 축하를 받았다. 한 걸음 떼고 나니 내가 얼마나 부질없는 걸음에 목을 매고 있었는지 알았다. 그저 이름만 살짝 바뀔 일에 나는 무엇이고 이루어내기를 원하며 근 1년을 쏟아부었다. 쏟아진 시간이 아깝고 엎어진 마음이 분하다. 고작 이것 때문에, 이것 때문에..

  회사에 흥미를 잃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상에 흥미를 잃은 것도 같다. 어차피 올라 보아야 부질 없다고만 여길 길에 노력을 쏟고 싶지 않았다. 일도 한창 지겹기만 한 참이라 대체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의자 위에 몸을 두고 마음은 허공을 떠돌았다. 날씨가 참 좋은데, 창 밖으로 나가고 싶어라. 미세먼지가 없는 하늘이 연일 이어졌다(황사가 온다고 하기도 하지만).

  이런 글을 쓰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슬럼프를 벗어났고 이제 다시 으쌰으쌰 하겠다는 맺음을 달아야 늘 그랬던 나의 글 패턴이 완성되겠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다. 아직 나는 슬럼프의 밑바닥을 기고 있고, 오늘의 업무도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으며, 퇴근 후에는 오늘도 지겨웠다는 말을 할 계획이나 세우고 있는 참이다. 하. 이걸 어째야 해.

  언젠가 지금을 돌아보면 나는 내게 무슨 조언을 할까. 하고 싶은 일도 의욕도 없는 요즘 그저 3년 후의 내가 지금의 멈춰 있는 나를 너무 시시해하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길은 늘 잃는데 이번 길은 처음 잃은 길이라 조금 오래 헤매고 있다. 언젠가는 찾겠지. 이번에 헤매면 다음에는 좀 덜 헤매겠지. 길을 헤매기도 귀찮아 길 한가운데에 누워있는 기분이다. 이러고도 이러구러 시간은 간다.

 

그와중에 아아에서 따아의 계절로 넘어갔다. 겨울 안녕? 가을 안녕.

 

2.

  없는 의욕과 관심을 억지로 꺼내 글이 안되면 영상이라도 봐보자고 나를 채근한다. 유튜브의 짧은 클립은 몇 시간을 봐도 뭘 본 건지 남지를 않아서 차라리 긴 드라마를 끝내 보기로 마음먹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게 '보건교사 안은영'. 내 몸이 좋아진다 좋아진다 좋아진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좋아해서 정세랑이 누구인지 책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원작을 읽었더랬다. 세상에, 요즘엔 드래곤 없는 판타지가 소설로 나오는구나. 기대 이상으로 좋아서 드라마 소식이 반가웠는데 본 보람이 있었다. 구성도 배우들의 연기도 참 좋았다. 영상은 참 좋은 예술이다.

   다음으로는 김겨울의 새 영상에서 언급된 '굿플레이스'를 볼까 한다. 막상 1편을 누르기까지는 꽤나 의욕이 필요한 만큼 언제 시작할지는 나도 모른다. 아무튼간에 뭐라도 남겨보자 이거야. 넷플릭스 구독은 여러모로 만족도가 높다. 2020년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3.

  블로그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고 멈춰버린 큰 계기는 '나도 에세이스트'의 탈락이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그대로 긁었기에 딱히 공을 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글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어처구니없게 오만한 태도였다.

  당선된 글 여러 편을 읽고 정신을 차렸다. 차리다 못해 내가 너무 하찮아져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읽기도 싫어졌나? 열등감으로 못나게 굴러다니는 내 모습이 싫어서 억지로라도 이걸 적었다. 다시 숨을 쉬고, 다시 걷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있다. 내키진 않지만.

  속도가 늦으면 질을 높일 생각을 해야지 다 내던지고 그러면 못써. 아무튼 그러면 안 되는 것까지는 잘 알고 있다. 아는 걸 행하기가 제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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