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ARY

너와 나의 다름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지 않게

by 푸휴푸퓨 2013. 11. 2.
728x90
반응형

  오랫만에 대학 동기 다섯 명이 모였다. 졸업사진을 어떻게 찍느냐가 중요한 화두가 되었으니, 1학년 때 처럼 아무렇지 않게 모두 모여 밥이나 한끼 먹는 일은 사치가 된 지 오래다. 치맥이나 하자며 모이기 위해서 무려 10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년엔 나 때문에 다섯이 모이기가 또 힘들겠구나.

  사실 나와 졸업을 맞이하는 언니, 미국에서 돌아온 친구까지 이 세 명은 요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바쁘고 각자 할 일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밥이야 먹어야 하는 거고,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같이 먹으면 더 즐겁고. 만날 수 없는 사람은 나머지 두 명인데 이들은 요즘 각자의 미래를 위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하루종일 도서관에 앉아서 인강을 듣고 스터디를 한단다. 힘이 드는지 예전보다 마른 모습이 안쓰럽다. 무어라 진정으로 위로가 될 말을 해 줄 수 없는 나의 하찮음이 미안하기도 하다.

  치맥을 먹으며 이들을 만나면서 내 처지를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되는 것이 나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지 원래 사람이란 다 그러한 것이라 합리화 시켜도 되는 것일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대학원을 간다고 결심한 사람이 두 명, 바로 직장에 취업하겠다는 사람이 한 명, 공무원 시험을 보는 사람이 한 명, 또 무슨 전문직 시헙을 보는 이가 한 명이니 고작 다섯명이 모이는데 진로가 다양하기도 하다. 나는 대학원을 선택했고 그 선택에 후회가 없다가도 생기고 생겼다가도 없어지는 크고작은 고비들을 매일 맞이하고 있다. 이럴 때 나와 다른 사람을 보면, 나의 선택과 비교할 수 밖에. '너는 이래서 부럽고, 너는 이래서 부러운데, 나는 어떡하면 좋아'란 말이 돌고 도는 자리였다. 결국 남의 눈에 부럽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내 눈에 만족스러운 위치를 가진 사람도 하나도 없는.

  정확히 말하면 비교라고 하기도 어렵겠다. 각자 본인들이 원하고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을 택하였다 믿기에 비교할 필요도 없다. 그냥 내가 그들이 한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가정을 해 보는 것이다. 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면, 전문직 자격증을 준비한다면, 토익과 자소서를 준비해 취업을 한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덜 불안했을까. 내일과 내년과 그 모든 것들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란 사치스런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그냥 지금보다는 앞날이 더 잘 보였을까 궁금하다. 궁금해서 괴롭다.

  대학원에 가는 것이 취업의 회피로 여겨지는 요즘 같은 때에 공부를 더 하고싶어 대학원으로 갑니다, 하는 말은 순진하다 못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소리라 여겨질 것이다. 아니 그렇게 여겨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여겨질 것 같은 생각을 내가 하고있고, 결국 내 스스로를 끊임없이 너무 순진하고 멍청한 것이 아니냐고 자문하는 상황에 몰아넣는다. 나는 아직도 현실을 모르나? 감당할 수 없으면서 무작정 객기로 덤비려 드나? 멍청해서 멍청이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면 정작 멍은 제대로 때리지도 못한다. 자신이 멍청이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진정한 멍청이도 못된다. 몰라야 멍청이지 아는데 뭐, 스스로에 초라하고 눈도 똑바로 못마주치는 사람일 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 내가 가장 되고싶지 않은 사람.

  종종 가만히 앉아서 내 미래를 그려본다. 나는 일단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해 보기로 선택했다. 스스로 그걸 즐기면서 재미를 찾는 사람이 되느냐, 남을 보고 불안해하며 땅만 보고 걷는 사람이 되느냐 하는 문제가 다시 눈 앞에 있다. 답이 너무나 자명하기에 더 힘든 일. 나만 괜찮으면 다 괜찮은 거 아니까, 괜찮아지려는 발버둥이고 초라해지고 싶지 않은 몸부림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나는 정말로 되고싶지 않다. 더 세게 몸부림쳐야하나. 하지만 편안히 있어도 괜찮고 싶다. 어떻게 하면, 언제쯤 그렇게 될까.

  헤어져 혼자 탄 버스에서, 창 밖을 보다가 문득 생각한 말. 여러분의 선택이 나의 선택과 다르다는 것이 기뻐요. 비슷하게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만나 트렌드도 따라가지 못하면서 깨알같은 재미를 찾겠다 설치던 우리가 각자 어떻게 살아갈지 나름의 방향들을 정하고 그걸 위해 노력한다는게 난 좋아요. 다들 정말 원하는 대로 잘 되어서, 지금 아무것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지금을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내가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이었는데, 손발이 굽어들까봐 미처 말하지 못하였지만, 그랬었다고.

728x90
반응형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 여기는 게 싫어  (0) 2013.11.09
반가워 내 글아  (0) 2013.11.07
남을 용인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0) 2013.10.24
내 얼굴을 걸고 하는 것  (0) 2013.10.19
바람이 분다  (0) 2013.10.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