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
아빠가 허리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 반나절은 족히 걸리는 수술이다. 허리 통증이 심해 최근 한 달 간은 거의 집 밖에 나가시지도 않았다. 좋아하시는 책을 빌려다 드리거나 주문해 드리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젯밤 아빠를 응원하면서도 집에 오면 좋아하는 책이 있으니 잘 회복하고 얼른 오시라는 말을 했다. 책쟁이 딸은 이런 말밖에 없네. 아빠의 수술이 성공적이기를, 잘 회복하고 집으로 돌아오시기를, 몸이 조금이나마 덜 불편하시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 수술은 잘 됐다. 몹시 좋다.
2. 회사
어제는 딱히 민원 같지도 않은 민원이 있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같이 계신 분이 깜짝 놀라시기에 나도 잠깐 변한 나를 생각해보았다. 일을 할 때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일을 할 때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다. 이 두 생각을 장착한 후 상처는 덜 받고 죄송하다는 말도 아무렇게나 나온다. 마음이 평온할 때는 민원인은 분노보다는 동정의 대상이라고 생각도 한다. 막상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아무 일이 없어서 쓸 말이 없는 게 아니라 일어난 일 중 쓸 수 있는 게 없어 일기를 쓰지 않는다. 기록을 남겨봐야 미래의 내가 즐거워하며 읽을 내용도 아니고, 지나치고 잊은 후에 나는 항상 평화로웠다 믿으면 될 일. 그냥 되는대로 겪어내며 살고 있다.
3. 연락
집에만 가면 핸드폰을 멀리 떼어두고 관심을 끊는 건 중학생 때부터 이어져온 습관이다. 방에 적당히 핸드폰을 놔두고 식탁이나 거실에서 가족과 떠든다.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두는 탓에 워치를 벗어버리면 알림도 들리지 않는다. 나에게 연락하는 사람에게 짜증이 될만한 습관임을 알지만 그냥 평생 그랬다. 세월이 지나며 '중요한 일이면 문자 남겨두겠지'는 '카톡 남겨두겠지'로 변했다.
나의 습관에 드디어 남자친구가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일을 해도 좋다, 그냥 뭐 하느라 핸드폰을 잘 안 본다고 남겨주고 다른 일을 하면 되는 게 아니냐. 몇 시간은 예사로 잠수 타는 나는 네가 하는 말이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가마니가 되었다. 그렇게 연락을 안 받으면서 하는 일이 99.9%의 확률로 '가족과 떠들고 있었다' 혹은 '책을 읽었다'여서 남자 친구도 4년 넘게 참아주었던 거였다.
오랫동안 쌓은 습관은 단박에 고쳐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예쁜 수국을 바라보며 빠르게 고치려 애쓰고 있다. 에효효효효. 나이가 드니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고. 이것이 바로 30대 할머니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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