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가 2단계로 올라가는 이 시점에 여행기라니 좀 면목없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꽤나 큰 추억이 될 여행이었던지라 기록을 남긴다. 카페와 식당에 거의 가지 않고 숙소에서 (신나게) 놀았다고 소심하게 변명해본다.
이번 여행 최고의 성취는 역시 한라산 등반이다. 친구의 제안에 무작정 간다를 외치고 뒤늦게야 왕복 19.2km라는 비극적 소식을 들었다. 가장 쉬운 코스라고는 해도 그렇지, 그냥 걸어도 20km는 힘들다고! 서른을 맞이하는 큰 이벤트라고 여기저기 말했더니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말이야. 조난에 대비해 신분증을 챙겨야 한다며 징징대는 순간에도 어쩐지 마음이 설렜던 게 사실이라 성판악 주차장에 무려 새벽 5시 50분에 도착했다.
공식 홈페이지에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나와 있는 코스를 4시간 만에 올랐다. 친구들이 어찌나 에너자이저인지 사라오름 입구부터는 거의 혼자 올랐는데, 악이야 깡이야 오르며 조용히 '갈 수 있어'를 읊었다. 멈출 수 없어. 끝까지 갈 수 있어. 이대로 멈추면 내가 나한테 실망할 거야. 백록담 정상은 아득히 긴 계단과 데크 끝에 있어서 멀리 말고 딱 앞의 한 발만 보자는 심정으로 끝까지 올랐다. 거 뭐, 물 없는 백록담이 뭐 얼마나 예뻤겠느냐만은, 그냥 거기까지 올랐다는 기억 자체로 참 좋았던 날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꼬질해서 더 좋았고.
(쉬는 시간까지 알뜰히 포함한 4시간이었던지라 사실 꽤 빠른 속도로 올랐는데, 이게 성취감은 좋은데 무릎을 위해서 잘한 일인지 조금 의문이 있다. 천천히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걸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의욕만 넘치는 초보의 느낌적 느낌이 있다.)
또 재미있던 부분은 제주도 기념품 구입. 이젠 감귤초콜릿이나 백년초초콜릿 말고도 맛있는 게 많다고요! 뭘 사 올까 고민하며 검색을 하다 보니 아니, 제주도 현지보다 온라인몰이 더 싸다구요? 내가 찾는 모든 제품이 다 있는 스마트스토어(심지어 제주에서 배송해준다)를 찾아서 출발하기도 전에 간식을 주문했다.
*내가 구입한 곳은 '뷰티풀 제주', 목요일 오전에 구입해서 금요일에 도착했다. 제주도 출발인데요... (https://smartstore.naver.com/beautifuljeju)
내가 돌아오기도 전에 먼저 집에 도착한 기념품은 주변인에게 꽤나 좋은 평가를 받았다. 허쉬쿠키, 감귤파이, 과즐, 치약, 삼립에서 나온 제주 타르트도 사무실 분들이 다들 좋아했어. 제주에서 마신 '마셔블랑'도 좋았고 한라봉 빵도 맛있어서 여러모로 기분이 좋았다. 제주도 기념품이 발전한 게 내가 기분이 좋을 일이냐! 제주 여행의 소소한 재미가 하나쯤 늘어난 것 같아 뿌듯하다(인터넷으로 미리 주문하니 편한 것도 뿌듯하고!).
여행지에서 나의 습관을 발견한 것도 새롭다. 나이가 들면서 아침 잠이 사라지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나 아침형 인간이었나 싶더라고. 집에서는 일찍 눈을 떠도 잘 뒹굴거리는데 제주에서는 어쩐지 일어나고 싶은 마음에 혼자 씻고는 숙소도 치우고 산책도 하고.. 외출할 시간 즈음해서는 신발을 신고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 말은 계속 '괜찮아, 천천히 해'라면서 몸은 반대로 행동하는 내가 나도 웃겼다. 밤보다는 낮이 좋아져서 그런가.
3박4일 TV도 없는 숙소에서 내내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고, 처음으로 고등어회를 먹어봤고, 제주에서 토종닭을 먹어본 것도 좋았다. 제주약수터 맥주는 또 어찌나 맛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만족스럽기만 했던 여행이었다. 이런 여행 흔치 않은데, 30살을 맞이할 준비를 아주 자-알 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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