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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0.11.30. 11월의 마지막 날에

by 푸휴푸퓨 2020.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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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로나 2+α단계의 건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정말 이상하게 격상됐다. 총 3단계가 5단계 되더니 이제는 내심 10단계로 나눠두었는지 오늘 밤 0시부터 2.37단계라는 발표가 났다. 알파가 뭡니까. 그냥 아무 숫자나 가져다 쓰면 될 것을. 집-회사만 반복하는 데다 원래도 9시 이후 외출은 잘 안 해서 딱히 일상에 변화는 없다. 헬스클럽 사용이 계속 가능한지 정도가 궁금하다.

  집 앞 헬스클럽은 4개의 매장이 있는 체인이다. 2단계가 되고 나서 주택가에 있는 2곳은 별 문제가 없었지만 사무실 구역에 있는 2곳은 방문자가 10% 수준으로 줄었다고 했다. 회사 근처에서 샤워를 할 수 없다면 당연히 갈 수 없겠지. 나를 가르치는 PT선생님은 25살의 젊은 청년인데,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PT 수업을 진행한다. 이제 9시 이후로 헬스를 할 수 없으니 그 친구는 비상이다. 직장인 회원은 대체로 9시 이후에 해왔다며 큰일이라고 웃었다. 토요일에 보니 내내 수업을 하던데 주말에 조금이라도 메꿀 수 있으면 다행이다. 지난 주에는 쿠팡이츠 아르바이트를 해보았다며 웃었다. 그러고보니 이 선생님은 힘든 일을 주로 웃으면서 말하는군.

  나는 그저 경제가 잘 돌아갔으면 좋겠다. 평범한 사람들이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운이 좋아 월급에 타격을 입지 않는다면 사회가 돌아가게 조금이라도 더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써 조심조심 외출을 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꽉 찼던 식당이 한두 테이블로 겨우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 자주 가던 카페는 자리를 줄이다가 1인석만 만들다가 결국 모든 테이블을 치우고 영업 시간을 줄였다. 테이크아웃을 하러 들어갔더니 종업원 세 명이 멀뚱멀뚱 출입구만 보고 있다. 두 가게 다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곳이라고요!

  그 와중에 코스피가 2600을 넘은 걸 보면 어리둥절하다. 우리나라 증권사고 해외 증권사고 이머징마켓이니 뭐니 하며 내년 전망도 밝디 밝게 발표한다. 2300을 넘을 때도 의아했는데 2400을 가고 2500을 넘으니 현실감이 사라졌다. 원래 실물경제랑 괴리가 이렇게 큰가? 이게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인가? 과욕으로 돌아가다 한순간에 뻥 터져버리지는 않을까. 그렇다고 주가가 폭락하기를 원치도 않는다. 동학 개미들이 영차영차 노를 젓고 있단 말이야. 오늘도 주린이 동기가 삼전을 사야겠느냐며 물어왔다. 나도 잘 모르는데, 미리 많이 안사둔 걸 엄청 후회하기는 해. 너나 나나 다 똑같다.

  죽을 때까지 사람 사는 세상을 다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너무 모르겠는 기분이 들면 이제까지 무얼 배웠나 싶다. 나는 이 사회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언제쯤 알게 될는지, 죽을 때까지 모르는지, 몰라도 괜찮은 때라도 오는 건지, 정말 평생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는 세상이 오는 건 아닌지. 연쇄질문마가 되어 혼자서 생각을 한다. 별 답은 없지만.

 

 

차를 타고 지나가기가 너무 좋아 친구들과 소리를 질렀던 사려니숲길 같은 느낌이라

 

 

#2 휴대폰 구입 실패의 건

    핸드폰의 기능이 갓 샀을 때보다 나빠졌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대충 놔두었는데 최근 PT로 인해 사진 찍는 빈도가 늘면서 문제가 생겼다. 사진을 찍으면 까맣게 변하거나 갤러리에서 사라져 버리지 뭐야.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 보조금을 많이 주는 어느 곳을 알았다. 기계 값은 7.9만 원, 요금제는 6개월만 유지. 바로 다음날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역 앞에 도착하면 연락하라더니 몇 통을 걸어도 응답이 없었다. 하필 추운 날이라 손이 곱아드는데 그냥 집에 갈 수도 없고 연락할 곳도 없고. 핸드폰을 팔다 경찰에 잡혀갔나 싶은 생각까지 드는 와중에 30분이 다 되어서야 겨우 카톡 1이 사라졌다. 급히 전화를 걸었더니만 고작 하는 말이 오늘 매장을 안 열었는데 말을 못 했다고. 장난해? 화가 치밀었지만 너무 추워서 무어라 할 힘이 없었다. 그저 낮은 목소리로 오늘 안 하냐고, 됐다고, 주소 보낼 테니 택배로 보내주라며 전화를 끊었다. 무기력하기도 하지. 나는 화도 제대로 못 내는구나. 분을 삭히며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대로 순순히 주소를 보내며 호구방구가 될 순 없었다. 손 시려워 죽겠다고! 구매를 철회하겠단 항의 카톡을 보내려는 데도 앞에 안녕하세요를 붙이려는 내가 바보같았다. 어떻게 안 사겠다는 말을 써야 적당히 싸가지가 없을까. 일하느라 습관이 되어버린 친절한 말투를 지우고 또 지워서 겨우 아래 문장을 만들었다. 다시 보니 어이없을 정도로 무난하기만 한.

  핸드폰은 그냥 사지 않는게 좋을 것 같네요 수고하세요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더 화를 내지 왜 그러고 말았냐 했다. 생년월일이며 이름, 전화번호까지 다 아는 판에 통신사에 등록된 내 주소도 알 것 같아 참았다니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며 열을 냈다. 너무 순한맛으로 끝냈나 멋쩍은 참에 이야기를 들은 회사 동기는 다른 의견을 냈다. 자존심 세우다가 결국 핸드폰을 못 사셨군요. 그러게요. 다른 모르는 성지를 찾아가기에는 너무 쫄보라 앞으로 그 정도 값에 살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뒤 저녁 내내 여러 사이트를 뒤졌지만 자급제 폰은 온통 90만 원일 뿐이었다. 7.9만 원과의 간극이 너무 크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낡은 핸드폰의 사진을 모두 옮기고 연락처를 백업했다. 이제 갑자기 핸드폰이 켜지지 않는 (슬픈) 사태가 와도 난 안전하지. 감정과 실익 사이에서 얼레벌레 하며 어느 쪽도 완전한 만족을 얻지 못한 게 잘한 일일까. 낡은 핸드폰을 하루 종일 충전시키는 지금, 같은 일이어도 사람의 반응은 천양지차라는 얄팍한 깨달음이나 얻고 있다. 아무튼, 핸드폰님 제발 오래 함께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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