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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MINIMAL LIFE

미니멀리즘 Part 1. 나의 미니멀리즘 이야기

by 푸휴푸퓨 2020.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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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Myriam Zilles from Pixabay  

 

 

  여행을 가면 맛있는 음식과 경험보다는 쇼핑에 집중하던 때가 있었다. 떠나기 전 필수 쇼핑 리스트를 공부하고 또 해서 모든 품목을 찾을 때까지 상점을 돌아다녔다. 흔히 돌아다니는 리스트 대신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돌고 돌다가 유튜브에서 본 상품을 발견하면 그렇게 재밌고 뿌듯할 수 없었다. 그건 그것대로 좋은 추억이다.

 

  화장과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쇼핑도 끊었다. 왜 화장과 멀어졌을까? 확실한 시발점은 남자 친구다. 화장을 해서 가장 예쁘게 보이고 싶은 사람이 화장에 관심이 없었다. 화장이 지워져 분주한 내게 자연스러운 모습도 예쁘다 말해주었다. 그래? 화장 없는 내 얼굴을 예쁘다고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해 볼까. 하나 둘 화장 단계를 줄였다. 블로그에 일기를 남기기도 했지(https://eybaek.tistory.com/403?category=479626).

 

  화장을 줄이고 나니 화장을 부추기던 자극이 눈에 들어왔다. 살면서 한 번 가져볼 수 있다면 다른 소원이 없을 것 같던 뷰튜버의 화장대가 어느 순간 (뷰튜버와 화장품산업 종사자에게는 미안하지만) 거대한 쓰레기처럼 보였다. 립스틱의 유통기한은 고작 6개월이다. 저 많은 화장품은 유통기한을 절대 지킬 수 없을 테니 결국 내다 버릴게 뻔한데, 분리배출도 어려운 화장품 용기에 절로 마음이 답답해졌다. 사랑하던 하울 영상도 싫어졌다. 저렇게 자주 하울을 찍어대면 산 물건을 다 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 쓰레기를 다 어째.

 

  자연히 환경에 대한 생각이 커졌다. 내가 찍고 다니는 탄소 발자국은 얼마나 깊고 넓을지 두려웠다. 싫증난 옷, 푹푹 짜 쓰는 바디 제품, 대충 구겨 버리는 종이, 음식물 쓰레기, 춥고 덥다며 트는 에어컨, 보일러. 옷장에 옷을 꽉 채우고 외투를 걸 데가 없다며 불평하고 살 필요가 대체 뭐람. 인간을 제외한 지구의 모든 생물에게 부채감이 쌓였다. 대단한 과학적 근거나 철학적 이유가 없어도 되었다. 미안함 하나면 충분했다.

 

  방 안에 쌓여있는 짐은 흐뭇한 재산에서 죄책감의 증거로 변했다. 왜 이렇게 많은 제품을 사려 했는지 자문했다. 왜 옷은 철마다 사러가야 하고, 왜 하늘 아래 같은 색조 화장품은 없었을까. 문외한이던 경제를 공부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자본은 팽창해야 생존함을 배웠다. 이제까지 나는 그들의 목적도 모를 성장에 놀아났구나.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써야 할지 잘 생각해야 했다. 소비를 위한 소비를 멈춰.

 

  고민의 양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한 개의 물건을 사기 위해서 치열하게 고민한다. 다만 과거에는 이 물건이 나를 화려한 도시 여성으로 만들어 줄 숨겨진 꿀템이 맞는지가 궁금했다면 지금은 10년 후에도 이 소비가 부끄럽지 않고 거북이에게도 미안하지 않을지가 궁금하다. 이 물건을 사서 대충 버리면 어느 거북이나 물새의 뱃속에 들어갈지도 몰라. 무섭다.

 

  메꾸고 싶었던 방의 빈 공간은 어느새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 여백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군더더기가 있는 걸 알기에, 나는 올해 조금 더 비우기를 목표로 삼았다. 목적 없는 성장은 싫다. 고민 없이 산 물건을 보며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보는 기분은 이제 그만 느끼려 한다. 많은 것을 줄이되 남아있는 모든 것이 소중한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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