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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 이나가키 에미코

by 푸휴푸퓨 2020.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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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멀리즘을 외치기 시작하면서 미니멀리스트라 스스로를 칭하는 많은 작가와 인플루언서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이렇게는 살지 못하겠다 싶기도 하고 이 생각은 나와 같구나 싶기도 했지. 그렇게 마주한 이야기 중 폭탄머리 이나가키 에미코의 삶에 대한 통찰은 단연 가장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도 50대에 이런 생생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냉정히 말하자면 무언가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어쩌면 무언가를 잃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희생시키면서 예뻐지고 건강해지는 그런 일들이 정말로 가능할까. 지금의 경제 시스템 속에서는 작은 욕망들이 모여 큰 덩어리로 불어나면서 타인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런 사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만 한다.

  살림에 관심을 갖다 보면 점점 내 발이 땅에 닿는 기분이 든다. 내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 나를 지탱해주는 바닥이 이런 모습이구나. 나는 이런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이런 음식을 먹는구나. 내가 생명임을 인식할수록 다른 생명에게 피해 끼치지 않는 삶을 소망한다. 세상에는 희생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만 같다. 내가 편리하면 누군가는 희생하고 있음이 분명하니 편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금, 미래(앞으로 쓰게 될 식재료)도 과거(사서 냉장고에 넣어둔 식재료)도 없는 날을 살고 있다. 사실 따분하기는 하다. 두근거리는 꿈이 없기 때문이다. 당근과 튀긴 두부밖에 살 수 없는 밋밋하고 '소소한 지금'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냉장고를 없애면서 드러난 소소한 나. 음, 분명 쓸쓸한 부분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더도 덜도 아닌 바로 이것.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얼마만 한 인간인지를 알게 되었다.

  처음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내가 마주하기 가장 어려웠던 사실은 나는 더 이상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스무 살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최선을 다해 몇 년을 살면 옆 칸의 저 어른이 되겠지. 더 살면 그 옆 칸, 운이 나쁘면 몇 칸 가지 못한 채 인생이 다 지나갈 거야. 세계를 호령하지도 막대한 연봉을 받지도 못하면서 그저 그렇게 살 것이란 생각에 삶에 신물이 났다.

  하지만 이제는 지금의 회사에서 (아마도) 맞이할 정년을 싫지 않게 상상한다. 누군가는 고리타분하고, 누군가는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리라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어떻게 살지 부단히 고민했고 이제는 내가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이 이곳의 자리 한 칸이면 충분함을 안다. 나는 내가 선택한 한 칸 안에서 만족하며 살 테다. 그래. 이만한 크기의 내가 좋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수입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망 그 자체를 두려워해야 한다. 폭주하는, 더 이상 스스로 제어할 수 없게 된 막연한 욕망.
그 욕망에서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그 욕망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정말로 만족할 수 있을까,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일이다.

  물건을 줄이면서 나는 내가 모아둔 물건을 자세히 살펴보게 됐다. 취미가 다양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여러 패션 스타일을 소화하고도 싶었다. 세상을 많이 둘러본 사람이 되길 바랐고 확고한 취향이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철마다 산 잡화와 화장품, 책, 미술 도구는 방 구석구석에서 은둔해 있었다. 나는 정말 그 모든 것을 바랐을까.

  나는 그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을 뿐이었다. 유행을 따라하지 않으면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거다. 이 사실을 느끼고 나서 몇 달간 해보고 싶은 취미가 보여도 참고 내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결국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정도면 충분하더라. 새로운 무언가를 굳이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사고 싶은 게 사라지니 어느 날부터 용돈이 남기 시작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씀씀이를 더 줄일 수는 없어 보였는데, 힘들다는 느낌도 없이 지출을 줄였다.

고로 나는 앞으로 평생, 집에서 튀김을 만들어 먹지 않을 것이다. 그것으로 됐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문득 느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인생의 ‘언젠가’, 다시 말해 인생의 가능성을 버리는 중이었다.
내 의지로 그런 짓을 저지를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계속해서 가능성을 넓히는 것이야말로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지름길이라고 믿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게 진정한 풍요로움일까.
가능성을 넓힌다는 명목 하에, 욕망을 폭주시키고 불만을 등에 업고 살아왔던 건 아닐까.

가능성을 닫고 산다.
나는 그 가능성에 내 인생을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엄마는 올해 20년 만에 새 냉장고를 샀다. 이전의 냉장고가 늘 작게 느껴졌기에 좀 더 큰 냉장고를 샀는데, 처음 몇 주가 지나고 나니 어김없이 냉장고 자리가 부족하다. 이렇게 되고 나서야 문제는 냉장고의 크기가 아님을 알았다. 냉장고만한 김치냉장고를 들였을 때 이미 알았어야 했는데.

  이나가키 에미코가 냉난방기 없이 사는 모습은 차마 따라 할 용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다. 나의 가능성과 가치를 내가 소유한 물건으로 점칠 필요는 없다. 홀가분해진 공간과 마음에 평안과 고요를 들이면 이전에는 몰랐던 자유롭고 거대한 우주로 다가서는 느낌이 든다. 요즘은 아주 가끔이지만 조금 더 홀가분해진다면 그 우주가 내게 더 자주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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