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는 호사스럽게도 뮤지컬을 두 편이나 봤다. 모두 세종문화회관에서 관람했는데, 황금손의 소유자 PT 선생님 덕에 두 편 다 아주 훌륭한 자리에 앉았다. 짧게나마 후기를 남겨본다.
1.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 Dame de Paris)
‘노트르담 드 파리’는 10년 전 대학 교양 수업에서 프랑스어 OST를 들은 뒤 뜻도 모르면서 좋아했던 뮤지컬이다. 국내 공연에는 관심을 두지 않다가 노친자(노트르담에 미친 자) 회사 동기의 영향을 받아 올해는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고 싶다는 뜻을 비추자마자 PT 선생님의 본인만 믿으라는 호언장담이 들렸다. 새벽의 취켓팅을 마다하지 않는 선생님 덕에 중블 3열에 앉는 기염을 토했고, 공연날 앞자리 사람이 결석까지 해버려서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 시야로 공연을 보았다. 만세!
내용이 에스메랄다를 향한 하남자들의 모임인 것은 대충 알았지만 자세히 봐도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바람을 피우다 나 몰라라 처형시키는 페뷔스나, 집착이 오지고 지리면서 이건 사랑이라 우기는 신부나, 조각상 뒤에 숨어서 내 사랑이 진짜라고 훔쳐보는 콰지모도나 싫은 건 마찬가지. 그래도 가사와 상관없이 노래는 아름답고 아크로바틱은 멋져서 공연 내내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특히나 ‘우리는 이방인 둠따둠따’ 해가며 보헤미안들이 군무를 추는 부분, 콰지모도의 세 종 친구들이 종에 매달려 폴짝폴짝 아크로바틱 하는 부분은 어찌나 재밌던지. 앞자리가 참 좋았지만 전체적인 아크로바틱 군무를 즐기는 용으로 뒷자리에서 한 번 더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텅장을 위해 참음). 내용이 때로 읭스럽더라도 노래가 매우 좋고 무대 연출과 군무도 훌륭하니만큼 한 번쯤 볼 값어치가 있는 공연! 내년이나 언젠가 또 공연한다면 또 보러 올 것 같다.
2.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Last Five Years)
내용은 일절 모르면서 최재림 배우를 작은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 하나로 예매한 공연. 황금손 선생님이 1열 자리를 잡고 짠, 보여주시는 바람에 가겠다고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제이미와 캐시가 만든 5년 간의 사랑 이야기를 시간순과 역순으로 교차해서 보여준다.
극 전반적으로 캐시가 더 사랑스러워보이는 느낌이 들었다(내 기분 탓일지도). 캐시가 이별을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때 시간 상 연애 초인 제이미가 신나서 떠들어대면 ‘이눔 시키 분위기도 못 읽고 까불고 있어!’ 싶고, 캐시가 연애 초가 되어 깜찍 발랄하게 노래하는데 제이미가 침대에서 ‘우린 끝났어!’ 운운하면 아니 저렇게 귀여운 동반자랑 어떻게 헤어지나 싶고. 시간이 반대로 흐르다 결혼할 때만 만나게 해주는 연출을 어떻게 떠올리신 건지 연출가(인지 각본가인지 무튼 어느 분)의 아이디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작은 무대인데 원형으로 돌아가는 부분이 둘이나 되는 등 무대 연출도 효율적이었다. 최재림 배우가 테이블을 훌쩍훌쩍 넘나들며 노래하는데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아서 운동의 중요성을 체감했지. 다만 최 배우님이 23-28살을 연기하는 게 조금 외견 상 마지노선에 닿은 듯싶고, 우리나라의 정서를 생각했을 때도 한 25-30살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로 옮겼으면 더 공감이 됐을 것 같다(혹시나 해서 이야기하는데 저 최재림 배우 몹시 좋아합니다ㅋㅋㅋㅋ).
시작할 땐 누구보다 운명적이었던 둘이 시간이 쌓이고 상황이 변하면서 서로가 고통이 되고 반짝임이 사라진다. 어쩔 수 없어진 관계라면 놓아주는 것도 답이겠지.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게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제이미의 바람이 약간 못마땅하지만) 기본적으로 20대에 이른 성공을 하고 있는 남자와 아직 진로를 헤매고 있는 여자 중 딱히 누구의 잘못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이별이었다. 헤어져도 그들이 쌓은 시간이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젊은 날의 반짝임은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뒤편에서 무대 전체를 조망하며 한 번쯤 더 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충주*민경아 조합으로 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하지만 역시나 텅장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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