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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도 나이기 때문에

by 푸휴푸퓨 201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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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메인에 떡 올려놓은 마당에 블러는 왜 하냐마는ㅎㅎㅎㅎ)

 

  나는 항상 좋은 향이 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를 한 번 뒤돌아보게 하는 향, 맡고있는 내가 하루종일 행복할 수 있는 향, 그런 향이 났으면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 처럼 나는 옷에서 은은히 우러나오는 울샴푸향을 참 좋아하는데 모든 화장품의 향을 다 싫어하는 우리 엄마는 울샴푸도 머리가 아프다며 쓰지 않으신다. 어쩔 수 없지ㅜ_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향이 좋았던 중학교 시절 남자아이는 지금도 기억난다. 그 아이가 몸에 지니고 있던 종이에서도 같은 향이 났었는데, 그렇게 좋은 향으로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은 썩 괜찮은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대학교에 오자마자 자유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한 두 가지 일 중 하나가 바로 향수사기였다. 다른 한 가지는 네일아트 하기였는데, 그건 또 언제 이야기할 때가 오겠지. 여하튼 그 이후로 가방에서 향수가 없는 날은 없다. 때로는 자주 뿌리는 것도 아닌데 들고다니는 것이 귀찮기도 하지만 결국은 별로 무겁지도 않다고 생각하면서 포기가 안된다. 뿌리고 싶을 때 없으면 얼마나 서글픈지. 물론 향은 자주 바뀌어서 저렇게 향수가 서랍장 위에 한가득 놓여있다. 공통점은 겐조 말고는 그다지 비싸지 않다는 것.

 

  가장 먼저 멋모르고 골랐던 flower by kenzo, 지금도 어울리지 않는 농염한 여자의 향이 나는 향수다. 처음에는 어울리고 뭐고 좋으니까 팍팍 뿌리고 다녔는데 어느순간 이 향은 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교내근로장학생을 담당하던 직원 분이 좋아하는 향이라며 떨떠름하게 웃던 순간 알았던가? 아무튼 농염한 여자 이미지가 어울릴때까지 기다리다보니 이제 산지도 한참이 지나 향수 유통기한이 다 지나도록 못쓰고 있다(향수에 유통기한이 크게 중요한건 아니지만). 살 때 같이 딸려온 미니어쳐만을 쓰는 바람에 정품은 제대로 펌핑도 안 해 본 것 같다. 언젠가!

 

  그 다음으로 산 향수는 데메테르의 clean soap. 원래의 로망으로 돌아가서, 갓 한 빨래 향이 나는 여자가 되고 싶어 이리저리 찾던 중 가격도 별로 비싸지 않고 한 가지 향만이 우러나오는 데메테르에 꽃히게 되었다. laundromat 와 clean soap을 두고 미친 듯이 고민하다가, 비누향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고 주장하며 clean soap을 샀다. 데메테르는 향의 지속력이 약해서 한 번에 몇 번씩 펌핑을 해도 오래 가지 않고 향도 부담스럽게 진하지 않아(특히 얘는 비누향이니까 더) 한 통을 싹 다 비우고 새로 한 개를 더 샀는데 그 때마침 또 다른 향수들을 샀기 때문인지 아직 별로 쓰지 않았다.

 

  그 다음에 꽂힌 향은 더바디샵의 화이트머스크. 내가 무어라 평할 필요도 없는 스트스트베스트셀러다. 그 당시 뭔가 싸~ 하면서 묘한 느낌이 나는 여성이 되고 싶었기에(그게 향만으로 되는 일인지는 제쳐두기로 한다) 맡자마자 사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해 겨울을 화이트머스크에 둘러싸여 보냈지만 계절이 지나고 나니까 싸해지고 싶게 만들었던 마음도 싸한 날씨도 물러가더라. 그래서 반 정도 쓰고 아직 남아있다. 이번 겨울에 다시 써볼까 생각 중이다. 타이밍(?) 봐서!

 

  싸한 여자를 때려치고 되고 싶었던 모습은 발랄하고 생기있는 나!였다. 그래서 고른 것이 정말 오직 발랄하기만 한 씨트러스는 다 내가 가져오겠다고 외치는 nouveau cologne 4711. 지난 유럽여행에서 origianal의 향도 맡아 보았는데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실망ㅜ_ㅜ 지금 이 현대적 4711은 발랄을 다 흡수하고 싶었던 내 마음에 꼭 들어맞아 주는 향수였다. 힘내서 7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우울감이 몰려와도 나에게 발랄함을 강제할 수 있었던 알바몬의 향이다. 여름에도 시원하게 잘 쓰고 다녔다.

 

  그리고 지금, 내가 꽂힌 향은 뭘까? 사람의 취향이 잘 바뀌지 않는 것이기에,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는 법이다. 요즘 좋아하는 향수는 안나수이의 flight of fancy. 사실 여름에 같이 여행을 간 친구의 versace 향수 향이 너무 좋아 미니어처를 사면서 비슷 한 것을 추천해 달라 해서 우연히 사온 향인데 너무!!!!!!!! 좋은거다. 검색해 보고 나서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 한 것이 탑이 리찌, 유자, 자바레몬의 씨트러스 계열이고 베이스가 스킨무스크, 화이트우드... 화이트 머스크 친구다. OMG 나의 일관성에 한 번 더 놀라주도록 하자. 요즘 얘를 뿌리고 문을 나서면 그냥 기분이 룰루랄라 한다.

 

   이것 외에도 좀 더 있기는 하다. 여행 가서 사왔는데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남에게 주려 하는 bruno banani의 made for woman, 향이 딱히 싫지 않고 뿌릴만 하기는 한데 좋은게 너무 많아 밀린 zara의 white, 뿌리면 너무 싫어서 짜증나는 -그냥 갑자기 단 향을 사면 어떨까 싶었는데 그런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을 싫어지게 만드는- 데메테르의 sweet heart(버릴수도 없고 밤에 그냥 혼자 발이 달려서 어디론가 떠나주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사놓고 쓰지 않는 90년대에 유행하던 향을 가진 lancaster의 sunwater, lanvin의 미니어쳐(marry me의 정품을 훌쩍 살 수 있는 재력을 가진 녀성이 되겠어!), dior의 미니어쳐... 죽 늘어놓고 보고 있노라면 아주 그냥 흐뭇하다. 사실 오늘 이 글을 쓴 이유가 저 디올의 미니어쳐 때문이다.

 

  엄마가 언니에게 성년의 날을 맞아 사 주었던 디올 미니어쳐 4세트는 2년 넘게 언니의 책장에 방치되어 있다 오늘 내 그냥 한 '그냥 그거 다 나 주면 안돼?'라는 말에 싱겁게 내방으로 이사를 왔다. 이게 왠 떡이야! miss dior l'eau, blooming bouquet, ja'dore, 그리고 dior addict2!!! 이 중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addict2~.~ 딱 맡아보고 너무 좋아서 이건 뭐야 하고 검색했더니 역시나 탑은 씨트러스 베이스는 화이트머스크다. One more time~ OMG 나의 일관성에 한 번 더 놀라주도록 하자! 너무 좋아 버리는 거다. 앞으로 안나수이는 아침에 집에서, 디올은 학교에서 향이 사라지고 나면 추가적으로 뿌려주면 될 것 같다. 미묘하게 향이 다르겠지만 뭐 이렇게 비슷한 계열은 좀 섞여도 되겠지.

 

  쓰다가 깨닫게 되었다. 깨닫는다는 말도 우스운가? 아무튼!! 에, 인식하였는데 뭘 인식했냐면(ㅋㅋㅋㅋㅋ) 내가 어떤 향수를 쓰는 것은 그 향수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와 같은 여성이 되고싶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냥 향이 좋아서 뿌렸어, 라고 항상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네. 향수를 통해서 내 이미지를 바꾸고 그걸 내 자신에게 계속 각인시키고 싶었구나 싶다. 향수가 나를 변하게 한다니, 더 좋은데? 앞으로도 되고 싶은 워너비 여성상이 있으면 향수를 바꾸어야겠다.

 

  향수가 점점 많아지지만 고가의 향수는 잘 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언젠가 미니어쳐가 아닌 정품 향수를 퐝퐝 살 수 있는 여자가 되었으면 좋겠고, 일관된 나의 이미지를 찾아서 한 가지 향수를 오래 쓰는,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그 향만 맡으면 내가 생각나는 그런 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하,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때 까지 나의 향수 유랑은 계속된다.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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