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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나, 프랜 리보위츠 - 프랜 리보위츠

by 푸휴푸퓨 2022.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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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사람 프랜 리보위츠를 가감없이 들여다보자!

 

  작년 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도시인처럼'을 본 뒤 출간을 소원하게 된 프랜 리보위츠의 책이 드디어 나왔다(다큐를 보고 신나서 작성한 후기는 여기).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반가운(!) 소식에 냉큼 움직여 빠르게 리보위츠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책은 Metropolitan Life와 Social Sciences를 묶어서 낸 판본으로, 우아름 역자의 첫 번역품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1970년대에 출간된 책이다보니 지금의 시각에서는 헉 소리가 나오는 과격한 농담도 있다. 5년 전 개그프로 클립만 보아도 놀라운 대사가 많으니 수십년 전 책이 놀랍지 않으면 이상하지. 물론 리보위츠는 이에 대해 본인다운 답이 있다.

물론 이제 기분 반지, CB라디오, 디스코, 하이테크 인테리어디자인, 처음 만난 이들과의 안전한 섹스가 더이상 신기하다거나 존재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유행의 대다수가 종종 되살아나는 이 몹시도 지루하고 시대를 역행하는 시대에, 시의성이란 걸 더는 요구하지도 않는 시대에, 작가에게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시의성을 요구한다는 건 극도로 불공평하면서 부적절한 처사임은 부인할 수 없다.

문학동네 고마워요!

 

  당시에는 그랬지, 하는 생각을 유난히 자주 갖게 되는 이유는 리보위츠가 당시의 통념을 신랄하게 뒤트는 이야기를 가감없이 해냈기 때문이다. 출간 후에 공격당할게 분명한 이야기를 이렇게 당당하고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나. 공격적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딱 뉴요커 같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60대의 리보위츠도 그랬지만 젊은 시절의 리보위츠도 정말이지 '뉴욕 사람'이다. 거칠고 쌀쌀맞고 직설적이지만 서로에게 진지한 신경을 쓰지 않아 한없이 자유로운 사람이라고나 할까. 책 곳곳에 뉴욕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는데 신랄하면서도 애정이 있다. 공격적인데 밉지 않다.

  (뉴욕의 현대 스포츠 - '애완견 챙기기' 중) 각 선수에게 왜 본인이 최고점을 받지 못했는지 재미있게 설명할 5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더 거만하고 설득력 있는 차점자에게 금메달을 수여한다. 뉴욕에서는 승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책임을 돌리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자라기보다는 개인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로 보이는 리보위츠가 공산주의자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재미있다.

  공동선은 내 취향이 아니다. 내 관심은 비공동적 선에 있고, 이러한 발언이 집단농장 일원들의 감탄을 살 것이라며 스스로를 기만하지도 않는다. 공산주의자는 모두 작은 모자를 쓰는 듯한데, 내가 보기에 이는 사람보다 치약에게 더 잘 어울리는 용모다. 물론 우리 중에도 모자 착용자들이 있긴 하지만 장담컨대 쉽게 피할 수 있다.

 

  모자를 이야기하는 척하며 주변의 공산주의자를 찔러주는 노련함이란. 어린이의 장, 단점을 속 시원하게 드러낸 글이나 집주인 안내서는 지금도 어찌나 공감가는지 리보위츠 얼굴 앞에서 박수를 짝짝 치고 싶다(어쩐지 작가는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쳐다볼 것 같군). 신랄함은 너와 나를 차별하지 않아서 본인의 정체성인 동성애자에 대해서도 가차없다. 구체적인 집단의 기호에 맞춘 각종 전문 은행을 설명하는데 어린이에게는 제일국민돼지저금통을, 정신과 의사에게는 뉴욕자기연민은행을 주고 동성애자에게는 제일국민광란파티은행을 배정한다. 동성애자는 문란하다는 이미지가 이렇게나 공공연한 통념이었는지 혹은 작가 본인이 포함된 집단이기에 더 냉소적으로 작성한 부분이었을지 궁금하다. 봐봐. 기분이고 뭐고 따지고 싶지 않다잖아.

  나는 정신상태와 관련한 취향이라면 대체로 혼수상태를 선호하는 사람이어서, 작금의 자의식 함양 열풍에 대해 인내심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내 기분이 어떤지는 지나치게 잘 알고 있으며, 가능하다면 알고 싶지 않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본인의 기분이 어떤지 몰라 애먹는 남성 또는 여성은 얼마든지 내 기분을 대신 느껴도 좋다.

 

띠지를 싫어하지만 다큐멘터리에 쓰였던 사진이라 꾹 참고 버리지 않은 모습..

 

  책을 읽으며 자주 큭큭거렸다. 내가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문자'에서 현대 문자세계에 대한 리보위츠의 조언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부와 권력은 독서보다는 혈통으로 얻어질 확률이 훨씬 높다!). 리보위츠의 인간 혐오(?)는 또 어떻고. 타인은 지옥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공감하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절대 동의할 수 없는 나는 리보위츠가 내 대신 말을 꺼내줘서 진심으로 좋았다.

  사람(내 생각으로는 항상 과도한 관심을 끌어온 무리는 자주 눈송이에 비유되곤 한다. 이러한 비유는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개별성을 의미한다. 이것이 사실이 아님은 무척이나 명백하다. 사람은, 현재의 가치 상승률에도 불구하고 -아니, 특별히 현재의 가치상승률을 고려하면- 그냥 널리고 널린 흔한 것들이다. 또한, 다급히 덧붙이자면, 눈송이와의 유일한 공통점은 며칠 따뜻하게 지내고 나면 으레 그렇듯 개탄스레 진창이 돼버린다는 점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톡 쏘는 개성을 담아 글을 쓰는 능력이 부럽다. 남이 중요하다고 해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멋지다. 뉴스가 중요한가요? 그걸 듣고 뭘 어쩌란 말인가요? 집 구하기, 가사도우미 구하기, 애완동물, 새해 결심, 전화번호 안내원 되는 법, 온갖 주제에 대해 비꼬지 않고 말한 게 없는데 그 와중에 비틀린 것도 없다. 맞는 말만 한다.

  리보위츠의 책은 입담이 좋은 친구가 공석에서는 하지 못할 농담을 편안한 식당에서 끝없이 해주는 기분이다. 가감없이 말하는듯 한데 선은 잘 지켜서 이야기하면 즐겁고 뒷맛도 깔끔한 그런 친구. 리보위츠의 글은 세상에 시달려 머리가 아픈 날에 집어들어 읽고 싶다. 어느 주제 때문에 화가 났나요? 리보위츠의 책에서 그 주제를 찾읍시다. 곧 기분이 말끔히 풀릴 내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P.S. 가끔 혼자 하는 생각에 리보위츠가 던지는 일침을 굳이 적어둔다. 뼈가 아프다 못해 구멍으로 뼈가 샌다.

진정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이는 극히 드물다. 그러므로 노력으로 이 판을 들쑤셔보겠다는 건 꼴사납고도 비생산적이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야 할 것 같은 불타는 욕구가 사그라들지 않을 때면 단 음식을 먹어라. 그 기분도 곧 사라질 것이다. 당신의 인생사는 책으로 낼 정도가 아니다. 시도조차 하지 마라.

신이 만드신 아이라고 모두 아름답진 않다. 어디 내보일 만한 신의 아이는 정말 몇 명 없다. 외모와 관련하여 가장 흔히들 하는 실수는 겉모습에 집착하지 말고 영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믿음이다. 만약 당신의 몸에 이런 게 가능한 부위가 있다면, 그건 매력 발산이 아니라 그냥 새는 구멍이다.

 


 

다음 메인에 올랐다. 모두들 리보위츠의 매력에 빠져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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