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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남을 용인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by 푸휴푸퓨 2013.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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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많은 시간을 내가 10대 시절에 비해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전혀 성장하지 않은 부분을 느끼고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특히 내가 더 나은 스스로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부분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는 더더욱. 오늘 내가 이 블로그를 열심히 쓰게 만들었던 분에 올라온 포스팅 하나가 다시 나를 미묘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 분은 일상을 예술화 한다는 모토로 살아가는 분이고, 그 분의 한 카테고리 이름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감성이 범람하는 일이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로망을 그분이 실현하고 있는 것이고, 소녀감성 가득한 10대 여자아이는 더더욱 눈이 반짝이겠지. 15살 짜리 소녀가 더듬더듬 가게에 전화를 걸어, 울며 일을 배우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그 아이의 엄마는 하루의 좋은 추억으로만 남게 해달라고 반대하시고, 학교에서는 검증을 해야 한다며 사업자등록증을 가져오라마라, 아이는 또 울먹거리며 죄송하다고 하고... 읽는 내내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 시절의 나도 그랬듯, 왜 학교에 앉아 무의미해 보이기만 하는 것들을 보고, 거지같은 시험을 치고, 등수를 받고.. 그 아이의 세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 가게에서 있어보고 싶은 마음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거기에 있어보고 싶은데, 너는 오죽하겠니. 하지만 나는 그 아이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주인의 피로함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한지 몇 년이나 되었다고 이런 말을 하느냐마는, 각박한 서울에서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고 별로 원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칭찬을 듣는 것도 아니면서 한 사람을 감당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정도는 이제 아니까. 아마 내가 아는 것 보다 더 큰 것들이 있을 것도 대충 짐작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 여자아이가 못마땅스러웠다.

  내 사정의 절박함은 있고 그것을 견뎌야 하는 그 어른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아이. 그걸 다 고려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애가 아니라 어른이겠지만, 건방진 말을 툭툭 내뱉으며 잔소리도 하며 어른인 척 하는 네가 진짜 어른이 아니라는걸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서 나는 그게 싫어. 거절을 하면 거절을 거절로 알아들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좋은 사람이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글을 쓰는 그 분이 다만 귀찮아서 그 아이를 거두는 걸 거절한 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생각해 봐야지. 지금 제가 너무 절박하다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여자의 무기인 눈물이나 흘려가며,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니까 또 나오는 것은 눈물.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게 15살 여자애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알면서도. 알기는 아는데 싫어. 

  이런 생각을 하며 글을 쭉 읽다가, 학교 교양 수업에 들었던 똘레랑스, 남의 자유를 존중하며 용인해 주는 일을 나는 이론적 정의는 줄줄 외워도 실천은 전혀 못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 시험도 친 그 내용을 이렇게 무시하면 안되지 하고 나쁜 마음을 억누르다 드는 생각은 '그래, 내 일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분노하고 짜증내고 있지?'이런 것들. 이게 바로 똘레랑스의 부작용, 극단적 무관심이잖아!?(왠지 그 수업 썩 쓸만한 수업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뭐, 나더러 어쩌라는 건지. 물론 아무도 어쩌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남을 용인하는 능력이 나는 턱없이 부족하다. 10대는 미성숙하고 어리며 그것을 다독여 주는 것이 어른의 의무임을 알면서도 그 미성숙한 행동을 고깝게만 바라보는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어른이 아니다. 상대방은 절대 모를 짜증스러움을 여전히 느끼지만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가지면서, 그냥, 그렇게라도 그 시기를 어쨌든 잘 넘기기를 빈다. 그런 너를 감당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분이시고, 나는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으니까. 용인을 연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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