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만의 규칙이 가득한 곳
내가 집을 좋아하는 느끼는 이유를 표현한 장면을 만났다.
그것도 정리의 좋은 점이죠.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규칙이 적용된 ‘내 공간’이란 생각이 드는 거요.
네이버 웹툰 ‘청소하러 왔어요’(글/그림 뻥)
일상 루틴이 잘 돌아가면 마음이 편한 시기라 느낀다. 일주일의 메뉴는 계획해 두어야 효율적이고 안심된다. 매일 타는 지하철 칸이 정해져 있다. 회사에서는 매일 내일의 업무 목록을 작성한 뒤 퇴근한다. 말을 전달할 때 넘버링으로 정리하는 게 편하다. 규칙으로 삶을 통제하는 게 좋은 사람이다.
집은 서랍 하나 허투루 방치해 둔 곳이 없다. 모든 장소가 나름의 이유로 정돈되어 있다. 매사 예측 가능한 집에 있으면 천국 같다. 움직이지 않아도 될 좋은 집을 갖기 위해서 인생을 다 바치고 있다. 집에 만족하고 나면 나는 무얼 원할까? 멋진 아파트 단지를 돌아보고 와서 문득 궁금해지는 날.
2. 남의 집 구경하며 침흘리기
그래서 멋진 아파트는 어디였냐면, 잠실의 ‘아시아선수촌 아파트’를 구경하였답니다. 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려니 하고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우연찮게 돌아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단지를 지금 안 것이 아쉬울 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 훌륭한 곳이지 뭐예요? 아파트 단지에서 길을 곡선으로 내는 곳이 있었다니. 80년대에 필로티 구조를 실현했다니! 동마다 다른 디자인이 가미된 건 또 어떻고, 정원이 커다래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조경만 더 빡빡하게 관리한다면 어디 지방의 멋진 리조트 배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훌륭한 단지였다.
집에 돌아와 온라인으로 탐구를 시작했다. 아하, 송파를 강남으로 만들어 준 압구정 아파트만큼 좋은 단지였구나(feat. 강남의 탄생). 준공 직후의 사진을 찾아보며 침을 흘렸다. 사진집도 빌려보려 예약했다. 아이고 멋있어.. 아이고 멋있어! 그 시절에도 비쌌을 대형 평수의 아파트이기도 했다. 지금도 아파트 상가에 다양한 브랜드의 은행이 아파트 상가에 들어와 있었고 하나은행은 PB센터이기까지 했다. 부자가 부럽다는 생각을 자주 하지는 않는데,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에서 사는 건 상당히 많이 부러움이 뻐렁쳤다. 역시, 돈을 모으면 집을 사야 해!
아시아선수촌 아파트는 재건축이 결정되어 있다. 옆의 우성아파트도 그렇고 새로 지어지면 그렇고 그런 신축이 되겠지. 낡음의 정서를 사랑하는 내게는 몹시 아쉬운 일이다. 소유한 분들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의견이겠기에 크게 떠들 순 없지만, 가끔 옛 모습을 유지하는 유럽이 부러울 때가 있다. 거.. 내부만 바꾸면 안 되나요? (응 안돼)


3. 유치해도 괜찮아. 괜찮아?
너와 결혼한 지 200일이 넘었다. 둘이 신나서 야식을 먹고 증량을 하거나 뒹굴대는 주말을 보내며 우리는 진짜 집을 좋아한다고 공감한다. 취향이 맞는 두 인간의 자충우돌 자취생활은 평화롭다. 대체로.
너는 끊임없이 초딩같은 장난을 시도한다. 글을 쓰기도 어렵게 유치하다. 가령 엄지손가락을 누르면 방구를 뿡 뀐다거나, 갑자기 어딘가 아프다며 이불 속으로 머리까지 집어넣고 웅크리기에 따라 들어가면 또 방구를 뀌고…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다람쥐가 호두를 분류하듯 내 머리를 통통통 두드리고 소리를 듣는다. 자는 척을 하다 놀라게 하거나 화장실의 불을 끄는 건 놀랍지도 않다(아니다. 매번 자지러지게 놀란다). 내가 외출을 한다고 나서면 벽 뒤에서 눈만 빼꼼 내놓고 쳐다본다. 아니 대체 왜 구러는데.

같이 헬스를 하면 분명 비슷한 무게를 치는데 몸싸움에서는 이길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유치한 짓은 콧구멍에 손가락 넣기다. 너의 콧구멍은 엄지손가락을 넣으면 사이즈가 찰떡이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몹시 자괴감을 느낀다. 어떻게든 손가락을 넣으려는 사람과 막으려는 사람이 팔목을 꺾고 몸을 누르고 아무튼 할 수 있는 걸 다 한다.
몸싸움에서 지면 내내 분하다. 치욕스럽게 “잘못했습니다”라거나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라고 선언해야 풀려난다. 어젯밤에도 씩씩대다 사죄를 했다. 나는 왜 남편의 코에 손가락을 넣지 못해 안달인가. 살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짓을 할 곳이 별로 없다. 다른 데서는 보여줄 수 없는 유치함을 안심하고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 있다. 내게는 결혼이 그런 의미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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