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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 이경훈

by 푸휴푸퓨 2015.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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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도시에서 평생을 살아온 난 영국 중소도시에서의 1년이 참으로 힘들었다. 영국에 있는 게 싫었어? 하면 할 말이 없는데 작은 도시는... 머리 아프고 복잡한 서울이 싫어 달려간 곳이었는데 대도시에서 살아야겠다는 취향만 깨달았지 뭐. 그래도 서울에서 있었던 편두통, 어지럼증이 사라져 좋았는데 귀국 후 어지럼증이 슬금슬금 돌아온다. 이럴 거니!?

 

  무심코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서울에 돌아와 이유는 모르겠지만 못마땅했던 부분을 꼬집어 주었다. 저자는 서울과 대비되는 좋은 도시의 예로 뉴욕 맨해튼을 든다. 맨해튼이 완벽한 곳은 아니지만 저자가 지적한 부분, 특히 걷고 싶은 거리는 크게 동의한다. 맨해튼을 다니면서 앞으로 많이 걸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영국에서는 그 다짐에 맞게 열심히 걸어 다녔다. 이차선 도로 옆을 걷노라면 흐린 날에는 흐린 날대로 이게 영국 분위기지~ 하며서 신났고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서울에서는 요즘 이런 파란 하늘 보기 힘들지~ 하며 영국에 오기를 잘했다고 되짚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고 한 달, 지금 나는 거의 걷지 않는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에서 합정역까지 걸어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곤 했는데 학교에 가지 않으니 그마저도 안된다. 사색에 잠기거나 구경할 만한 환경이 걷는 데 굉장히 중요한데 우리 집 근처는... 슬프게도 8차선 도로가 있는, 예쁜 가게라고는 없는 삭막한 서울의 한 부분이다. 저자가 가열차게 지적한 방음벽도 있고 이래저래 재밌게 걸을 곳은 못돼. 나도 정말로 인도에 주차한 차와 불쑥 나타나는 오토바이를 싫어한다. 저자가 마구 지적해줘서 좋았다. 내 말이!!

 

  이웃들과 교류가 없는 것도, 그렇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그렇다. 우리 집은 나름 앞집이랑 인사는 하고 지내고 동네에 중학교 동창이 살기도 하지만 그래도 커뮤니티는 아니다. 외국 친구에게 아파트 '단지' 개념을 설명하는 게 참 힘들었다. 나는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았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이웃과 마주치거나 정원에 앉아 있는 주민과 눈인사를 하는 경험을 했다. 처음엔 쑥스러웠는데 나중엔 참 좋더라. 인사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나는 서울에 가족이 있지만 만약 서울에 자취를 하러 올라왔더라면 상당히 외로웠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취하는 친구의 외로움을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부동산에 돈을 투자하는 시대는 지났고 전세는 없고 어쩌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집' 하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소심하게 생각한다. 투자의 목적이 아니라 그냥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하지만 나는 패배한 20대니까 평생을 바쳐도 내 집 마련은 힘들겠지). 그런데 그렇게 마련할 집이 똑같이 생긴 콘크리트 건물에 층층이 쌓인 집 가운데 하나,라고 하면 그 집이 과연 내 집인지 안정을 얻을 수는 있는지 그만한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집을 소중하게 생각하기에 집은 곧 나인데, 이렇게 아무 곳에서도 나를 드러낼 수 없는 박스가 나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삭막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나는 이런 감정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냥, 뉴욕에서는 걸어 다녀도 재밌었는데 여기서는 재미가 없다던가, 자려고 누우면 맞은편 아파트 전등의 점등 여부에 따라 내 방에 온통 빛이 번져 이 아파트 단지는 뭐 이렇게 커서 누가 다 살고 있나 불만이 불쑥 나온다던가 했다. 그래서 그냥 잘 모르고 있었는데 저자가 꼬집어 주었다. 읽고 나서 아차 했다.

 

  개인적으로 삶 주변에 자연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터라(유럽의 공원 문화가 얼마나 부러운지) 자연 친화적인 뭐를 하겠다, 공원을 조성하겠다 하면 대개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시는 이미 인위적인 공간이라 인위적 자연을 끌어와 봐야 진짜 도시가 되지도 못할뿐더러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저자의 주장은 예리하다고 생각한다. 반포의 래미안과 자이를 보면서 느꼈던 묘한 위화감도 설명이 된다. 신기하다.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가 쉽게 풀어쓴 얘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지. 오늘도 좀 배운 것 같다. 잘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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