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689

2023.11.12. 제주 넷째날 조식을 먹고 일찍 숙소를 나섰다. 바다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후에 보니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마지막날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벌써 아련했다. 남자친구와 함께면 평범하게 흘러갈 시간에 의미가 새겨진다. 대단한 게 없어도 소중한 시간. 여행 전부터 마지막 날에 무엇을 할지 고민했는데 결국 마음에 드는 안을 세우지 못했다(귤 따기 체험을 미리 해버린 탓도 있지). 남자친구는 맛집이나 일정에 얽매이지 말고 편히 시간을 보내다 가자고 했다. 너는 사진에 흥미가 없고, 남들이 좋아하는 맛집에 관심이 없다. 게다가 자연에도 큰 감흥을 느끼지 않았다. 집안퉁이 방구석여행자 둘은 남들 따라 하려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내내 깨지 못한 게임을 깨기로 했다. 가까운 중문 스타벅스에 걸어갔다. 걷는 30분 남짓을 신나게 낄낄댔다... 2023. 11. 20.
2023.11.11. 제주 셋째날 시에나 리조트에서 조식을 먹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메뉴였다. 골프복을 입은 중년 손님이 많았다. 리조트의 규모가 크지 않아서 손님이 많아도 붐비거나 지치지 않았다. 좋은 물건이나 음식에 크게 감흥이 없는 남자친구도 시에나 리조트는 마음에 들어 했다. 식당을 나오며 테이크아웃 커피를 챙겨 왔는데, 마셔보니 콜드브루였다. 나도 꼭 돈 많은 중년이 되기로 결심했다. 귤 따기 체험을 운영하는 카페가 많았지만 제대로 된 체험을 하고 싶다고 주장하며 2000평 귤 농장을 예약했다. 도합 3kg을 딸 수 있었는데, 그게 얼만큼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가고 싶었지만 제주도의 버스는 시간표가 무색하게 제 멋대로 왔다. 택시를 타고 언덕을 올라갔더니 넓은 농장이 있었다. 귤은 생각보다 금방 땄다. .. 2023. 11. 17.
2023.11.10. 제주 둘째날 시에나 리조트에서 조식을 먹었다. 사람이 몰릴까봐 8시가 되기 전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멋쩍게 앉아서 음식을 퍼왔는데 글쎄, 이제까지 먹어봤던 호텔 조식 중 가장 훌륭했다. 전부 먹어 치우고 싶었지만 위 용량에 한계가 있었다. 극진한 대접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남자친구와 음식의 퀄리티에 연신 감탄했다. 송악산 둘레길을 걸으러 갔다. 산책로 계단 너머로 반짝이는 바다가 있었다. 바다 앞이어서인지 바람이 무지막지 불었다. 이 예쁜 곳을 함께 왔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바다는 파랗고 햇빛은 좋고, 바람이 떠밀어주는 듯 걸으면서도 신이 났다. 이런 둘레길을 찾아낸 스스로에게 감탄하고 있는데,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너는 급하게 회사 일을 해야 했다. 숙소에 맡겨둔 노트북이 필요하단다. 둘레길의 한.. 2023. 11. 16.
2023.11.9. 제주 첫째날 공항에서 10시 1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네가 한 시간이나 일찍 왔다.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머리까지 잘 손질한 너는 여행이 기대되어 잠을 설쳤다고 했다. 나도 약속 시간보다 일찍 와서 같이 아침이라도 먹을 줄 알았는데, 눈치 없는 나는 시간을 잘도 맞춰 가버렸지. 여행에 설렌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 시간이 나만 기대되는 건 아니구나. 착륙하는데 떨린다며 서로 손을 꽉 잡았다. 택시를 타고 미리 찾아둔 음식점 ‘취향의 섬’에 갔다. 제주도는 노란 귤이 한껏 열리는 시기였고, 남원읍은 더 그랬다. 취향의 섬은 손수 시공한 인테리어가 정말 멋진 곳이었다. 고사리 파스타와 흑임자리조또, 옥감자춘권을 흡입했다. 만족스러운 점심이었다. 너와 올레길을 조금 걸었다. 제주는 무려 20도여서 기.. 2023. 11. 14.
2023.11.6. 쫄딱 젖으면 개운하게 씻으면 돼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종종 우울했고, 몸이 붇는 걸 느꼈고, 무기력증이 온몸을 휘감았다. 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저녁이 허다했다. 그 와중에 내 답보상태를 정리하는 글을 써보기도 했다. 우중충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하면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운동을 해야 해. 피곤한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고 나를 방치하면 몸이 나빠지고 기분이 점점 가라앉는 법이다. 알면서도 몸이 무거워서, 머리가 지끈거려서, 귀찮아서 미뤘다. 먹기 위해 입은 쉴 새 없이 놀렸지만. 몸도 마음도 팅팅 불었다. 지난주 금요일, 괴로웠던 업무의 한 단락이 끝나고 마무리 작업이 시작되었다. 별 일 없이 지나가기를 기원했지만 일이 뭐 내 마음대로 되나.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버렸다. 서.. 2023. 11. 6.
2023.11.6. 10월 중 홀로 경기도 왕복 운전 성공을 기념하며 나이를 먹다가 갑자기 한 살 후진을 해서일까, 요즘 기분 상태가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내가 몇 살인지도 계산이 어렵고 서른 이후로 마냥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이 갑자기 치밀 때가 있다. 나를 달래며 지난 3년 간 답보상태인 것과 성취한 것의 목록을 적어본다. 답보 목록 1. 몸무게: 몇 년째 제자리걸음. 올해 좀 결실을 보나 했는데 코로나+발목 접질림으로 몇 달간 쌓아 올린 루틴과 몸을 싹 잃었다. 진심으로 한심하다. 2. 업무: 편해서 좋았지만 해낸 것은 없었던 지난 부서의 생활이 2년. 좋지 않은 모양새로 지금 부서에 넘어온 것도 패배자의 뒷모습. 업무적으로 2020년의 나와 2023년의 내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조금 더 노련해졌을까. 덜 당황할까. 스스로 .. 2023. 11. 6.
[월간 백만] 2023년 9-10월의 백만 유난히 먹을 것을 기록하고 싶은 달.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그런가? 말은 모르겠지만 백만은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있다. 그렇다고 겨울에 빠지지는 않을 텐데. 먹는 재미로 보내는 가을을 공유한다. 이 달의 콘텐츠: 수수자매 자매가 뽀짝뽀짝 티키타카 하는 모습이 우리 같다며 언니가 추천해 준 유튜브 채널. 자매가 작은 카페를 오픈한 시점부터 점점 번창해 샌드위치 대량 주문 맛집으로 떠오른 지금까지를 살펴볼 수 있다. 업로드된 영상을 전부 다 보았는데, 가게가 너무 번창해서 영상을 제작할 시간이 없는지 새 영상이 올라오지 못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열심히 일하는 소상공인 유튜브 채널 중 마음에 맞는 곳을 발견하면 오랫동안 보게 된다. 멋지게 사는 모습에 절로 응원을 날리는 마음. https://youtu.be.. 2023. 10. 25.
2023.10.23. 시간을 보내는지 시간이 알아서 가는지 한 달쯤 일기를 쓰지 않았다. 이만큼 블로그를 모른 척해본 것도 오래간만이네. 구구절절 이유를 갖다 붙이는 일은 그만두고, 그냥 아무 일 없었던듯 하던대로 기록을 해본다. 1.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위해 경기도로 자주 출장을 간다. 서울역에서 1시간쯤 기차를 타고 또 택시를 탄다. 일해주는 업체와 마음이 전혀 맞지 않아 스트레스가 넘쳐흐른다. 이럴 땐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게 큰 위안이 된다. 몇 년을 보아야 할 옆 자리 동료가 아니라 몇 주만 보고 끝날 단기 파트너니까. 해방의 날에는 참으로 행복하겠지. 일을 대단히 잘 해서 성공할 수도 있지만 해내야 할 일의 난이도가 높지 않다면 결국 사업은 사람에 달렸구나 싶다. 다음도 없고 확장도 없는 상황을 굳이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마음고생은 하지만 배울.. 2023. 10. 23.
2023.9.21. 오래간만에 말이 많아지는 건 1.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어제 딱 하루 개인 운동을 나갔기에 시작했다고 선언하기 머쓱하긴 한데. 코로나와 발목 부상으로 운동을 멀리한 지 어언 3주. 빠진 살이 돌아오다 못해 더 붙는 걸 반지로 느낄 수 있게 되었더랬다. 어깨가 말리고 자세가 나빠졌고, 체력이 약해져서 저녁이 점점 피로해졌다. 운동을 하지 않는 기간 동안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흘러갔던 시간이 가치 없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통근 시간에는 재미있는 영상을 들으며 귀여운 숨은 그림 찾기를 했다. 평온하고 아기자기해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매일 평화로울 수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건 후에 돌아보면 그때만큼 좋은 시간이 없단 뜻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반지가 더 이상 작아지게 만들 순 없어서 꾸역꾸.. 2023. 9. 21.
2023.9.13. 별 일 없고 그래서 편하고 편해도 되나 싶지 1. 타인의 부고를 쓰는 것 혹은 읽는 것은, ‘애도’라는 여비를 지불하고 한 인간의 인생 터널을 관람하는 ‘가성비 높은’ 체험이다. 수많은 죽음을 접한 그가 살아있는 이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당신의 부고는 당신이 직접 쓰라’다. -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죽기 전 최고의 글쓰기… 더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WSJ 부고 기자의 조언 中 어쩌다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나이가 적건 많건 누구나 언제든 죽을 수 있으니 유언을 미리 써두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마음으로는 동의했지만 선뜻 당장 쓰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는데, 대화 이후로 가끔 무슨 유언을 남겨야 할지 생각하곤 한다. 유언이건 부고건, 무언가 남긴다면 아래의 내용을 담고 싶다. 따뜻하고 편안한 사람이 되.. 2023. 9. 13.
[월간 백만] 2023년 8월의 백만 이 달의 영화: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유튜브의 다양한 예습 영상을 보고 영화를 보러 갔다. 보았던 예습 영상 중에는 알쓸별잡과 유니버설 픽쳐스 영상이 마음에 들었다(어차피 김상욱 교수님이 사과를 가지고 하는 설명은 같다). 물리학을 모르더라도 예습을 조금만 하고 가면 훨씬 재미있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 감독도 연기자들도, 그리고 실존 인물들도 다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영화다. 나는 극한의 압박감이 싫어서 남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나의 직업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인류를 무시무시한 시대로 진입하게 한 내용이이다. 덧붙여 이동진 평론가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책으로 미리 정리한 영상이나 오펜하이머 영화를 물리가 아닌 영화적 관점에서 리뷰한 영상도 재미있다. 이 달의.. 2023. 9. 12.
2023.9.7. 진짜 소소하고 짧게 써야지 1. 코로나에 재감염됐다. 격리 권고 5일의 막차를 타서 며칠을 집에서 쉬었다. 재감염은 좀 우습게 보았는데 기침과 가래에 고통받았더니 가슴팍이 아려 온몸에 힘이 없었다. 콧물이 주르륵 흘러 막 쏟아지는 건 또 어떻고? 하지만 목이 심하게 아파 미치게 괴로웠던 작년에 비하면 낫기는 했다. 언니의 입원으로 엄마가 없어 응석을 부릴 곳이 없었다. 약때문에 뭐라도 먹어야 하는데 아빠는 아빠의 식사를 스스로 해결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상황. 귀찮아서 대충 고른 고칼로리 음식들과 열이 나서 땡기는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도 옷이 헐렁해져서 놀랐다. 코로나가 감염이건 백신이건 독감처럼 1년 정도 주기로 몸에 돌아온다는데, 내년에도 이렇게 아플 생각을 하면 눈앞이 아득하다. 1주일 만에 다 낫지도 못했다고요! 2. .. 2023.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