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 동기들을 바라보며 이제 모든 인생이 결정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사무실에 오니 더 확실해 졌지. 난 3년쯤 버티면 대리가 될거고, 그땐 옆칸은 못 가겠네. 다시 5년쯤 버티거나 운 나쁘면 8년쯤 버텨서 과장이 되겠지. 그럼 옆으로 한 칸. 거기서 끝날지도 모르지만 여간하면 시험을 치고 한 칸 더 옆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정치를 열심히 하면 제일 끝 창문가로 갈지도 몰라. 몇 년에 한 번씩 옆칸으로 옮기는 인생이구나. 더럽게 재미없네.
1년 반이 지나고 이직을 하고나서 문득 나와 동기들을 되돌아봤다. 각양각색이었다. 꿈을 찾아 이직한 나, 그냥 이직한 언니, 이직 안하고 지사만 옮긴 언니,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과로에 괴로워하는 오빠, 바꾸지 않고 그대로만 있으면 승진은 1순위일 언니. 같은 회사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인생은 천차만별이었다. 모두가 같아 보이게 만드는 몰개성한 회사에서도 자세히 보면 판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퇴사했다. 그리고 새 직장에 함께 입사한 동기가 10명. 이번에는 같은 삶을 살리라 속단하지 않았다. 각자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리라 믿었다.
그래서 어떻게 살면 좋을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회사 안에서는 무엇을 중요시 하며 지낼까, 퇴근 후에는 무슨 일을 할까, 스스로 어떤 공부를 할까, 괜찮은 여가활동은 뭐가 있을까. 디테일을 생각하자면 끝이 없었지만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게 중요했다. 작은 태도를 바꾸면 사소한 결정이 바뀌고 그 결정이 쌓여서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이 달라지더라. 그렇다면 무엇이건 바꾸리란 조바심에 매일매일 일정을 채웠다. 어휴, 솔직히 하루도 집에 일찍 가지 못하는 일상은 내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었다. 몇 달만에 완전히 방전되어서 모든 약속을 끊고 집에만 있으려 했더니 그건 그것대로 좀이 쑤셨다. 결국 나는 때로는 새로운 시도가 중요하다고 날뛰었고 때로는 고요한 안정을 위해 명상을 시도했다. 오래 널뛰던 끝에 결국 균형을 찾았는데, 그러고 나니 큰 고비를 넘긴 사람이 그렇듯 평화로워졌다.
1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이렇게 되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그저 해보고 싶어서, 혹은 해야할 것 같아서 한 일들이 모여 그때와는 또 다른 내가 되었다. 그리고 난 그게 마음에 든다. 이제 좀 나다운 게 무언지 알게 되었다는 기분이다. 내가 편안하니 주변 사람들도 편안하다(혹은 내가 편안해서 편안한 사람과 더 잘 만나지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차분하고 행복하다.
채널 예스의 몇몇 칼럼을 읽다가 마음에 들어오는 칼럼을 만났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대한 글. 필자와 친구는 이제 나이가 들었고 각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리지 않다고, 시간을 보내는 법을 익힐 때가 되었다고. 무릎을 쳤다. 나도 요 1년 간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구나. 맞아. 난 이제 젊기는 하지만 어리지 않다. 내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은 지 이제는 좀 알지. 나는 극단적으로 쉬고 싶다가도 좀이 쑤셔서 막 뭔가 공부하고 싶어해. 그 양극단을 다 사랑해서 둘 중에 하나만 내 모습인 줄 알았던 때도 있었어. 하지만 이제 균형이 필요하단 걸, 둘 다 소중하단 걸 알지! 시간이 충만한 만큼 내 삶도 소중해졌다. 흔적 없이 세상에서 스르르 사라졌으면 좋겠던, 아침에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랐던 때가 정말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살아있어서 행복하다. 충만한 시간에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보내는 방법(박주연):: http://ch.yes24.com/Article/View/39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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