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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19.10.21. Come back to my seat:D

by 푸휴푸퓨 2019.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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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입네 출장입네 돌고 돌아 드디어 내 자리로 돌아왔다. 앞으로 몇 달은 돌아다닐 일이 없을테지. 그토록 지겨워서 몸부림쳤던 공간이건만 지치고 피로하니 얼마나 생각났는지 모른다. 자리에 앉아있으면 따뜻한데! 자리에 앉아있었으면 순식간에 찾았을 정보인데! 하지만 돌아온 반가움도 한나절이오 벌써 또 몸이 꼬인다. 너무 꼬이기 전에 빨리 자리를 떠나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리해 둬야지.

 

1. 엄마는 좋은 여행 메이트다. 누구에게나 좋은 메이트는 아닐테고 어느 여행지에서나 좋은 메이트도 아닐테다. 하지만 국내 트레킹하기 좋은 여행지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싶은 딸에게는 만점짜리 메이트다. 등산을 할 체력은 못되어서 몇 개의 걷기 좋은 길 코스를 걸었는데 날씨도 좋고 기분도 환상이었다. 식성도 비슷하니 먹을 거리 선정도 쉬웠고, 취향도 비슷해서 같은 공간에서 같은 탄성을 내질렀다. 제주도도 함께 걸었으면 하는데 서울에 남아있을 아빠가 좀 안타깝긴 하다. 적당히 기간을 잘 두어야겠지. 내년 봄쯤으로 할까!

  아빠가 안타깝다면 아빠도 함께 가면 되는데 굳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건 아빠가 싫어서는 아니다. 아빠는 엄마나 나와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아빠는 유적지를 살펴보는 여행, 힘들어도 참고 계획한 코스를 모두 돌파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 계획한 코스라는게 나에게 동의를 얻고 짠 게 아니거든. 아빠와 다니면 힘이 들고 쉬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데, 아빠의 열정에 마음이 쓰여 억지로 참게 된다. 결국 저녁이면 뻗어 눕는다. 풀을 살펴보며 웃다가 시장에 가서 가게 구경을 할 틈이 있을 리 없지.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아빠와 가는 여행은 훈련이라 불린다.

  그런 아빠를 참아내고 딸들을 다독여가며 엄마는 여행을 해왔다. 이번 여행에서도 엄마가 많이 참고 다닌 건 설마 아니겠지. 이번 여행은 최선을 다했는데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그녀도 그랬기를 바란다.

 

2. 경주 황리단길은 *리단길이란 이름이 붙은 길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이태원 경리단길은 물론이고 객리단길, 해리단길을 다 가보았는데 황리단길이랑 비할 바가 못된다. 황리단길이 이렇게 예쁜 건 기존의 단층 건물들을 잘 살려 만든 거리이기 때문인 듯 한데, 아마 대릉원 주변이라 고도 높이 제한이 있던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따로 제한이 없다면 더욱 대단하다!).

  예전 한옥 구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카페에 앉아 맛있는 크림라떼를 먹으며 젊은 사장님이 길고양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마냥 애를 쓰는 모습을 지켜보는건 정말이지 즐거운 일이었다. 잔잔한 조명이 깔린 저녁에 황리단길 뒷길을 걷노라니 가게 주인들이 전부 대단하다는 마음만 들더라고. 이 기조를 잘 유지하리라 믿지만 그럼에도 난개발이 더 이루어지기 전에 한 번 쯤 더 들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땐 자전거도 타고 싶어!

 

 

3. 여행으로 한 번, 출장으로 한 번 합이 두 번으로 부산을 다녀왔다. 익숙한 동네만 다녀서 그런지는 몰라도 새 사람과 함께한 익숙한 공간으로의 여행이었다. 남자친구와의 첫 여행에서 그와 있으면 얼마나 편안한 지 확인했다. 정말로 행복한 시간이었어. 이리저리 관광지를 들르며 평생을 방문한 부산에 이렇게 볼 거리(라고 쓰고 먹을 거리라고 읽는다)가 많았는지 새삼 놀랐다. 매번 제사 음식만 먹느라 바빴지 뭐야.

  커다란 규모에 감탄은 했지만 딱히 들어갈 일은 없었던 벡스코에서 도서관 행사가 열렸다. 도서관 업계 인사들이 모이는 행사를 처음 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행사는 처음이었는데, 들을만 한 내용도 있었고 지루한 내용도 있었다. 언젠가 혹여나 발표를 해야 한다면 누군가의 시간을 낭비하는 내용을 말하지 않게 되기만을 바랄뿐. 회사 동기들과의 시간은 잔잔했고 어르신들은 딱히 말을 걸지 않았기에 심적으로 피곤한 출장은 전혀 아니었다.

  부산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자연히 당신 생각이 났다. 부산에 가면서 기장 생각을 안할 순 없잖아. 당신을 생각하는 일도 점점 옅어지겠거니 생각하며 먼 바다를 바라보는데 바다를 바라보며 당신 생각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바다도 회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던 걸 뻔히 아는데. 집에 돌아와 핸드폰 갤러리 정리를 하다가 오래 전 당신의 팔순 때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늘 입던 한복을 차려 입고 앉아 박수를 치고 촛불을 끄는 당신의 모습. 나는 아직도 어딘가에 당신이 있어 찾아가기만 하면 반갑게 맞아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당신의 집이 이제는 더이상 그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떠나는 그 순간에 외롭지 않았기를, 내가 당신의 목소리와 손의 감촉을 잊지 않기를, 제발. 

 

4. 너무 잦은 여행은 피로하다. KTX를 타고 책을 읽으며 떠나는 도시 여자(?) 컨셉도 한 번이면 족할 뿐 반복되니 머리가 아팠다. 신라스테이에서 묵어보기는 처음이었는데 그 좋은 시설과 조식도 잠시 감탄할 뿐 덜 세련되어도 아늑하기는 만점인 내 침대가 너무 그리웠다. 생리 양이 너무 많아 차마 바다 구경가기가 힘들단 말을 못해 산책만 2만보를 넘게 했다. 온 입 안이 다 헐었지. 

  일상을 그리워하고, 돌아온 일상이 소중하다고 안심하는 건 평소에 일상을 잘 가꿨단 뜻이겠다. 이제 다시 밀가루 섭취를 멈추고 산뜻하게 운동하려 한다. 부산의 빵집들이 참 마음에 들기는 했는데(메트르아티정, 빠리당, OPS, 비앤씨!) 빵집이 좋다고 계속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아. 이 복잡한 도시의 내 작은 자리에 다시 돌아와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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