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가 잘 회복하시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부모님은 제법 평화롭게 입원 기간을 보내고 오셨다. 아빠는 플라스틱 보호대를 한 달간 하고 있어야 하고, 스스로 놓는 주사도 제법 오래 맞아야 한다. 나는 바늘이 싫어서 쳐다도 볼 수 없지만 엄마는 매일 아빠에게 주사를 놓아준다. 평생의 반려자와 나누는 삶의 깊이는 보통 깊은 게 아니다.
아빠가 무사히 돌아오셔서 기뻤다. 진심으로.
2.
비가 많이 왔다. 워터파크에 온 것 마냥 비를 흠뻑 맞는 날도 있었다. 자주 차를 태워주는 동기에게 한 눈에 반했던 차를 선물했다. 고마운 마음은 열심히 표현하며 사는 사람이고 싶다.
여름을 맞아 온라인으로 싸구려 샌들을 샀다. 실패였다. 고민하다 당근마켓에서 다시 샌들을 샀다. 한참을 기다려 배송받은 신발은 바닥이 벽돌처럼 딱딱했다. 앞으로 당근마켓에서 쇼핑몰 사진만 있는 물건은 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싸구려 샌들을 신고 며칠을 뛰어다녔더니 무릎이 쑤셨다. 나이가 들어 비에 반응하는 줄 알았더니 비가 그치고도 계속 아파 신발 때문임을 알았다. 얼른 백화점에 가서 발에 좋다는 브랜드의 샌들을 샀다. 그러니까, 두 번이나 실패하지 말고 진작 오프라인에서 좋은 품질의 물건을 샀어야 했다. 양품을 사용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고 말을 하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여름을 시작하며 되새긴 작은 교훈.
3.
오래 기다렸던 실장님이 교육에서 돌아오셨다. 자꾸 눈치를 보게 된다. 편안함이 최고의 장점이었던 부서가 그 어느 곳보다 불편한 부서가 되어버렸다. 다른 부서에 발령이 났으면 좋겠다. 이런 상황에서 나만 쏙 빠지고 싶다. 승진도 고과도 필요 없으니 평화로운 부서였던 나의 안식처는 승진도 고과도 멀지만 마음도 불편한 전쟁터로 전락했다. 사람 마음은 절대 내 마음 같지 않고, 세상 일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원래 그렇지. 일주일 내내 남자친구와의 전화에서 피곤하단 말을 연발했다. 그만 말하고 싶은데 숨 쉬듯 나왔다. 미안했다.
동기 몇 명이 승진했다. 어차피 못할 걸 알아서 기대도 없었다. 승진한 동기 중 나의 지난 승진 때 뜻밖의 선물을 건네준 동기가 있어 나도 얼른 예쁜 도자기를 샀다. 고마운 선물에 보답할 기회가 있어 안심이 됐다. 아무 부정적인 감정 없이 순수한 축하를 건넸다. 이 정도 마음이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회생활 7년차, 덜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4.
좋은 콘텐츠로 가득한 토요일을 보냈다. 이런 날은 흔치 않아 마음이 벅찼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봤다. 생각해보니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처음 봤더라. 박해일을 영화관에서 본 것도 처음이었다. 프랑스 영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화면의 구도와 색감과 표정과 빛이 마음에 들었다. 함께 영화를 본 남자친구에게 봉준호는 열심히 계산하는 너드같다면 박찬욱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변태 같다고 평해 보았다. 확실히 코로나가 지난 걸 느끼는 지점은, 영화관에서 볼 영화가 많을 때다.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루시'를 읽었다. 이런 책은 정기적으로 읽어줘야 한다. 내가 읽은 문학동네 판의 저자 소개 일부를 발췌하여 책에 대한 감상을 대신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 어드메에서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30대 여성은 이 책을 읽은 뒤 오래 생각에 잠겼다.
1949년 5월 25일 서인도제도의 영국 연방 내 독립국인 앤티가섬의 수도 세인트존스에서 태어났다. (중략) 식민 지배하인 고향에서 영국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독서를 즐기고 학업 능력이 뛰어났지만 아홉 살 때부터 남동생 셋이 연이어 태어나면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학교를 그만두었다. 1966년 미국 뉴욕주의 스카스데일로 건너가 외국인 입주 보모(오페어)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후 의식적으로 가족과 고향으로부터 스스로를 멀찍이 떼어놓으려 애쓰며, 이십여년 뒤 앤티가섬을 다시 방문할 때까지 가족과 단절된 삶을 산다.(중략)
피식민자, 여성, 흑인, 이주민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반영한 작품들을 주로 썼으며, 소설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수의 작품에서 식민주의, 탈식민주의, 흑인 페미니즘, 계급과 인종, 젠더와 섹슈얼리티,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다루었다.
'나의 해방일지' 14, 15편을 보았다. 회상이 주로 나오는 14화는 지루했고, 현재를 다루는 15화는 볼만하였다. 해방일지는 인물에 공감은 못하겠는데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며 구경하는 맛이 있다.
일요일 저녁인 지금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를 읽고 있다. 응급실 청소노동자 여사님의 인터뷰를 다 읽어낸 참인데, 또 좋다. 잠깐 내 삶에서 벗어나 여행하는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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