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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1.10.5. 사람 인생 알 수 없다

by 푸휴푸퓨 2021.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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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무 중 전화를 받고 온 실장님이 내게 ㅇㅇㅇ이란 사람을 아냐고 물었다. 거의 10년 전 들은 전공수업의 강사였던, 어느 공공기관에서 일하던 사람. 수업이 재미있진 않았지만 높은 급수가 인상적이라 오래 기억에 남았다. 문제는 당시 내가 공무원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아빠에 맞서 버티고 있던 터라 공무원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는 점. 수업 중 발언에서 그런 마음이 많이 티가 났는지 "ㅇㅇ씨는 공무원을 안좋아하나봐요?"라는 질문을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공공기관 재직자 앞에서 공무원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너무 드러냈지. 뒷맛이 깔끔한 수업은 아니었다.

  그런저런 감정이 다 사라진 지금, 오래간만에 그 강의를 떠올렸더니 강의가 내게 남긴 커다란 유산이 있다. 당시 책 축제를 다녀온 뒤 소감문을 쓰는 과제가 있었다. 강사는 유난히 글을 맛깔나게 잘 쓴 사람이 있다고 한 선배에게 발표를 시켰다. 글을 쓰는 연습을 따로 하느냐고도 물었지. 질투에 사로잡혀 귀를 귀울였는데 해당 선배는 소소하게 블로그를 운영한다지 뭐야. 비결이 블로그라고! 늘 글을 잘 쓰고 싶었던 나는 귀가 번쩍 뜨여 블로그를 열었다. 강의 내용도 발표 내용도 기억나는 건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선명히 남아 있고, 그때 열었던 블로그도 잘 살아있다(지금 거기에다 글을 쓰고 있지!). 그때 그 수업을 듣길 잘 했다고 10년만에 처음으로 강의을 긍정하였다.

  그 강사는 더 높은 급수로 승진했다고 하고 나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비슷한 무엇이 되어 도서관에 앉아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이제 그분을 만나면 공무원 비난은 커녕 머리를 조아려야 될테다. 사람 마음 참 알 수 없다고, 난 사서가 되고 싶다고 말해대면서 왜 그렇게 공무원이 싫었는지 모르겠다. 도서관 중에 공공도서관이 제일 많은 이 나라에서!

p.s. 글 잘 쓰는 남자 선배 일화가 짧게 언급된 일기가 남아 있다(놀랍게도!). 그 선배의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쩌면 본인도 잊어버렸을 문답을 나는 기억한다. 

 

2.

  부모님 환갑 기념으로 짧게 문경과 청송 여행을 다녀왔다. 적당한 산책(?) 코스도 맛있는 음식도 좋아서 2박3일이 후루룩 지났다. 도란도란한 가족 여행이었는데, 특별한 점이 있다면 새로 생긴 사위가 함께 했다는 거.

  아빠는 회사 출장으로 인해 예천을 10년쯤 전부터 다녔다고 했다. 군부대가 있다는 표지판을 늘 읽으면서도 그 부대에 사위가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안해봤다는 거야. 예천 방문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았다는데, 그 예천이 이제는 정겨운 예천이 될 줄은 더욱 몰랐겠지. 아빠가 표지판 이쪽에서 회사 일을 헛둘헛둘 처리하고 있을 동안 형부는 표지판 저쪽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을 테다.

  그리하여 인생은 예측한대로 되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해서 영 나쁘지만도 않음을 우리는 또 알게 되는 것이다. 언니와 형부가 알콩달콩 귀엽게 놀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는 '아이 참'이라고 말하면 되고, 아빠의 역사 설명에는 다같이 오잉또잉 디용디용을 하고, 산책아닌 산행을 마치고 나면 '도착을', '했습니다!!'를 번갈아 말해가며 동년배인 티도 내면 되는 그런 것들.

  언니의 넓은 집이 참으로 부러웠다. 숙소를 제공해줬으니 집들이 선물을 줘야지. 나도 여유로운 크기의 집에서 자취하고 싶다. 집! 집! 집을 주thㅔ요!

산 냄새가 좋다 (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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