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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 김나연

by 푸휴푸퓨 2019.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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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적인 여성입니다. 제목에 섹스가 들어간 책을 고르긴 쉽지 않죠. 제목도 그렇고 섹스 후에 우울하지도 않아서(?) 책을 발견하고도 읽지 않았다. 그러다 읽게 된 이유는 관심 있게 보는 책방 인스타에서 글쎄, 거기서 태동한 책이라는 거야. 오키로북스 감성이면 또 읽긴 읽어봐야지! 책장을 열었더니 눈길을 끄는 제목은 저자나 편집자가 쓴 말은 아니고 그리스 철학자 갈레노스의 말이라고 날개에 적혀 있다. , 그렇게 오랜 시간을 관통하는 말이란 말인가.

 

 

  첫 번째 장을 읽으며 엄청나게 감탄했다.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글이었고, 가볍지 않은 내용을 깔쌈하게 담은 글이었다. 추상적인 말 말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쓰라던 은유 작가의 말을 이 책을 읽으며 완벽하게 이해했다. 이렇게 솔직해도 괜찮을까 싶게 작가가 털어놓은 가족 이야기는 마음을 쾅쾅 울렸다. 그렇다고 그렇고 그런 감동적 문체도 아니고, 말 그대로 스타일리시(Stylish.. 이 단어 글자로 적어두니까 참 멋없구나)했다.

 

  가족 이야기가 끝나고 두 번째 장을 딱 열었는데 세상에. 내 이상형을 왜 작가가 여기다가 적어뒀지? 침대에서 독서와 섹스를 함께할 수 있는 남자를 찾습니다. 이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얼마나 드문데 경쟁자라니! 경쟁자라니! 연애 이야기도 작가 특유의 정서가 묻어나와 제목을 정말 잘 뽑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연애로 넘어오면서 이야기의 템포가 짧아졌고, 이에 인스타그램의 향기가 묻어나오는 기분이 들어 앞 장보다는 흥미가 덜했다(실제로 서문에서 인스타그램에서 발췌했다고 밝혔기도 했고). 그래서 1장까지는 오점 만점에 육점을 주고 싶었는데, 2장은 그냥 그랬다. 3장은 다시 좋았다.

 

  요즘 멋있는 여성 작가를 유난히 많이 발견한다. 한때 남성 작가의 책만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도) 계속 읽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여자인가. 이 작가는 참 멋지고 나랑은 다르게 산다. 나이는 분명 작가가 많은데, 난 옛날 사람이고 작가는 요즘 사람인 기분이다. 책을 내고 앞으로 걸어가는 작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는 연애만 하면 살이 쪘다. 만나면 하는 일이라곤 먹고 마시는 것뿐이었다. 지루했다. 물론 영화도 보고 전시도 갔다. 그래도 종국엔 우리 그래서 이따 뭐 먹지? 였다. 혼자 있을 땐 식사를 잊을 만큼 흥미로운 일을 더 많이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둘이 되면 먹고 싶지 않을 때에도 먹어야 하는 일이 잦았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같이 있을 동안 무료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자꾸 뭘 먹자고 했다. (151)

 

  솔직히 나는 내가 왜 사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 주제에 또 뭘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사는지도 모르겠다. 눈이 떠지니 일어나고 졸리니 잘 뿐이다. 그 중간, 빈 시간에는 심심하고 외로워서 뭘 한다. 눈 뜨고 있으면 줄곧 외로워서, 외로운 걸 잊으려고 더 한다. 대부분의 시간에는 이런걸 했더니 덜 외롭더라, 더 외로웠던 순간이 떠오르더라,” 외로움을 잊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간들에 대해 적는다.
  그렇게 보면 인생은 지도를 따라 그대로 달리는 마라톤이라기 보단 내가 달려온 길을 거꾸로 바라보며 기록하는 과정 같다. 나보다 뒤에 시작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걸었더니 여기까지 와서 이런 걸 보게 되더라, 하고 기록을 남겨주면 나는 그걸로 내 몫을 다, 잘했다고 본다.(193)

 

  이 나이 먹고 인생에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사연부심, 불행부심을 부려선 안 돼. 내가 세상 제일 불행했고 내가 세상 최고 자수성가, 개과천선 인생이라고 재는 건 바보같은 짓이야. 사연은 그런 게 바보같다는 걸 배우라고 있는 거야.(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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