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늘 무난하고 평범하기를 바랐다. 주목받는 짜릿함이 좋을 때도 있었지만 이젠 잔잔한 사람의 자유로움이 좋다.
살다 보니 점점 나만의 취향과 생활 태도, 가치관이 생겨난다. 취향이 단단한 사람이 멋있다. 탐험하는 시간을 지나 약간의 취향이 생겼다. 별 건 아니다. 일회용으로 소모되는 종이컵 홀더가 아까워 홀더를 쓰지 않다가 결국 코바느질로 컵홀더를 만들었다. 뜨개질을 잘 하지 못해서 투박하다. 어쩌다 코에 빨대가 박힌 거북이 사진을 보고는 스테인리스 빨대를 구입했다. 거창하게 환경을 사랑하자는 건 아니고 그냥 거북이를 생각하면 빨대를 쓰고 싶지 않다. 그렇게 카페에 가면 두 가지 물건을 주섬주섬 꺼내는 사람이 되었다.
집에 비누가 많고 바디워시의 거품이 마음에 걸려 몸을 비누로 씻기 시작했다(아직 샴푸는 포기할 수가 없어... 샴푸바를 사용해보고 싶다!). 처음엔 몸이 바짝 말라 괴로웠는데 로션도 바르고 적응도 하니 이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가방은 무조건 에코백만 멘다.. 책 짊어지기도 힘든데 가방 재질까지 무거우면 난 나동그라질 거야. 운동복도 챙기다 보니 어느 날부터 양 어깨에 에코백을 하나씩 이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디자인만 마음에 들면 어디에서 받았다는 글자가 쓰여 있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누가 왜 가방을 두 개씩 들고 다니느냐고 물어봤다. 그냥, 어깨 한 쪽에 매기는 무겁잖아. 신발은 이미 푹신한 운동화나 워킹화만 신은 지 오래.
어제는 (또 무거운 가방을 어떻게 가볍게 할지 고민하다가) 지갑 대신 작은 카드 모양 주머니를 쓰기로 했다. 어차피 현금은 쓰지 않는데 지갑은 너무 무겁다. 고민하다 거실 찬장에서 주머니를 발견하고 옳거니, 했다.
카드를 옮기다 문득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하던 사무실의 언니들이 생각났다. 가방까지는 아니어도 지갑만은 명품을 들고 다니던 직장인 언니들. 모두가 명품 지갑을 들 때 혼자 이런 주머니를 써도 괜찮은 걸까. 비단 지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카페에서 다회용품을 꺼내고 어느 도서관 이름이 박힌 에코백을 지고 다니거나 비누로 씻는다는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내가 관종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점점 많은 것들을 실용적이란 이유로 바꾸는데, 내 마음을 따르는 일이긴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고집스러워 보일지도 몰라. 우물에 갇혀 주변이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 아닐지. 적정한 정도의 품위 유지 선을 넘어가고 있는 건지 고민하게 된다.
사소하고 작은 나의 행동이 긍정적 튐인지 편협한 아집의 시작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적당과 독특 사이에서 자주 갈등하는 요즘, 앞으로의 내가 무엇은 바꾸고 무엇은 평범하게 남겨두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다. 남에게 피해만 안 주고 강요하지 않으면 그만이려나. 취향과 가치관을 확고히 하고 싶지만 둥글고 열린 사람이었으면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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