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냐, 이제는 필요 없어."
사실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권하는 것을 거절한 것은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때 딱 한 번뿐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 실격의 순진한 요조를 보노라면 묘한 공감과 짜증이 동시에 일어난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에 항상 예민하게 반응하는 요조는 보통은 무던하게 넘어갈 일도 그저 넘기지 못한다. 그 와중에 거절도 못하고 다정하기도 해서 여자를 한없이 끌어당기고 있다. 하얀 백지가 잘 어울리는 요조는 사실 세상에 상처입은 순수한 영혼 그 자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오는 물음으로 읽어야 한다. 당신의 내면에는 숨겨진 요조가 없느냐고. 솔직히 이건 네 모습이지 않느냐고.
나는 인간 실격을 쓴 작가의 의중을 헤아리는 것이 어렵다. 요조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어쩐지 작가가 본인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결국 이해받지 못한 미치광이로 삶을 마무리한 요조를, 그렇다면 작가는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 걸까? 이야기를 그대로 믿노라면 정말로 순진한 작가가 삶의 마지막 모서리인 듯한 정신 병원에서 가장 내밀한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고 그것이 미치광이라 치부될 것을 미리 예측해 낸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신 병원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순진한 내면 세계를 꾸며내 자신의 무책임한 삶을 방어한 것만 같다는 생각이 치밀어 오르는 것 또한 막을 수 없다. 그를 나는 동정하고 싶지만 또한 화도 내고 싶다. 넌 뭐하는 놈이야, 하고.
아이들은 순수하기에 사랑받는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순수와 진심이 아닌 교환 가치에 기반한다는 것을 깨우쳐가는 과정과 같다. 어른에게 순수는 불필요한 가치인데, 여전히 순수함을 간직한 요조는 한없이 유아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그의 유아스러움은 그가 어른의 삶을 견디지 못하게 만든다. 제대로 된 삶을 마추칠 용기가 없던 그의 인생은 결국 미치광이의 형태로 끝나버렸다.
그리하여 그다음 날도 같은 일을 반복하고,
어제와 다르지 않은 관례를 따르면 되지.
거세고 크나큰 기쁨을 피하기만 한다면,
자연히 크나큰 슬픔도 찾아오지 않는다.
앞길을 가로막는 거추장스러운 돌을
두꺼비는 돌아서 지나간다.
돌을 만나면 치우기보단 우회하는 길을 택하는 두꺼비처럼, 요조는 기쁨도 슬픔도 직면하지 못하는 사내다. 이렇게 "인간의 삶"을 회피하는 한 인간의 일생이 오랫동안 공감받는 것은 누구나 마음 속에 순진무구하고 회피적인 자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테다. 세상에 적응하는 것은 힘이 든다. 자신의 내면에서 힘들다 발버둥치는 어린아이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위안을 준다. 나만 아이를 간직한 것은 아니구나. 누군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이로 살아갔구나, 하는 것이다.
이렇게나 우울하고 실패한 삶이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는 사실은 결국 그 안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조에게 인간으로써 실격이라 말하는 이들에게 나는 그래서 다시 한 번 묻는다. 당신 안에는 요조가 정말 없는가. 당신에게 '인간'은 세상에 적응한 어른이란 껍데기인가. 사실 진짜 인간은 솔직하고 순수한 당신 속 그 아이가 아닌가. 그렇다면 진정한 인간은, 요조 한 명 뿐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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