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이 싱그러운 젊음은 어쩌면 헤어짐을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죽음을 배우고 빈자리를 느낀다. 억장이 무너졌다가 후회해야 소용없다는 생각을 한다. 점점 기억이 옅어져 아파하지 않을 나를 생각하며 두려움에 떤다. 무서워도 쓸쓸해도 시간은 가고 일상은 흘러서 이제는 문득 담담한 나를 발견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헤어짐에 익숙해진다는 뜻인가. 익숙하다고 괜찮은 건 아니지만.
슬픔이 휘몰아치는 이야기를 담은 플러피 모먼트의 첫 책 '개가 있는 건 아닌데 없지도 않고요'는 죽음 이후를 견디던 내게 실은 모두가 같은 아픔을 참고 산다는 걸 알려주었다.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때와 작가가 상실을 겪은 때가 몇 달 차이 나지 않았다. 가족을 잃은 아픔은 마찬가지니까.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나는 기어이 메모장에 적어둔 할머니의 기억을 긴 글로 풀어내지 못했는데, 하얀 강아지 포포는 책으로 남아 오래 작가의 곁을 지킨다는 점.
텀블벅 모금이 성공한 후속편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은 반려견 포포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 두어 해가 지난 후까지의 이야기다. 저자는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을 줄 알았다가 무심코 습격하는 감정에 속수무책이 되고, 꿈에서라도 행복한 강아지를 만나기도 한다. 또 돌봄이 사라진 빈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무기력한 우울을 겪기도 한다.
충실한 보호자이고 싶었지만 여기 없는 강아지 앞에서 해주지 못한 것들의 목록이 길게 늘어난다. 별처럼 빛나는 눈을 가진 친구의 강아지가 그저 모든 것을 알고, 온전히 이해해주었기를 바란다. 서툴지만 간절했던 우리의 마음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마음까지. 이런 믿음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그가 들려준 강아지 친구의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기로 한다.
포포와 산책할 때는 늘 등만 보여서 강아지의 얼굴을 몰랐는데, 홀로 산책하는 지금은 마주오는 강아지의 웃는 입꼬리가 보인다는 글이 새삼스러웠다. 물론 포포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을 거예요. 저자는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은 친구의 이야기에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저자의 첫 책을 읽은 독자도 저자가 친구를 위로하던 그 마음과 같은 마음이었음을 알고 있을까.
사랑하는 상대가 없는 시간에도 우리는 나이가 들고 아픔에 익숙해진다. 나이가 아주 많이 들고 나면 나도 다른 이의 죽음보다 나의 죽음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될 테다. 그럼 사랑하는 이를 보며 생각하겠지. 네가 많이 힘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너를 떠나는 일이 너무 뾰족하지 않기를, 그리하여 그것에 찔릴 네가 조금만 아팠으면 해. 어쩌면 작은 강아지가 당신을 보며 이미 했을지도 모를 그런 생각.
ps1. 텀블벅 후원은 처음 해보았는데 포장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종이 안에 뾱뾱이가 부착된 포장지는 분리수거가 되지 않아 늘 불만이었는데 종이 완충재라니! 열어보기 전까지는 종이인지 모를 정도로 기능적으로 완벽했고, 내용물도 구겨지지 않았다. 많은 곳에서 이 방식을 차용했으면 하는 바람!
ps2. 플러피모먼트가 이번 주에 열리는 '퍼블리셔스테이블' 행사에 참가한다고 한다. 대림미술관 사이트에서 미리 예약하면 입장 가능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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