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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불쉿 잡 - 데이비드 그레이버

by 푸휴푸퓨 2022.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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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가장 놀랐던 부분은 사무실에서 빈둥대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대학생 때는 쉬는 시간을 쪼개가며 책을 읽었는데, 여기서는 몇 시간씩 일이 없어도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바쁘지 않아도 무조건 바쁜 척을 해야 했다. 새로 일을 받고 싶단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내 일은 상사의 책임 하에 있기 때문에, 그가 원치 않으면 나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회사를 한 차례 바꿨지만 비슷한 곳이었다. 책임을 적게 지고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게 익숙해졌다. 적당히 노는 법을 너무 잘 알아서, 정신 차리고 종일 일하면 기가 다 빠진다. 이런 내 모습을 좋아하지는 않아서 불안에 떨었다. 모두가 달려가는 세상에서 나만 도태되는 듯한 마음.

  불쉿 잡은 너만 그렇지 않다는 답을 들려준 책이다. '불쉿 잡'이 점점 늘어나는 게 인류의 문제라는 통찰이 들어있는 사회과학 책이지만 내게는 위로의 에세이였다. 그러니까, 나처럼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전 세계에 퍼져 있다고? 다들 빠져나오는 방법을 모른다고?

 

  부하를 혹독하게 굴리는 실제 보스가 없을 수도 있다. 사실 대개 그런 보스는 없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이 만들지 않은 가공의 게임, 즉 오로지 자신에게 가해지는 권력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게임을 해야 한다면 내적으로 의기소침해진다.

  회사에선 적당히 일이 있어야 시간이 간다. 내게는 시간 통제권이 없다. 일 없이 멍을 때리다 보면 내가 초라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초라하다 말하지 않는데 지레 초라하다. 한 일 없이 월급을 받는 손이 부끄럽다. 왜 학교에서는 쓸데없이 부끄러움을 가르쳐서 나를 괴롭게 하나? 뻔뻔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마음이 그렇지 못해 괴롭다.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나를 막막하게 한다.

 

  불쉿 직업에서는 그것(강압을 휘두르는 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당신에게 일하는 시늉을 하라고 강요하는 자가 정확하게 누구인가? 회사? 사회? 모두에게 돌아갈 만큼 진짜 일이 충분하지 않은데 누구든 일하지 않고는 먹고살 수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적 관습과 경제적 권력의 어떤 이상한 합류점인가? 적어도 전통적인 일터에서는 분노를 터뜨릴 대상이 될 누군가가 있었다.

  문제는 일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거다. 일이 없다면 회사는 나를 고용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고용 규모를 줄일 순 없다. 일을 위한 일을 만든다. 목적도 알 수 없을 일을 억지로 하는 나를 느끼면 가슴이 답답하게 죄어온다. 그럼에도 일터에서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어차피 대답해 줄 사람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이나 음악이나 글쓰기, 시 창작을 추구할 때 보이는 완강한 자세는 그들의 '진짜' 유급 직업의 무의미함을 누그러뜨리는 해독제 역할을 한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사무직 노동자들이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데도 그런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일터에서 은밀하게 쓸 수 있는 산만하고 파편적인 시간 조각동안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대중문화 형태의 성장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의 시간이 남음에도 독창적인 문화 콘텐츠가 발달하지 않고 SNS가 발달하는지를 간단하게 설명한다. 의미를 부여할 진짜 '일'은 적당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회사에서는 산만한 시간뿐이라 제대로 된 집중은 여간한 의지로는 끌어내기 어렵다고. 내 생각이 그대로 옮겨져 있어 재미있었다. 회사 바깥에서 의미를 찾자고 동분서주하는 나는 회사 바깥에서의 글쓰기를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의미 없다 여기는 일이 하찮게 여겨지는 건 나와 상관없지만, 내가 전심전력을 다한 일이 냉대를 당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무언가에 몰입하는 대신 짧게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는 SNS를 들락거린다. 돌아서면 잊어버릴 내용을 읽으며 잠시 낄낄대면 부유하는 시간을 어찌어찌 보낼 수 있다. 가끔 왜 이런 걸 보며 시간을 낭비하나 현타가 오지만 글쎄, 그거라도 읽지 않으면 남는 시간을 갈무리할 수 없기에 또 웃음 페이지로 찾아간다. 시간을 허비하고 퇴근을 하면 저녁 시간은 한없이 짧다. 그렇게 무언가에 전심을 다하지 못한 채 하루가 간다.

 

  정말 불쉿인 직업에서는 우리가 정말 무슨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는지,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볼 수 있는지, 일하는 척하도록 예상되는 범위가 어느 정도이고, 얼마나 많이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 대신 어떤 종류의 일을 해도 되고 하면 안 되는지가 완전히 불분명할 때가 자주 있다. 이런 상황은 비참하다. (중략) 전 세계의 점점 더 많은 젊은 층이 쓸모없는 직업을 할 심리적 준비가 되어 있고, 일하는 시늉을 하는 것에 훈련되어, 다양한 수단에 의해 거의 누구도 의미 있는 목적에 봉사한다고 믿지 않는 직업으로 인도된다.

  취직 전에는 취직이라는 산이 참으로 높아 보였는데 막상 선을 넘고 보니 대단하지 않은 일을 했다. 준비해야 할 스펙은 늘고 포기하는 목록 또한 늘었다. 가끔 일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듣곤 했다. 예전에 이런 일은 고졸이 했었는데. 그러게요. 왜 대학을 나오고 어학연수를 다녀와 대학원을 고민하던 내가 이렇게나 끙끙대며 자조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우리가 더 힘들게 일하는 것은 플레이스테이션을 만들고 서로에게 스시를 대접하는 데 시간을 전부 쓰기 때문이 아니다. 산업은 갈수록 더 로봇화되어 가고, 진정한 서비스 부문은 전체 고용의 대략 20퍼센트 정도에서 변동이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일터에서 겪는 고통이 은밀한 소비자적 쾌락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괴상한 사도마조히즘적 변증법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동시에 깨어있는 시간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직업이 차지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삶'이라는 사치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누릴 시간이 있는 유일한 쾌락은 결국 은밀한 소비자적 쾌락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책을 읽으며 미니멀리즘이네 무소유네 하며 발버둥 쳐봐야 사회 시스템을 벗어날 수 없다면 온전한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 의미 있는 일은 할 수 없다. 일에서의 만족감이 없는 상황에서 회사에 의욕을 가지려면 월급이 간절해야 한다. 월급이 간절하려면 돈이 필요해야 하고 사고 싶은 게 많아야 한다. 그런데 월급이 많진 않아도 살 게 없어 월급이 남는다. 갖고 싶은 게 없어지면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의 이유를 스스로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회사를 박차고 나올 순 없잖아. 작년의 나는 회사에 앉아 쌓여가는 돈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것 외에 내 시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작년을 돌아보면 늘어난 자산을, 올해를 기다리면 늘어날 자산을 셈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을 수밖에. 신년이 기대되지 않았다.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서.

  이 책은 대안을 제시하고자 쓰이지 않았다. '기본소득'을 간단히 언급하긴 했지만 이 책이 기본소득에 대한 주장으로 분류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아직까지 한 번도 지구적 문제로 논의되지 않았던 '불쉿 잡'의 현실을 파헤치고, 이것이 많은 이에게 문제 상황으로 조명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매일 잔잔히 괴로우면서도 정확히 어떤 문제인지 몰랐던 나의 일상을 명확한 단어로 읽어내 준 책이 고마웠다. 저자가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으니 나의 일상은 내가 구원해야겠지. 나는 불굴의 의지를 다잡고서 '완강한 자세'로 내 창의성을 두드려보려 한다. '잘' 보다는 '일단' 해본다는 마음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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