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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매우 초록 - 노석미

by 푸휴푸퓨 2020.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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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초록이 필요할 때 읽기 좋았다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즈음이 되면 나도 모르게 자연에서 사는 삶을 꿈꾼다. 조용한 곳에서 홀로 수행하듯 살면 마음이 편안할까 궁금하다. 하지만 자연인이 되고 싶다는 말은 전혀 아니고, 딱 노석미 작가가 일구어낸 삶만큼의 고요를 원한다. 우연찮게 노석미 작가의 책을 읽은 후부터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담백한 삶을 소망할 때면 특히.

  집을 짓고 이사를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가 놀러 와서 같이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 나의 집은 이미 서울에서 한참을 강원도 쪽으로 나와 있는 즈음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강원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차를 타고 강원도 골짜기 이곳저곳을 다녔다. 마지막에 바다에 도착해서 바다를 보고 맛있는 게도 사먹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다시 집으로 출발했다. 집이 많지 않고 외진 편에 속하는 나의 집으로 오는 길은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제외하곤 까만 어둠 그 자체였다. 집에 도착하자 친구가 말했다.
  "야... 너의 집이 가장 외지다. 강원도고 어디고 여행을 다녀봤자 결국 너의 집이 가장 외지다."
  꽤나 늦은 시각이었기에 몇 되지않는 마을 집들의 불이 다 꺼져 있었다. 친구와 나는 나의 정원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무수히 쏟아져내리는 그런 밤이었다.

  시골 마을에 홀로 작업실 겸 집을 짓고 고양이와 살아가는 선택을 한 그녀가 존경스럽다. 노석미 작가가 일구어낸 작은 일상 이야기를 읽노라면 마음이 절로 평온해진다. 한 여름에 텃밭 가꾸기는 얼마나 힘이 들까, 나의 정원에 심을 나무를 고르는 일은 재미있는지, 집이며 마당에 벌레는 얼마나 나올는지 궁금한 점 투성이다. 

  내가 괜찮다고 했지만 그는 재차 그렇게 작은 차로 언제 다 옮기냐며 자신의 집에 있는 트럭으로 한 번에 옮겨주겠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하고 그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나의 집에 퇴비를 내려놓고선 그는 새로 지어진 집과 새로 꾸려진 잔디밭이 깔린 나의 정원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그거 아세요? 여기가 산이었던 거."
  "아...네...뭐... 그랬겠죠. 지금도 여기 옆은 산이잖아요."
  뭐야. 또. 텃세가 시작된 건가, 라고 나의 마음이 뾰족해지고 있을 때 그는 이어서 말했다.
  "제게는 유년 시절 추억이 깃든 곳이에요."
  "네..."
  "이 자리에 진달래가 엄청 많았어요."
  나는 그가 감상에 젖어 먼 산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노석미 작가는 스스로를 포장하려는 에피소드가 잘 없다. 불퉁해진 마음과 그래서 멋쩍어진 순간을 솔직하게 써두었다. 그래서 더 좋아. 그녀의 그림도 글과 닮아서 소박하고 편안하다. 몇 년 전 출간된 '먹이는 간소하게'라는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책도 딱 그랬다. 읽는 나도 간소하게 살고 싶어 지는 책이었다. 

  열심히 그림을 그려내야 하는 때에 창밖을 내다보는데 아름다운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있으면 에잇, 하며 붓을 던져버리고만 싶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번은 근처에 사시는 화가 선생님께 이런 고충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은 아름다운 봄날엔 암막커튼을 치고 작업을 한다고까지 얘기하시는 것을 보고 아!... 진정한 작가란.. 이런 것들과도 투쟁을 해야 하는구나, 감탄이 나왔다. 무슨 일이나 그렇겠지만 원하는 것을 갖게 되기까지 어느 정도 자신의 쾌락과 싸워야 하는 등의 엄격한 자기 관리는 필수인 것 같다.

  봄만 되면 창밖을 보며 내가 지금 이 사무실에서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다. 위계는 창가점유권을 차등 분배하는 법이라 나는 몇 년째 창가에서 가장 먼 자리에 앉아있다. 바깥보다 기온이 낮은 건물 중앙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몰래 훔쳐볼 때는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사나, 이렇게 사는 게 옳은 삶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자연 가까이에서 사는 사람은 이런 고민이 없는 줄 알았더니 오산이었다. 오히려 더한 싸움을 하고 있구나. 나만 싸우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못된 위안을 삼는다. 같이 이겨내자는 응원을 조금 담아서.

  나는 늘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고 지낸다고 스스로를 탓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별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당황했고 무서웠다. '나'라고 규정된 것들에 포함된 것들, 나의 가족, 친구,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반려동물들, 그 외의 여러 가지 것들을 통해서 나란 인간을 확인하곤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까이의 그 존재들이 사라진다. 이별하게 된다. 나라고 규정된 것에 구멍이 생긴다. 그 상실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이 기도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그 두려움과의 사투, 일지도 모른다. 그 상실감, 그 여백에 내가 원치도 않았고 내겐 생경한 것, 그리움이 채워진다.

  조부모님의 죽음을 겪고나니 저절로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절대 다시 볼 수 없는 이를 생각하면서 마음에 구멍이 난다는 표현을 이해하게 되었다. 떠난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이상 채워지지 않을 구멍. 이렇게 살다가 노인이 되면 마음에 대체 구멍이 몇 개나 될까 무서웠는데, 세월을 겪기가 두려웠던 마음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어서 위로가 되었다. 어느 책에서 그랬다. 우리는 서로와 완전히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는 없지만 아무와도 완전히 공유될 수 없음을 안다는 점은 공유하고 있다고. 노석미 작가의 구멍과 그리움을 완전히 알 수는 없겠지만 노석미 작가와 나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구멍이 있다는 점은 이제 안다.

  노석미 작가의 '서른 살의 집'을 재밌게 읽었던 터라 40대 이야기를 정리한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반가웠다. 이 소식은 채널예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았는데, 인터뷰 제목부터 참 좋다. "더 뺄 수 없는 상태가 제겐 '완성'이에요". 장식이 없어도 충분히 완성도가 있을 수 있단다. 삶의 군더더기를 빼고 싶은 나를 아주 행복하게 해 주는 책이었다. 그녀가 꼭 50대 이야기도 정리해서 출간해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 전에 다른 책을 내준다면 더 좋고.

 

노석미 :: "더 뺄 수 없는 상태가 제겐 '완성'이에요" http://ch.yes24.com/Article/View/40597

 

노석미 “더 뺄 수 없는 상태가 제겐 ‘완성’이에요” | YES24 문화웹진 채널예스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사람을 피곤하게 하잖아요. (2019. 12. 18)

ch.yes24.com

리뷰 :: 서른 살의 집, 스프링 고양이 https://eybaek.tistory.com/176?category=63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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