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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참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거야

by 푸휴푸퓨 2013.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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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 사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그 말에 관심조차 없었다. 한 치 앞에는 학원이 있고 학교가 있지 뭐가 있어!? 대학에 와서는 글쎄, 2학년 때까지는 향후 1년 정도의 계획 쯤이야 쉽게 세울 수 있었다. 대충 그 계획에 맞게 살았다.

  휴학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나는 무엇을 하려고 했었나. 그 당시에 써 두었던 포스팅을 보면 지금의 상황과 너무 달라서 생소하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맞아, 1년 내내 한 번에 휴학하고 여행도 다니려고 했지. 결국 여행은 이번에도 유럽에서 끝났고 여전히 나는 한국의 이곳저곳을 가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주말에라도 갈 수 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 결국 변명이지만 안다고 다 하는 건 아니니까.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다. 그 후 바로 미국으로 넘어가서 한 달 정도 여행을 한다. 영국의 민박집 스텝에게 영국 어학연수 생활을 이러저러 들을 때 내가 정말 영국까지 다시 올 가능성을 떠올리긴 했던가? 부모님께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는 말이 담긴 이메일을 보내면서는 다시 돌아오리라 믿었던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집은 한 번 말을 꺼내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결론이 나는 집이니까. 뉴욕과 영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아빠의 젊은 시절 로망이 담긴 뉴욕으로 거의 확정되었다가, 다시 비용이나 마음의 안정 측면에서 재고 따지다가 결국 미국은 여행 정도만 하기로 하고 영국 뉴캐슬로 떠나기로 했다.

  혼자 6개월 이상을 살아낼 수 있을까? 미국 여행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숙소는? 루트는? 불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어학연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혼자 살기가 너무 무서웠거든. 어떻게 집을 떠나서 몇 달을 살아갈 수 있겠어? 지금도 불안하다. 겁이 이렇게나 많은 내가, 집 안에 혼자 있는 것을 너무너무 싫어하는 내가, 온 도시 전체에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던 독일에서의 그 고독감을 매일 맛보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날은 끝이 금방 온다는 것이나 알고 있었지, 이건 뭐 몇 달이잖아.

  인생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을 중앙도서관 인턴십에서도 확인했다. 인턴십 지원서를 넣고 한참이나 연락이 없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금요일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친한 언니가 수업 시간에 들은 바로는 학생 4명이 교수님께 추천을 부탁해서 교수님은 2명 만을 추천해 주었다고 했는데, 추천을 학생들이 부탁한 게 아니라 도서관 측에서 요청하고 추천이 된 건가? 나에게 순번이 쉽게 돌아올 리 없는데 교수님이 추천해 준 것이라면 너무 좋겠다.

  인턴십은 사실 슬픈 기억이 있다. 작년에 ㄱㄷㅈ도서관에서 인턴을 뽑을 때 멋모르고 전공이며 연계전공의 개연성이 확실하니 꼭 될 거라며 들이댔었다. 결국 가열하게 까이고(라고 표현하기엔 내 스펙이 많이 모자랐지만) 마음의 상처를 받은 후로는 무언가 지원을 하고 불합격이라는 통보를 받아도 그다지 상처받지 않는다. 한국학/문헌정보학 석사 과정이 모두 뽑히는 걸 보면서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너무도 확실하게 알아버렸다. 성적을 올 A+로 받지 못하는 나는 당연히 이 건도 떨어지리라 생각했는데, 붙었단 말이야. 붙었단 말이야!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을 처음 겪다 보니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느라 현재에 집중하기가 너무 어렵다. 벌써부터 무슨 짐 리스트를 만들고 하느라 정신이 온통 다른 나라에 가 있다. 학교생활은 친한 동기도 없어 무료하고 따분해. 독강이 일주일 내내 지속되니 마음이 지옥 같다. 금요일에 가는 영어 학원에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기는 하는데 너무 짧다. 그래서 어른들이 현재를 즐기란 그 문구를 그렇게 강조하나? 인턴도 하게 되었겠다, 한국어 교원 과정도 듣고 있겠다, 사실 지금 나의 상황에 집중해서 미친 듯이 살아도 모자랄 판이다. 정신을 한국에 좀 매어 두도록 더 노력해야겠다. 이번 학기를 보람차게 보낸다면 언젠가 이 시기를 되돌아볼 때 썩 잘 보냈다고 생각하는 학기가 될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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