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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1.8.20. 컨디션이 먹먹한 일주일

by 푸휴푸퓨 2021.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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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대 시절에는 철저하게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정신력만 있으면 된다. 예체능은 필요 없지 공부만 잘하자. 10대의 체력을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오만한 태도였다. 이제는 몸이 정신을 지배한다는 쪽에 강력한 한 표를 던진다. 한 달에 한 번 짜증과 피로가 몰려오는 날, 잠을 자고 또 자면 간신히 다음날의 기운을 차릴 수 있다. 몸에 따라 산다는 건 본능과 원초적 욕구, 감각에 순응하는 삶을 산다는 뜻일까. 10대의 내가 몸을 과소평가한 이유는 '몸이 원하는 대로 산다는=방종한 삶을 택한다'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지. 제대로 된 신체는 늘 절제와 성실을 요구한다.

  전화번호 정도는 한 번만 봐도 슥삭 외우던 시절을 지나 네 자리, 다음 네 자리를 두 번에 걸쳐 천천히 옮겨 적는 나이가 됐다. 반 전체의 출석번호를 원하지 않아도 줄줄 외우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문득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쯤 아무렇지도 않다. 더 나이가 들면 같은 것에 지금보다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을 들이고 또 포기하고 살아야 할까. 운신의 폭이 많이 좁아지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게 스스로에게 품위를 지키는 태도라 생각한다.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2.

  신사임당의 팟캐스트(이 양반은 참 안하는 게 없지)에서 정문정 작가가 정리한 오래가는 사람들의 특징을 들었다. 그들은 기복이 없다. 기분에 늘 큰 차이가 없고 한결같다. 기분이 늘 평온하기만 한 사람은 없지.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기분을 들키지 않게 노력한다. 기분이 나쁠 때에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기분의 마지노선을 정해두고 그 이하가 되면 혼자서 해결한다. 해결된 후 다시 평소와 같은 상태로 다른 이를 대한다.

  기분이 나쁠 때에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기분이 상했을 때 나는 상대에게 싫은 소리를 마구 퍼붓고 싶다. 그보다는 여유 있는 태도가 더 효과적임을 아는데도 그렇다. 그래도 많이 참을 수 있게 됐다는 걸 최근의 화난 어느 날 느꼈다. 완전하지 않아도 조금씩 발전하는 내게 셀프 박수를 보낸다. 칭찬의 박수 짝짝짝.

 

3.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다. 아직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을 그리진 못했지만 무용한 무엇에 매달리는 학원에서의 두 시간이 썩 마음에 든다. 오늘 그린 그림도 영 못생겨서 엄마도 남자친구도 차마 칭찬을 해주지 못했다. 아무렴 어때. 재밌으니까 씩씩하게 다닐 생각이다.

  7시 반에 시작되는 수업을 기다리기 위해 시간을 보낼 좋은 카페를 찾았다. 커피가 맛있고 의자가 참을 수 있을 만큼 불편하다. 디저트가 대식가의 눈엔 콩알만해 보인다. 들어오는 문에 피워둔 인센스 덕에 명상을 시작하는 기분으로 입장할 수 있다. 주인 한 분이 열심히 일궈가는 가게다.

  한 팀은 이야기를 나누고 세 명은 책을 읽고 한 명은 영상을 본다. 커피 가는 소리를 배경삼아 마음에 드는 책을 읽었다. 카페에서 고작 1분쯤 걸으면 학원에 닿는다. 좋아하는 곳에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러 넘어가는 경로가 제법 마음에 든다. 당분간 이어질 나의 일상.

종이컵을 두 개 겹쳐주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simple but deep.

 

4.

  핸드폰을 바꾼지 드디어 6개월이 되어 요금제를 바꿨다. 한 달에 6만 원이 넘게 나가는 요금이 어찌나 아깝던지. 반작용으로 데이터 용량이 조금 빡빡한 요금제로 바꿨다. 데이터를 아끼려는 마음으로 출근길에 핸드폰을 보지 않았다. 데이터 리필 쿠폰을 쓰면 씀씀이를 줄이지 않아도 된다는 건 나만의 함정이지만, 어쨌거나 핸드폰과 조금은 멀어질지도 모르겠다.

가족결합 30년 이상에 빛나는 우리 가족과 나의 향후 요금 38,500원(여전히 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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