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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1.8.13. 나 이러구러 산다

by 푸휴푸퓨 2021.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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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으로 돌아왔다.

 

1.

  한 주의 휴식 끝에 다시 출근한 월요일. 옆자리 선생님이 일주일간 연가라 일을 대신해야 한다. 하루 종일 내 일에는 손을 댈 수도 없게 신청이 쏟아졌다. 책을 나르고 이용자를 응대하며 5분도 쉴 수 없는 오후를 보내다 유명한 민원인의 전화를 받았다. 늘 그렇듯 민원의 방향을 잘못 잡곤 전화를 돌리기도 대안도 그저 거부한다. 이딴 인간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수밖에 없구나. 무력하게 응대하기를 30분, 드디어 끊어진 전화에 고성을 지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수화기나 조금 세게 내려놓았다. 아무도 듣지 못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티셔츠 에세이 한 권을 챙겨 퇴근했다. 집에 가자마자 샹그리아에 탄산수와 꿀을 듬뿍 섞었다. 알아도 유용하지 않고 몰라도 인생에 아무 문제 없는 하루키의 티셔츠 컬렉션 이야기를 읽으며 샹그리아를 들이켰다. 술은 금방 올랐다. 인생 아무렴 뭐 어때. 쓸데없는 티셔츠를 모으고 행복해하고 또 그걸 진지하게 책을 펴내는 게 인생인데. 달큼한 술에 거나하게 취해 8시 반부터 침대에 고꾸라져 꿀잠을 잤다. 구제 안 되는 아저씨야, 너 따위가 개 같은 소리로 나를 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현생이 얼마나 불행하면 저렇게 살까 싶다가도 긍휼히 여기진 못하고 더 불행하길 바라는 나는 아직도 수양이 멀었다. 그건 그것대로 또 뭐 어때. 난 이렇게 산다.

All day Every day 원숭이 칭구처럼 딩가딩가

 

2.

  회사 동기의 생일이라 카톡으로 생일선물을 보냈다. 친환경 선물을 보내고 싶은데 평소에 환경에 관심 없는 분이라 교조적으로 느껴질 것 같기도 하고. 천연수세미와 나무칫솔에 눈독을 들이다 결국 괜찮게 생각하는 브랜드 아로마티카의 바디 오일을 보냈다. 가을, 겨울에 향 좋은 오일을 바르면 기분이 좋거든요.

  선물을 보내준 다음날 잡담을 하다 그 동기가 처음으로 카페에서 컵홀더를 빼고 마셔보았다고 했다. 으잉? 친환경이 유행이라더니 진짜긴 한가봐. 그 말을 들은 다른 동기는 요즘 천연수세미에 관심이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얼른 써봤더니 괜찮단 답을 했지. 정말 환경에 관심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유행이라 한 번 해보는 행동이라도 좋다. 주변이 아주 천천히 조금씩 바뀐다. 좀 더 빨랐으면 싶지만 이만큼이라도 어디냐. 환경을 말한다고 해서 유난한 사람이란 시선을 받지 않게 됐다. 바이러스에게 약간 고마운 부분.

 

3.

  매달 탕비실 간식을 산다. 한정된 예산으로 조금이라도 더 잘 사고 싶어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춘다. 이번에는 어느 과자브랜드가 2만 원 이상 사면 5천 원을 할인해주는 이벤트를 했다. 최대한 1+1 이상의 상품을 고르고 엄마의 이마트 쿠폰까지 동원하니 이번 달 간식 양이 엄청나게 풍성해졌다. 예산보다 딱 15원 모자란 결제금액, 이렇게 뿌듯할 수가.

  이 금액의 테트리스에서 우아하게 단품으로 살아남은 과자는 바로 몽쉘 민트초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 먹어보았는데요, 민트 초코의 기준점 베라 민초에 비견해도 훌륭한 수준이다. 알싸한 오예스를 왜 먹느냐고 물어보면 할 말은 없지만.

 

4.

  실장님은 종종 집에서 해결되지 않은 음식을 사무실로 가져와 나눠주신다. 지난번엔 갑자기 파프리카랑 죠스바 중 선호를 물으시더니 새빨간 파프리카를 하나 주셨다. 세살 아기가 슈퍼마켓에 가면 뭔가 -쓸데없는데 마음에 드는 걸- 하나씩 고르는데, 그게 주로 파프리카랑 죠스바 젤리라고 했다. 덕분에 쉬면서 파프리카를 사각사각 먹었다. 아기가 발견한 둘 사이의 디자인적 유사성을 이 어른은 잘 모르겠구나.

  이번주도 회의가 끝나니 실장님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 나왔다. 40대 선생님에게 미니 복분자주 다섯 병을 주셨다. 새로운 품목을 흥미롭게 보고 있는데 나에겐 죠스바 젤리와 흑당라떼 스틱이 내려왔다. 실장님, 정신 연령에 맞춰 주시는 건가요. 근무하며 한 두 개씩 꺼내 야금야금 먹는다. 냠냠. 맛있다.

귀엽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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