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는 시대, 긱 이코노미가 증가한다던가 전통적인 형태의 노동자만이 노동자가 아니라던가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매일 의자에 앉아있는 나는 혼자 도태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든다. N잡러라는 말은 유행이라 말하기도 무색하게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사회학을 전공한 기자였던 저자는 직접 세 개의 플랫폼 일자리를 경험해 책을 썼다. 책 전체에서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데, 한 개의 플랫폼만 겪었다면 느낄 수 없는 흐름을 세 개의 플랫폼을 묶어두니 쉽게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흐름은 딱 하나다. 기술은 똑똑하고, 인간은 기계의 효율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
'생각'이라는 것은 이미 인공지능이 다 하고 있고, 사람은 그저 인공지능의 팔다리를 대신한다. 물론 이미 로봇 팔다리가 나와 있다. 다만 로봇의 팔다리가 인간의 팔다리보다 비쌀 뿐.
거기에 하나 더. '내가 AI 숙련도 향상을 위해 데이터를 쌓아주고 있구나.'
더 서글픈 건 AI 추천배차 도입 후 내 배달수입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AI, 이 자식들이 생각보다 생각을 잘한다. 그리고 더 빠르다.
데이터를 분석해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는 마인드마이너 송길영은 '일은 어렵고 힘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시대의 노동자 중 몇 명이나 나를 대체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을까. 이 책과 함께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영화 '노매드랜드'를 보거나 책을 같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쿠팡 물류센터와 꼭 닮은 아마존 물류센터의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는데, 현대 유목민이 철마다 나오는 일자리를 겪으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있다. 대체로 2008년 경제 위기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많다고. 최근 치솟은 집값을 생각하면 어쩌면 우리나라의 미래일지도 모를 모습이다.
1. 쿠팡
쿠팡 물류센터의 일은 세 단계 -입고, 출고, 허브(포장된 상품을 지역별로 분류해 화물차에 싣는 공정)-로 구성된다. 매일 사람을 뽑는 단기 일자리로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시즌에는 인원을 한껏 늘렸다 줄인다. 기계가 시키는 대로 물건을 나르고 넣고 꺼낸다. 기계는 인간의 힘듦과 체력 고갈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살벌한 경기장에서 저자가 '선배'에게 들은 유용한 조언은 아래와 같다. 저자가 쓴 쿠팡 이야기 중 유일하게 인간성을 느낄 수 있었던 대목.
박스 상품을 먼저 팔레트 주변에 둘러서 벽처럼 쌓고 중앙 공간은 비워둬요. 나중에 쌀 포대 같은 게 나오면 그 안에 채워넣어요. 그러면 내렸다 다시 쌓을 일이 없어요.
사람이 짐을 내렸다 다시 올릴 시간쯤은 고려조차 할 필요가 없는 세상. AI로 둘러싸인 효율의 현주소다.
2. 배민 커넥터
남자친구가 배민 커넥터를 해보겠다고 뚜벅이 라이더를 한 경험이 있는 터라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다. 운동 겸 용돈벌이 겸 하겠다던 의지는 이틀 만에 꺾였는데, 생각보다 뚜벅이에게 적합한 콜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남자친구의 친구는 자전거로 커넥터를 했는데 한 달에 수십만 원의 제법 쏠쏠한 수익을 얻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막연히 자전거라면 수월하게 돈이 벌리나 싶었는데 또 그렇지도 않더라고. 저자가 겪은 콜 따기의 어려움부터 감사했던 손님들 사연 까지 읽으니 홀로 질주하는 라이더의 애환이 느껴졌다. 커넥터의 건당 단가가 세다고 해도 안정적으로 시급을 받을 수 있는 쿠팡과는 달리 노는 시간이 발생해 일당에 큰 메리트는 없다는 점도 알았다.
자전거로 배송하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오토바이 배달로 넘어간다. 예전 PT선생님이 헬스장이 코로나로 문을 닫았을 때 쿠팡이츠 라이더를 했기에 또 관심 있게 읽었다. 비 오는 날 뚜벅이라 표기하고 오토바이로 배달하면 꿀이라고 웃는 모습을 보며 비가 올 땐 위험하니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게 좋지 않냐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뚜벅이에서 자전거, 오토바이로 넘어갈수록 배달 한 건에 라이더의 생계가 더 깊이 걸려 있다.
라이더들이 곡예 운전을 하는 이유는 고객에게 '더 빨리' 배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배달하기 위해서다. 건당 수수료를 받는 체계에서는 하나라도 더 많이 배달해야 돈을 더 벌 수 있다.
안전하게 배달을 해서 한 달에 안정적으로 한 가정의 생활비를 챙기기는 불가능하다. 오토바이 구입비부터 높은 보험료, 묶음배송을 유도하는 어플의 정책까지 천천히 사고 없이 배달을 바라는 마음을 방해하는 요인이 너무 많다. '딸배'라는 조롱보다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더 필요하다. 저자의 말마따나 '바야흐로 배달의 시대이고, 배달 주문은 더 다양해질 것이고, 라이더는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3. 카카오 대리운전
올해 카카오는 정부에게 혼이 난 뒤 주가가 하락해 수많은 개미가 울게 만들었다. 왜 우리 카카오한테 그래요! 하지만 카카오의 급성장 뒤에는 카카오가 자본을 내세워 잠식한 많은 시장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카카오 대리운전 또한 대리운전 업계에 미친 파장이 적지 않다.
기존 관행이 불합리하다는 전제 하에 카카오는 수수료 20% 내에 프로그램 이용료와 보험료를 포함시켜 기사를 유입시켰다. 하지만 적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결국 회사가 자금력이 있기 때문이고, 그 자금력이 카카오 대리운전이라는 단독 사업때문에 마련된 것은 절대 아닐 테다.
저자는 대리운전 플랫폼으로 카카오를 선택하고 마치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하듯 쉽게 기사가 된다. 그러나 고된 노동을 한 밤, 한눈에 봐도 고수인 대리기사가 저자에게 말을 거는데 카카오를 쓴다 하니 하루 종일 똥콜만 잡았겠다며 놀리듯 말한다. 카카오가 대리운전 시장을 하향평준화시켜 임금은 오르지 않고 경쟁만 치열해졌다고. 집으로 가기 위해 교통편이 많은 신촌, 홍대 쪽으로 가지 어플에는 대리기사가 콜 대기를 하고 있다는 뜻의 붉은 점이 빽빽이 뜬다. 손님을 잡기 위해 고독을 이겨내는 이들, 새벽길을 배회하는 이들에게 사회는 어떻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고용'되기를 원치 않는 대리기사, 라이더들도 제법 많다. 자신이 주업으로 일을 하고 있는 회사에 부업 관련 사항을 알리고 싶지 않은 'N잡러'들. 가압류 상태여서 자신의 소득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파산자들. 정말로 고용되지 않은 신분을 유지하고 싶은 '자유로운 영혼'등 이유는 다양하다. 우버와 배민이 노리는 '인적 자원'은 이들이다.
직업의 틈새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노동자와 안전 고용의 사각지대에서 노동력을 구하고 싶은 기업이 만나 플랫폼 노동의 쳇바퀴가 돌아간다. 이 노동이 유난히도 사회의 끄트머리에 있다 느껴지는 이유는 이들을 보호할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한데 모여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 그리하여 커다란 플랫폼에 대항할 수 없는 이들은 플랫폼의 정책이 이끄는 대로 생계를 맡길 수밖에 없다.
국가는 회사를 지원하고, 회사는 가장을 지원하고, 가장은 가족을 책임지는 구조가 해체되고 있다. 국가의 복지 전달 체계의 중심이 회사와 가장에서 '개인'으로 옮겨 가야 한다.
그리하여 국가는 숨어있는 개인을 찾아내야 한다. 사각지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만 있는 게 아니다. 눈에 너무나 잘 보여서 오히려 없는 듯 느껴지지만 물 흐르듯 편안한 일상에는 그들의 노고가 자리잡고 있다. 현대 사회는 좀 더 촘촘한 안전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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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올린 책 이야기였는데 다음 메인에 올라갔다(정작 나는 못 찾은 게 함정).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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