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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 제스 베이커

by 푸휴푸퓨 2020.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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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에 작성한 블로그 글을 가끔 둘러본다. 지금도 유려한 문장가는 아니지만 몇 년 전 문장을 보면 참혹한 기분이 들어서 때때로 글을 수정한다. 편집 에디터가 바뀌고 수정이 편리해진 것도 한 몫 한다(티스토리 고마워요!).

 

  어제는 2012년에 쓴 ‘뚱뚱한 사람이 벗어날 수 없는 마음의 구조’라는 글을 손봤다. 정말 솔직하게 쓴 글이어서 당시의 마음이 그대로 보인다. 오래간만에 집중해 읽어보곤 마음이 아팠다. 20대 초반의 나를 지금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너를 꼭 안아 줄 거야. 네가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존재인지도 말해줘야지. 하지만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별로 기뻐하지 않을 게 뻔하다. 뭐야. 20대 후반이 되도록 난 살을 못 뺐어? 심지어 더 쪘어? 한심하다 진짜. 살 가치도 없네. 라고 반응을 생각해 본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하기까지 하는 어린 내가 안쓰러워 얼마 전 읽어두었던 책을 다시 되새겼다. 그렇게 혐오하면서도 어떻게든 이겨내려 애썼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돌아보니 나는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장하다 나.

 

 

 

 

사고방식이 바뀐 순간은 마법 같아서 설명하기 어렵다. 그 마법에 대해 아는 거라곤 마침내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보게 놔두었다는 점뿐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거울을 볼 때 '나 자신'이 보일 걸 기대하고,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 기준에서 벗어난 내 몸을 보아도 아무렇지 않다. 달라진 건 내 기대밖에 없다. 남들이 보기에 내 몸은 전과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작은 변화가 모든 걸 바꿔놓았다. 내면의 힘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는 모두 그걸 갖고 있다.

  정확하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거울을 보면 얼굴부터 찡그렸던 내가 어느새 웃으며 배를 통통 두드리고(소리가 아주 청명하다) 옷을 찾게 되었다. 나는 어느 순간 내 몸이 나임을 인정했다. ‘몸을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알게 된 건 웹툰 덕분인데, ‘낢이 사는 이야기’의 주인공 서나래 작가는 오래 전 급격히 불어난 자신의 몸을 거울 앞에 서서 찬찬히 들여다보고 몸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기억에 의존하자면 작가는 그 이후 편하게 먹어서 더 불어났다고 한 것도 같은데... 어쩐지 결과적으론 나도 불어났네? 어쨌거나 건강의 관점에서 크게 문제가 없던 몸을 미용 체중에 맞춰 세상 못난이라고 비하하던 내 마음을 처음 다잡아본 순간이다. 내가 소비하는 콘텐츠가 나도 모르는 새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주니 새삼 신기하다.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푸는 나는 취업 준비기와 지방으로 내려가 직장 생활을 하던 시기에 몸무게를 많이 불렸다. 근데 또 행복하다고 살이 빠지진 않아. 행복하다고 맛있는 음식을 잘 챙겨먹으니 그때는 또 그때대로 불었다(대단하다 나 자신!). 그래도 더 이상 몸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건강과 노화여서 어느새 무릎이 아파오고 심장이 헉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생겼다. 으악, 이렇게는 안 돼. 운동을 시작하고 식단을 조절했다. 건강한 몸매를 가지고 싶어 아주 안달이 났고 꾸준히 관리를 해서 자기계발을 잘 하는 성실한 여성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이 특별할 건 뭔가? 과거와 지금의 차이는, 건강에 대한 집착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는 것이다. 사람의 가치, 도덕성, 의미를 의료차트와 마라톤을 완주할 능력으로 평가하는 시대는 현재가 처음이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하나 있다. 여기서 우려스러운 건 개개의 행동이 아니라, 무언가에 집착한 나머지 활동에 제약을 받는 패턴이다. 자신의 가치와 존재할 권리가 건강에 달렸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은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기 쉬워진다. 

  세상에, 마라톤 뛰어보고 싶게 된 걸 대체 어떻게 아셨어요? 사실 버킷리스트에 마라톤을 적었다(풀코스는 좀 두려워서 하프 마라톤도 가능하다고 적은 유도리있는 나). 탄탄한 몸으로 우수한 지구력을 자랑하는 마라토너가 너무 멋져보였단 말이야.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자연스럽게 스스로 생각했다 여겼는데, 세상의 유행과 겹쳐진 생각이란 사실에 좀 놀랐다. 몸이나 건강뿐만 아니라 모든 생각을 할 때 내가 스스로 하는 생각인지 사회에서 주입된 생각인지 분별해보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결심했지. 물론 건강을 중요시하는 마음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만 너무 심해져 그 생각이 (날씬함을 위한 다이어트만큼이나) 날 괴롭힌다면 그때는 문제가 된다.

 

 

내 생각은 이렇다. 우리가 자라난 문화의 영향을 완전히 떨쳐버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게 꼭 바람직한 것만도 아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인지하고, 기준에서 벗어나는 선택지도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 다음 우리는 원하는 방식으로 개인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건강을 챙기고 나를 사랑하자 하면서도 쉽게 고칠 수 없었던 언어 습관이 바로 몸에 대한 겸손함이었다. 누군가 살이 좀 빠졌다거나(사실 실제로 몸무게가 줄었어도 이런 언급 자체가 썩 반갑진 않다) 운동을 잘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나도 모르게 전혀 빠지지 않았다거나 내가 못하는 지점을 강조했다. 어느 순간 다시 살이 찌거나 실수할 경우를 대비한 방어책이라고나 할까. 나아가 화장을 덜 하고 편한 옷을 입은 순간에 남자친구가 예쁘다, 귀엽다고 말을 하면 ‘지금 꼴이 그지같은데 뭐가 예뻐~’하고 말하곤 했다.

 

 

자기 몸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부러 남이 자기 몸을 혐오하도록 부추기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남자친구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정말 예뻐서 예쁘다고 하는데 내가 예뻐하는 대상을 깎아내리지 말라고. 좋아하는 사람을 칭찬했을 때 옆 친구가 별로라 타박하면 기분이 나쁘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대상을 친구가 막 대해도 화가 나지. 설령 그게 본인이어도 마찬가지인 거다. 또 많이 놀라서 스스로 왜 그랬는지 되짚었다. 이제 내 외모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좀 멋쩍었다. 화장하지 않고 집 밖에 잘 나가게 된 때에도 칭찬만큼은 계면쩍었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되고 언어가 생각을 좌우하니 자꾸 못났다 하면 듣는 상대도 어느 순간 진짜 못나다고 느낄 수 있겠지. 순간의 겸연쩍음을 모면하기 위해 나를 비하하지 않기로 했다. 남자친구에게도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말을 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식을 하고 폭식을 했다는 사실에 또 스트레스를 받는 나에게 저자가 제시해주는 ‘일상적 뇌 문제를 한결 가볍게 만들어 줄 해결책’은 아주 요긴했다. 나를 지지해주는/스트레스가 가라앉게 해주는 체계가 오직 음식밖에 없었다는 점을 직시하게 해줬거든. 말로 정리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하고 있던 단계도 있고 처음 보는 단계도 있다. 앞으로 무너짐이 다가오면 퍼뜩 기억해내고 따라해 보려 한다.

 

일상적 뇌 문제를 한결 가볍게 만들어 줄 해결책

1. "
다섯 다리의 지지체계"를 만들어라:
다리란, 나를 지지해주는 모든 것

2.
힘든 날이 오기 전에 힘든 날을 계획해라:
기분이 저기압인 날을 위해 기분을 좋게 만다는 것들을 목록으로 정리해두면 아주 유용하다.

3.
실제로 힘든 순간이 오면 다음의 방식을 따라해라:
1)
내 기분을 표현하는 문장을 적자.
2) 그 아래에 기분을 상세히 묘사해라. 증상, 형용사, 이모티콘-당신이 소리 지르고 싶은 내용을 써라.
3) 당신 인생의 핵심 영역이 무엇인지 알아봐라. 큼직한 것들, 당신의 기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 많은 사람들이 10개 이상의 핵심 영역을 갖고 있다.
4) 이 짜증나는 영역들을 평가해봐라. 3단계에서 찾은 요소들을 검토하고 적절히 돌보고 있는지 혹은 조정해야 할 영역이 있는지 솔직하게 답해라. 
5) 해결책을 찾아라. 핵심 영역의 일부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실행 가능한 행동 계획을 세워라.
6)
모든 할 일을 순서대로 적고 그 상세한 해결책을 순서대로 따라하자.

4. 뇌를 자동차처럼 대해라:
뇌가 기능을 꼭 항상 잘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5. 자신을 돌보는 걸 최우선으로 해라:
이는 욕심도 이기심도 아니고, 절대적 필요에 의한 선택이다

  저자는 스티븐 크보스키(stephen Chbosky)의 '월플라워'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랑을 받는다.” 옳다. 몇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여전히 동의하는 지점이 있다면 그건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일 테다. 나는 존재만으로 가치 있다. 사회적 지위와 젊음과 부를 다 잃어도 여전히 나는 가치 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모든 존재가 나만큼이나 가치 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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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에 또 올랐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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