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제 인생을 정리하는 과제를 낸 적이 있어요. 20쪽에 달하는 긴 보고서였는데 몇 년에 한 번씩 열어보며 당시의 저를 떠올려보곤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있지만 잘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취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던 막막하던 시절이었죠. 그 보고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당시의 저와 지금의 저를 비교하며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줘요.
얼마전 오래간만에 그 보고서를 다시 열어보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마흔이 되면 무려 아이를 네 명(!)이나 낳고 업무적으로는 세계가 주목할만한 일을 해내고 그 와중에 건강 관리도 잘 하는 슈퍼우먼이 되어 있을 거라고 써뒀더라고요. 20년 후까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놓치고 싶지 않았나봐요. 대신 10년 후, 그러니까 서른의 목표는 꽤나 현실적이었어요. 원하는 직업을 갖고 주변 사람들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스물 아홉의 저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어요. 서른이 두려워서 생기는 불안감이 아니라 20대 답지 않게 마음이 늙어버린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래서 올해 서른이 되어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는데, 그런 와중에 제가 막연히 꿈꾸던 서른이 되었다는게 더 기뻤어요. 늙은 게 아니라 성숙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거구나. 지난 10년 간 잘 살아보려 했던 노력이 무색하지 않은 기분이었어요.
저는 더 이상 20대 초반처럼 반짝거리거나 생동감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저의 취향을 알고 좋아하는 것에 깊어지기 위해 늘 노력하는, 차분하고 안정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저에게는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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