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ARY

2021.9.15. 재테크 목표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by 푸휴푸퓨 2021. 9. 16.
728x90
반응형

  어제 듣똑라 유튜브에 올라온 작가 장명숙 님과의 인터뷰 영상을 봤다. 장명숙 님은 젊은 시절 명품 패션 업계에 종사하시고 최근에는 밀라논나로 불리고 계신 멋진 할머니다. 어쩜 얼굴이 이렇게 반짝반짝 빛날까. 이런 멋진 여성이 계시다는 게 벅차서 영상을 보다 눈물이 났다(논나를 바라보는 이지상 기자님의 눈은 또 어찌나 공감되는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본떠 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70살의 내가 저런 얼굴을 할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노인이 되고 싶은지 가끔 떠올려보곤 했다. 일상의 습관을 정비하는 데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데도, 그리고 특히 재테크의 목표를 세우는 데도 기본이 될 질문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내가 몇 살에 얼마를 모으면 자산 증식을 꿈꾸지 않을지 스스로 대답할 수 없었다. 뭘 하며 사는 노인이 되고 싶지? 그러려면 얼마가 필요한데?

  이 질문에 대답하기 쉬운 현대인이 많을까? 얼마만큼 손에 쥐고 싶은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저축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월급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저축을 위해 소비를 줄이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특별히 꼭 소비하고 싶은 대상이 있지도 않다. 다만 집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쾌적하게 오래 머무를 규모의 집 한 채가 갖고 싶었다. 삶을 영위하는 지역인 서울의 집값이 미친 듯이 뛰어버리니까 약간(좀 많이) 문제긴 하지만.

  그렇다면 정말 집을 아예 살 수 없는 상황인가? 또 그렇지도 않다. 웅장한 문설주를 보유한 거대 신축 아파트 단지의 입주민이 되고 싶은가? 아니, 나는 살풍경하고 고요한 신축 아파트 사택보다 구축 복도 아파트 사택에서 들리는 사람 소리가 좋았다. 학군에 따라 자식 인생이 변한다는데 성적으로 인생의 품질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나? 아니, 아기를 낳을지도 결정하지 못한 데다 그 친구를 사교육에 내몰고 싶지도 않다. 그럼 왜 꾸역꾸역 지금이 부족하다고 믿는 걸까? 나는 그냥, 내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진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일단 오르긴 오르고 싶은 거였다. 오르는 그 자체가 좋아서. 쓰진 않아도 돈을 모아두는 쾌감이 그 무엇보다 좋아서.

  돈의 쾌락에는 절제가 있을 수 없다. 돈은 끝없이 쌓을 수 있고 오차와 불완전함이 없으니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되어도 계속 벌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얼마를 가졌느냐가 핵심이 아니었다. 기본적인 생존에 문제가 없는데 모자란다고 느낀다면, 실제 생활이 아무리 검소한들 그것 또한 절제가 없는 돈의 쾌락이었다.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돈을 끝없이 가져서 나의 인간다운 특성으로부터 달아나 완벽한 권력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아예 버려서 내가 인간으로서 소비하며 느끼는 즐거움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돈을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다른 가치로 무한히 전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집 또한 부동산 가치 자체가 아니라 안전한 공간에서의 휴식,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과 같은 가치로 누리는 것처럼 말이다.

박혜윤, 숲속의 자본주의자 中

 

  밀라논나가 멋지다는 생각 이면에는 더 가질 수 있는 마음을 내려놓았다는 존경이 숨어 있었다. 나는 미래의 가늠도 안 해본 부를 손에 움켜쥐고는 돈을 쓰지 않는 모습이 소박하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마음만은 누구보다 사치스러웠는데, 어디까지 갈지 고민하기보단 눈 감고 앞으로 뛰는 일이 더 편했다. 놀랍게도.

  솔직하게 속물적인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원하는 단체에 소정의 기부네 뭐네 일기를 쓰지만 나는 돈을 좋아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좋다. 쓸 수 있지만 쓰지 않고 소박하게 사는 사치스러운 노인이 되고 싶다. 베풀기도 좋지만 나의 생활에 피해가 갈 만큼 내어줄 호인은 못된다. 밀라논나처럼 깔끔하고 산뜻하게 내어줄 수가 없다. 그릇이 아주 조막만 하다.

  많이 자고 적게 소비하고 건강할 만큼 운동해야겠다는 게 나이듦을 기다리는 나만의 준비였다. 하나쯤 더해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내게 주어진 필요 이상의 것을 진심으로 베풀며 살 수 있는 노인이 되자. 아깝거든 논나같은 얼굴빛을 가질 수 있으리라 나를 꼬드겨야지. 생각이라도 시작하면 안 하는 삶보단 나을거라 억지로 교훈적인 생각을 한다. 일단 어느 정도의 집을 원하는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