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떨 때에는 무뎌지는 내가 싫다. 분명히 몇 년 전이었다면 정말 좋아했을 일, 떨려 했을 일, 간절히 하고 싶었던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지겹다, 혹은 이제까지의 경험과 비슷할 거라며 대충 넘기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장거리 비행기를 탔던 순간 이륙할 때의 두근거리는 마음은 이제 다 어디로 갔나 싶은거다. 나는 그런 순수성을 가지고 싶은데, 이제 그런 극심한 두근거림은 점점 덜 느끼는 것 같아서.
하지만 그런 상념은 잠시이고, 자꾸 무뎌지려고 한다. 그게 더 좋다. 감정 기복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 확실히 너무 힘들다. 내 감정 기복인데 내가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고, 따라가다보면 지치고 그렇다. 바쁘다고 동동거리는 게 별로라고 쓴 얼마 전의 내 포스팅을 읽는다. 지금은 할 일이 계속 있고 바쁜 이 상황은 그냥 적응해서 아무 기분도 안난다.
정말 간절히 바라던 일을 위한 면접에서 떨어질 것이란 확신이 들었던 순간에 나는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왜 하필 그 면접을 가장 먼저 봤는지, 마음에 에어백이라도 하나 장착하게 하느님은 그냥 그럭저럭한 면접 하나 넣어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무나 간절히 원했지만 뭘 준비해야 하는지, 면접은 어떻게 하는 건지 도대체 하나도 모르던 나는 어버버 하다가 멍청이같이 굴고는 시간을 끝냈다. 착한 면접관을 만나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우울에 푹 빠졌다.
간신히 일기장에 '아 이제는 좀 괜찮은 것 같다. 계속 잘 살거야'따위의 말을 적자마자 다음날에 면접에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밤 10시가 넘어서 불렀는데 무려 다음 날 바로 오라고 했다. 물론, 부르시면 가야죠. 제대로 된 면접 복장이 없어서 동동거리고, 관련 서류를 뽑고 신청하느라 허둥거리다가, 아침에 동동거리며 동사무소에 갔다가 구두를 사러 갔다가.... 동분서주 하는 와중에 수업은 들어야 했고, 어쨌든 결국 면접을 봤다. 면접을 봤어.
한 명당 자기 소개 한 번, 질문 하나로 끝이 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첫 질문 이후로 연계가 계속 되어서 질문이 이어져야 하는데 나는 그게 없어서 질문 하나로 끝나게 된 거다. 동동거린 시간이 허무하게, 나는 또 바보같이 할 말이 없었다. 가진게 난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근데, 근데... 첫 면접만큼 마음이 아프지는 않다. 그냥 무디고, 세상 뭐 별거 있나- 그냥 등따시고 배부르고 잠 잘 자고 사는 거지 뭐, 라고 이제 괜찮다는 말을 할 때 했던 말 그대로다. 그냥 뭐 그런거지 뭐. 이따 집에가서 저녁먹고 책도 좀 읽고 그러다가 자는 거다. 이게 훨씬 좋구나. 아프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네. 그래서 다시 한 번 무뎌지는게 좋다는 생각을 했다. 덤덤하게, 그렇게 해야겠다.
조모임 준비도 안했고, 해오자고 약속한 글도 안 올렸다. 그냥 아무 생각이 안나는 게 이 덤덤해짐의 단점인가. 이건 덤덤한 게 아니라 무기력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 모르겠다. 블로그에 쓴 글들은 항상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부끄럽다. 아마 이 글은 다른 글보다 훨씬 빨리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냥,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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