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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총결산 시리즈] 2023 올해의 OOO을 써보자! 올해의 사건 :: 새로운 근무지로의 발령 5년간 출퇴근하던 근무지에서 한껏 떨어진 근무지로 발령이 났다. 고통의 순간에서 나를 지켜내려 노력했지만 멋지게 싸운 기분은 들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노라면 내가 정말 서울 사람이구나 싶어 기분이 묘하다. 지겨워지던 일을 바꿀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직장에서의 성장이 멈춘 기분이었는데, 새 부서에서는 해 본 적 없는 미션을 받고 언덕을 넘어가는 일이 반복된다. 이 시간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쑥 자라 있겠지. 나를 밑바닥까지 밀어냈지만 동시에 내게 평안을 준 사건이었다. 감히 전화위복이었다고 말해 본다. 올해의 습관 :: 지하철에서 시간 보내기 매일 지하철 타는 시간을 잘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만원 열차가 아니라 충분히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는 환경이다. .. 2023. 12. 27.
[2023 총결산 시리즈] 2023 성과와 답보 유난히 답보 상태라는 기분이 많이 들었던 한 해, 솔직하게 적고 툴툴 털어내겠다. 2024년에는 꼭 도약해야지. 성과 1. 자산 000원 증가 연초에는 생각하지 못한 만큼 저축액이 불었다. 목표보다 꽤 많이 늘었다는 점에서 스스로 기뻐할만하다. 그럼에도 쉽게 기뻐지지 않아 내심 의아했고,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간단하게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올해 돈을 아끼지 않고 썼기 때문이고, 나머지는 내가 공부해서 이뤄진 자산 증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돈을 많이 썼다. 나를 치료하는 비용이라 생각하며 고삐를 느슨히 풀었다. 치료 목적의 소비는 돌아보니 그저 낭비로 보였다(낭비라 말할 수 있을 만큼 회복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멀쩡해진 후에도 무엇에 썼는지 모르겠는 돈이 많았다. 그런데도 돈이 .. 2023. 12. 26.
괴물 나는 가끔 사람이 무서워요 두려워요 만원 지하철에서 내리려고 문 앞에서 버티는 사람을 밀쳐내다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자를 있는 힘껏 재단하다가 온갖 소스가 범벅된 플라스틱 그릇 속 이만 얼마짜리 탄수화물을 먹다가 자신만이 목적이고 세상은 수단인 줄 아는 사람을 만나면 취하느라 시들어가는 꽃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눈앞의 쇼츠에 물들어서 기실 무얼 보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나를 다른 사람이 무서워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2023. 12. 21.
모퉁이 1. 시선이 드물게 닿는 큰길의 모퉁이에서 눈이 초롱한 노인이 발을 대롱대롱 중요한 일인 양 매일 앉아 자리를 지킨다 왜 여기 계셔요 무슨 생각하셔요 아침마다 언제 오셔요 답할리 없는 무음의 질문을 번번이 마주치다 스르륵 지나가는 아침 고양이가 영역 지키듯 세상을 처음 보는 어린 눈으로 하염없이 무언가를 찾는 눈으로 공기가 달궈져 아침나절도 괴로울 무렵 신기루 사라지듯 사르륵 자취를 감춘 노인이 선선한 바람이 불 무렵 또, 모퉁이에서. 2. 너나없이 바쁜 퇴근길 모퉁이에서 하염없을 풍파에 절은 굴곡의 노인이 기어코 한편에 난전을 편다 마른미역이며 손질해 내는 푸성귀며 좋아 보이지도 싱싱해 보이지도 않은데 지나는 사람 눈길 하나 없는데 악착같이 자리를 꿰차고 초라함을 펼쳐두고 매서운 눈사위가 길을 가른다 .. 2023. 12. 21.
2023.12.19. 요즘만 같으면 좋겠네 1. 자주 가는 카페에 하루에 한 번 인증을 시작했다. 오늘 할 일(했는지 여부 기재)과 감사한 일, 지출 내역을 적는다. 며칠 해보니 하루를 쌈박하게 마무리하는데 은근히 유용하다. 1년 정도 모으면 유용한 데이터가 되겠다 싶어 마음에 들어서 기분이 좋아지던 차, 매일의 지하철에서 무슨 일을 하였는지도 적어볼 생각이 들었다.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시간에 나는 생산적이고 싶었을까, 쉬고 싶었을까. 지하철을 30분씩 타게 되면서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관심이 많아졌다. 나를 돌아보기에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을 확장해 보려고. 나는 한 달에 며칠이나 쉬고 싶고 며칠은 생산적이고 싶어 할까? 2.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다. 갤럭시탭에 낙서하는 걸 화면 녹화해 편집했다. 낙서는 늘 좋아해서 만드는 과정이 즐거웠.. 2023. 12. 19.
2023.12.13.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으면 행복에 가까워진다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왜 걸렸는지는 잘 알고 있다. 남자친구에게 옮았다. 설마 옮을 줄이야! 좀 컹컹 거리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주말 이후 네 증상도 몹시 심해졌다. 나는 어떻고!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니까 너는 증상이 심하지 않은데 데이트가 일주일의 낙이라 포기하기 어려웠단다. 주말에 둘이 수탉의 파티 애니멀즈 영상을 보며 데굴데굴 웃어댄 터라 이해는 갔다. 혼자 보면 재미없지. 미안하다고 해 봐야 이미 옮았고, 아무튼 그래서 목소리를 잃었다. 아이고 아파. 이번주는 계속 혼자 점심을 먹는다. 쇳소리로 감기 전염 우려를 표했더니 모두가 인정해 주었다. 수요일엔 별렀던 스타벅스에 왔다. 나는 작은 로망이 있었다. 일하다 스타벅스에서 점심 먹으며 시간 보내기. 이 얼마나 소박한 바람이야?.. 2023. 12. 15.
[월간 백만] 2023년 11월의 백만 이 달의 식당: 취향의 섬 제주도 여행 계획을 짜다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런 나를 몹시 칭찬하게 만든 집. 먼저 제주에 가는 회사 동기가 다녀오더니 정말 좋았다고 해서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믿음으로 직진했다. 위치가 외딴곳이라 뚜벅이는 택시비를 상당히 날렸는데요,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고사리멜젓파스타와 흑임자리조또, 옥감자춘권, 뀰라봉주스를 먹고 신이 나서 함께 간 남자친구에게 식당을 찾아낸 생색을 마구 내었다. 친화력 좋은 다른 테이블과 주인분과의 대화를 통해 아늑하고 세세한 인테리어를 납득하게 되었다. 목수인 오빠와 새언니가 낡은 집을 직접 고쳐 만든 곳이라나. 1인 식당인데도 음식이 크게 늦지 않게 나오고(주방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계실까), 친절하고 맛있다. 동네에 있는 식당이라면 1주일에 .. 2023. 12. 6.
2023.11.28. 악마같은 나를 무심코 사내 시스템의 인적사항 탭을 눌렀다가 최근의 승진 순위를 확인하고 눈을 의심했다. 무려 후배보다도 낮은 고과를 받았다. 사기업이라면 정리해고 1순위가 될 일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잘 알고 있다. 4월의 나는 상사와 싸웠고, 5일이나 연차를 냈다. 쫓기듯 먼 부서로 발령이 났다. 많은 걸 예상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상상력이 부족했다. 더 참았어야 했을까. 자꾸 그때의 순간으로 돌아간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싸움에 서툴러서 멋지게 이기지는 못했다. 나를 밟은 사람은 기관장과 함께 승승장구하고, 나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줄까 싶었던 상사는 자신의 자리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나를 지키지 못해 뼈저리게 아파하던 시간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 2023. 11. 28.
2023.11.12. 제주 넷째날 조식을 먹고 일찍 숙소를 나섰다. 바다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후에 보니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마지막날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벌써 아련했다. 남자친구와 함께면 평범하게 흘러갈 시간에 의미가 새겨진다. 대단한 게 없어도 소중한 시간. 여행 전부터 마지막 날에 무엇을 할지 고민했는데 결국 마음에 드는 안을 세우지 못했다(귤 따기 체험을 미리 해버린 탓도 있지). 남자친구는 맛집이나 일정에 얽매이지 말고 편히 시간을 보내다 가자고 했다. 너는 사진에 흥미가 없고, 남들이 좋아하는 맛집에 관심이 없다. 게다가 자연에도 큰 감흥을 느끼지 않았다. 집안퉁이 방구석여행자 둘은 남들 따라 하려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내내 깨지 못한 게임을 깨기로 했다. 가까운 중문 스타벅스에 걸어갔다. 걷는 30분 남짓을 신나게 낄낄댔다... 2023. 11. 20.
2023.11.11. 제주 셋째날 시에나 리조트에서 조식을 먹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메뉴였다. 골프복을 입은 중년 손님이 많았다. 리조트의 규모가 크지 않아서 손님이 많아도 붐비거나 지치지 않았다. 좋은 물건이나 음식에 크게 감흥이 없는 남자친구도 시에나 리조트는 마음에 들어 했다. 식당을 나오며 테이크아웃 커피를 챙겨 왔는데, 마셔보니 콜드브루였다. 나도 꼭 돈 많은 중년이 되기로 결심했다. 귤 따기 체험을 운영하는 카페가 많았지만 제대로 된 체험을 하고 싶다고 주장하며 2000평 귤 농장을 예약했다. 도합 3kg을 딸 수 있었는데, 그게 얼만큼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가고 싶었지만 제주도의 버스는 시간표가 무색하게 제 멋대로 왔다. 택시를 타고 언덕을 올라갔더니 넓은 농장이 있었다. 귤은 생각보다 금방 땄다. .. 2023. 11. 17.
2023.11.10. 제주 둘째날 시에나 리조트에서 조식을 먹었다. 사람이 몰릴까봐 8시가 되기 전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멋쩍게 앉아서 음식을 퍼왔는데 글쎄, 이제까지 먹어봤던 호텔 조식 중 가장 훌륭했다. 전부 먹어 치우고 싶었지만 위 용량에 한계가 있었다. 극진한 대접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남자친구와 음식의 퀄리티에 연신 감탄했다. 송악산 둘레길을 걸으러 갔다. 산책로 계단 너머로 반짝이는 바다가 있었다. 바다 앞이어서인지 바람이 무지막지 불었다. 이 예쁜 곳을 함께 왔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바다는 파랗고 햇빛은 좋고, 바람이 떠밀어주는 듯 걸으면서도 신이 났다. 이런 둘레길을 찾아낸 스스로에게 감탄하고 있는데,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너는 급하게 회사 일을 해야 했다. 숙소에 맡겨둔 노트북이 필요하단다. 둘레길의 한.. 2023. 11. 16.
2023.11.9. 제주 첫째날 공항에서 10시 1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네가 한 시간이나 일찍 왔다.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머리까지 잘 손질한 너는 여행이 기대되어 잠을 설쳤다고 했다. 나도 약속 시간보다 일찍 와서 같이 아침이라도 먹을 줄 알았는데, 눈치 없는 나는 시간을 잘도 맞춰 가버렸지. 여행에 설렌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 시간이 나만 기대되는 건 아니구나. 착륙하는데 떨린다며 서로 손을 꽉 잡았다. 택시를 타고 미리 찾아둔 음식점 ‘취향의 섬’에 갔다. 제주도는 노란 귤이 한껏 열리는 시기였고, 남원읍은 더 그랬다. 취향의 섬은 손수 시공한 인테리어가 정말 멋진 곳이었다. 고사리 파스타와 흑임자리조또, 옥감자춘권을 흡입했다. 만족스러운 점심이었다. 너와 올레길을 조금 걸었다. 제주는 무려 20도여서 기.. 2023.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